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인터뷰를 생각했던 건… 무엇인가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의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이게 잘 살고 있는 건지. 잘 살고 못 살고의 기준이 역시 또 다른 편견이라면, 아무튼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내가 즐겁게 살고 있는 건지, 그 즐거움이 남의 마음에 슬픔의 그늘로 드리워지지는 않는지… 뭐 그런 쓰잘 데 없어 보이는 궁금증으로 삶에 시비를 걸고 싶었다. 답답함을 얘기하고 싶었다.
서른 둘. 그런 때다. 사춘기가 어디 십대들만의 전유물이던가. 그야말로 누구라도 삶을 고민하는 순간이 사춘기다. 이번 달 셀프인터뷰 주제는 ‘노을이의 일과 사랑’이 주 내용이다. 다음 달엔 ‘노을이의 정체성’에 대한 셀프인터뷰를 해볼 생각이다.
- 우선 일, 직장 이야기를 하자. 노을이는 올 봄만 해도 <작은이야기>에서 일을 계속할 것인지 말지를 고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올 초 고민했던 잡지와 관련한 직장 문제는 어느 정도 풀렸는가?
“지금으로선 그렇다. 전반적으로 <작은이야기>에서 내 에너지의 흐름은 작년 5월부터 10월 정도까지가 상승곡선이었다가 개편호가 좌절되면서 올 4, 5월까지 하강 곡선을 그렸다. 최근엔 다시 슬럼프에서 벗어난 듯싶다.”
- 새로운 편집장이 들어온 게 상승곡선의 계기였나?
“엄밀히 말하면 ‘장에서 만난 사람들’ 취재 칼럼이 계기다. 침체됐던 내 분위기가 장 취재를 하면서 되살아났다.”
- 장 취재가 나름대로 의미가 되었는가?
“올해로 기자 생활 한 지 5년째다. 그동안 적지 않게 현장을 다녔는데, 이번 장 취재처럼 취재원이 불특정인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임종진형이 사진 보조를 맞춰주는 게 나름대로 힘이 된다. 큰 틀에서 5일장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 다르지 않으니까 호흡이 잘 맞는다. 그런 이유로 장 취재는 침체됐던 나를 흥분시켰다. 거창하게 비유하자면, 막 뛰놀아야 할 산짐승이 우리에서 풀려난 느낌이랄까.”
- 장 취재가 그런 맛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그만두려던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는가!
“장 취재가 시작되던 그 무렵, 직장을 그만 둔다고 해서 백수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말지보다 많은 급여 - 나는 늘 말지 때의 급여를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직장을 가도 돈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 와 비교적 편한 근무조건에 주판알을 굴렸다. 그러던 차에 양 선배가 편집장을 그만 둔다는 얘길 들었다. 다른 편집부원들보다 한 달 정도 일찍 얘기를 들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러니 그만 둘 수가 없었다.”
- 편집장이 그만둔다고 노을이가 그만 두지 못하란 법은 없는 것 아닌가.
“그 말은 맞다. 그러나 편집장이 그만두면 뭔가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 변화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편집장의 잘잘못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환경이 바뀌면 분위기가 바뀐다는 얘기다.”
- 편집장이 그만 둘 당시에 주변이 어수선했는데 그때 심정은 어땠는가.
“불행하게도 우리 회사 몇몇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들을 보았다. 어쩌면 그것이 직장인의 본 모습이 아닐까 싶었는데. 아무튼 나 역시 그 당시엔 입장이 애매했다. 자칫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힘들긴 했는데, 다행히 나름대로 원칙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잘 마무리된 듯싶다.”
- 얼마 전에 단행본팀의 한 직원이 노을이가 새로운 편집장과 잘 지내는 것 같다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노을이는 신임 편집장을 반대하지 않았나.
“맞다. 나는 반대했다. 그래서 사장에게 그 의견을 말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잡지 경력이 없다는 점과, 자칫 오랜 단행본 경력이 단행본 쪽의 일까지 떠안는 것 아닌가 싶은 거였다. 그러나 새로운 편집장이 온 지 두 달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다. 내가 반대한 이유를 신임 편집장이 온 지 열흘 쯤 지난 후에 말했다. 아마 다른 이들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인데, 그게 내 방식이다. 반대 이유가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사람을 반대한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을 반대했으니까.”
