본문 바로가기

지구자전거의 짝사랑

정말 떠나고 싶긴 한 거였니?

 
다시 주저 앉았다.
또 미뤄졌다
5개월 전부터 꿈꿔 왔던 일이다. 
한 달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다.
이번에도 변명은 충분했다. 


디데이 5일. 
계획대로 이번 주말에 결행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가자 한다. 이번에 가지 않으면 자꾸 미루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가자 한다. 마음도 그쪽으로 기운다. 필요한 물건들을 떠올린다.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다. 마음이 설렌다. 이제야 가보는구나.  이 계절이라면 남녁의 가을은 가득한채 깊어졌을 것이다. 그 가을의 한 가운데에 서는 일이다.

꿈은 지난 4월 광주로 이사오면서부터 꾸었다. 남도의 중앙에 자리한 광주의 지리적 위치. 이곳이라면 전남과 전북은 물론 조금 욕심만 내면 경상남도의 남해안까지 넘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지위에서 그런 꿈을 꾸지 않으면 그것이야 말로 게으른 자일 터였다.  

디데이 4일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다. 지난 5월 첫 실행을 하려 했을 때 구입한 지도책은 여전히 유용하다. 여기에 '다음 스카이뷰'지도로 세부 지역을 확인한다. 갈 길과 올 길은 되도록 겹치지 않게 한다.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이곳 광주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 그동안 가지 못했던 큰집에도 들를 계힉이다. 추석도 다가오고 하니 큰어머니에게 인사라도 드리면 좋겠다. 애초 사방팔방으로 꿇린 길 가운데 곡성을 잡은 것도 그 이유다.     

첫 시도는 지난 5월 말에 있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이 일어나 새벽밥을 먹었다. 금요일 저녁에 챙긴 짐을 다시 징리하고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려 막 현관을 벗어날 즈음, 그 발걸음은 멈춰야 했다. 비가 내렸다, 베란다에서 보았을 때만 해도 구름만 끼었나 싶었는데 비가 내렸다. 


디데이 3일
인터넷으로 날씨를 확인한다. 주중엔 맑은 날씨로 이어진다. 문제는 일요일이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단다. 일요일과 월요일인 "27일과 28일에는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돌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 단다.  이 가능성이 틀리기를 고대한다. 이 예보가 적중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날씨는 매번 어긋났다는 그 착각이 이번에는 맞기를 바란다.

그 꿈을 실현하는데 객관적 조건은 시간이었다. 적어도 이틀은 있어야 할 시간. 평일을 잘라내기엔 어려움이 있으니 만만한 게 주말이었다. 그런데 그 주말이 문제였다. 6월 말 줌마네 강의가 시작되면서 금요일저녁엔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서울로 간 발걸음이 광주로 돌아오는 날은 일오일 오전. 그러니 그 주말의 시간이 좀처럼 만들어 지지 않았다. 


디데이 2일
길을 약간 바꾼다. 토요일 밤을 남원에서 보내고, 일요일엔 순창을 거쳐 담양을 지나 광주로 되돌아오는 것엔 변함이없다. 다만 곡성까지 가는 길을 담양쪽이 아니라 화순쪽으로 잡았다. 광주에서 담양으로 나가는 길은 자동차로 몇번 오갔으니 식상해졌다.그 식상함을 덜기 위한 변경이다.  
길이 정해졌으니 지도를 복사한다. 복사한 지도위에 노란 형광펜으로  갈 길위에 선을 긋는다. 그야말로 길이 선명해진다. 머릿속에 한 개의 길로 또렷해진다.   
다시 날씨를 확인한다. 여전히 "돌풍을 동반한 많은 비"를 예고한다. 그래도 갈 거니?  그래도 가자. 다만, 일요일의 "돌풍을 동반한 많은 비"에 대한 대비책을 생각한다. 그건 간단하다. 광주로 돌아오는 버스면 충분하다. 

이번에 실행할 계획은 8월에 수립했다.  8월말 일찌감치 12월까지의 주말 계획을 세웠다. 이면 줌만네 수업도 끝난다. 동네잡지 만드는 회의가 주말에 있지만 매주 있는 것은 아니다. 모임에서 여행을 떠나자고 한 주말도 제외했다. 열여덟 번의 주말이 있지만 꿈을 실현할 주말은 다섯 번이었다. 게 중엔 조금 어려울 법도 한 12월이 두 번이나 들었다.


디데이 1일 
흐릿하던 날씨가 오후엔 끝내 빗방울을 뿌린다. 사무실 건물 밖에 두었던 자전거를 비를 비해 옮겨두었다. 저녁에 빗방울이 조금 더 굵어졌다. 이러다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원활하지 않을 듯싶다. 다시 인터넷 일기예보를 본다. 남한의 모든 지역엔 우산표시가 자리잡았다. 저 표시가 지금처럼 위압감을 준 적은 없었다. 그 위압에 밀려 계획이 꺾였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동네 슈퍼에서 맥주를 샀다. 내일 일정이 사라졌으니 저녁엔 편하게 맥주나 마시자. 남은 주말은 다른 계획으로 대체한다. 

다섯 번의 주말 가운데 두 번의 주말이 날아갔다. 날씨가 한번을 쓸어버렸고, 10월 중순 계획했던 주말은 미국출장이 차지했다. 이제 남은 세 번의 계획. 그 계획이 온전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다. 세번째의 날은 두 달 후 11월이다. 그전엔 계획을 잡을 수 없다. 그때는 가능할까. 아쉬운데, 아쉬운데 어쩔 수 없다.    


디데이 
아침 7시. 일부러 알람도 맞추지 않고 잤다. 한껏 게을러보고 싶었다. 베란다 창문으로 들여다 본 날씨. 맑다. 예보대로 맞다. 해까지 쨍이다. 갑자기 후회가 밀려온다. 떠날 걸. 비록 오늘 날씨가 아니라 내일 날씨 때문에 망설이긴 했지만. 그래도 떠날 걸. 지금 시간이면 화순 어디쯤에 가 있을 법했다. 그러나 늦었다. 다른 약속도 잡았고, 이제 떠나기엔 늦었다.
여전히 일기예보는  일요일엔 
 "돌풍을 동반한 많은 비"라고 말한다. 이제 이 예보가 위안이 된다. 다행히 토요일 오후엔 짧게나마 소낙비가 내렸다.  

높새는 현관에 그대로 서 있다. 어제 비 내린 길을 달려온 흔적이 바퀴에 약간의 물기로 남아 있다. 몸체도 큰큰하고 두 바퀴도 짱짱하다. 핸들 또한 날렵하며, 백미러 역시 초롱초롱하다. 어쩌면 밤새 노을이를 기다렸을지 모른다. 2년 전 지리산을 돌던 때 맞던 그 바람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때도 이틀이었고, 둘째날엔 비가 내렸다. 그럼에도 노을이는 높새와 섬진강변을 달렸다. 


높새 가만히 묻는다. 
정말 떠나고 싶긴 한 거였니? 
정말로
날씨 때문에  지금 여기서 머뭇거린 거니? 
노을이는 말이 없다. 
잠깐 잠깐
나이 마흔을 생각할 뿐이다. 
그게 더 변명으로 어울리지 않았을까!
(2009/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