- 장황한 설명에 얘기가 옆으로 샜다. 현재 편집장과의 관계는 어떤가.
“나쁘지 않다. 신임 편집장을 보면서 몇 가지 배운 바가 있다. 우선, 어떤 팀 체제로 운영되는 일에서 실무 능력 못지않게 팀 구성원들을 조율하는 능력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럼 면에서 있어서는 편집장이 장점을 가졌다.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열어두면서 가능한 팀원들의 의견을 수용하려 한다. 가끔 이런 자세가 자칫 다수결 원칙 - 잡지의 편집장은 기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되 뭔가를 결정할 때는, 다수결이 아니라 편집장이 파악한 잡지의 발행목적에 맞는 감각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 으로 흐를까 우려되는 바가 있지만, 지금까지는 문안하게 온 것 같다.”
- 최근 디자인 쪽과 마찰이 있었지 않았나?
“지난 17,18일 엠티 이후로 지금까지는 잘 해결되었다. 초반에 있었던 갈등은 서로에 대한 뭔가의 코드가 맞지 않아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잘 해결된 듯하다. 편집장이 다소 성급했던 면도 없지 않다.”
- 결과적으로 노을이는 편집장에 대한 입장이 우호적인 편인가.
“그렇다. 그러나 편집장이 영 아닌 사람이더라도 나는 내가 마음먹으면 충분히 우호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 아닌 편집장이라면 싸우든가 내가 나가든가 하면 되지만, 남기로 했다면 편집장의 색깔에 맞추는 게 기자의 몫이다. 잡지에 발행인이 있긴 하지만, 야전사령관 격인 편집장이 잡지의 색깔을 많이 바꾼다. 따라서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편집장을 중심으로 집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기자란 기사 공정의 90% 이상을 혼자 진행하니까 어느 정도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다.”
- 앞으로 <작은이야기>가 잘 될 것 같은가?
“잘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아니 몇 가지 해결될 현안이 있다.
첫째는 편집장과 디자인팀과의 관계다. 초반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내년 개편을 앞두고 적지 않은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갈등 자체는 무서울 게 없는데, 서로들 즐거운 싸움을 했으면 싶다. 다행히 디자인팀 이 선배나 편집장이나 사심으로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둘째는 <작은이야기> 기자들의 문제다. 나를 비롯해 다른 기자들도 많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듯 하다. 그 매너리즘을 벗어날 의지가 있는지, 또한 벗어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런 계기를 어떻게 만들어갈 지가 미지수다. 셋째는 영업부 직원이 파이팅 할 수 있는 계기 역시 필요할 듯싶다. 그간 영업하면서 많이 데인 구석이 있어 보인다. 그것을 잡지팀에서 보듬고 가야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코디하는 게 편집장의 몫이라고 본다. 그러니 발행인과 관계에서 명확한 입장을 갖는 게 필요하다. 편집장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지금으로선 믿을 만하다.
공교롭게도 이 현안들은 올 연말과 내년 봄 전에 해결되든가 말든가로 끝날 것이다. 따라서 올 겨울을 잘 넘기면 내년 봄부터 <작은이야기>는 성장 흐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몇 가지만 해결되면 교양지 시장에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 자신감이 내 안에 있다.”
- 당신은 그 많은 과제 중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늘 참모를 꿈꿔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늘 편집장에게 새로운 제안을 할 것이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의기소침해지는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박 편집장에게는 월권하는 대목이 있었다.”
- 월권이라면 편집장의 권한을 행사했다는 것인가.
“지나치게 다그쳤다. 편집장이 망설인다면 그 망설이는 만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할 듯싶다. 그래서 의견은 제시하되 내 처지를 넘어 다그치는 일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행히 이번 편집장은 ‘전투력’이 내재된 사람 같다.”
- 전투력?
“아닌 것에 대해 싸울 줄 하는 힘 말이다. 그러니 내가 조금 더 편할 수 있다. 이번 편집장은 열린 자세와 전투력이, ‘장’으로서 가진 좋은 능력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의식도 있어 보이고.”
- 신임 편집장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나름대로 상승곡성도 그리고 있다니 당분간 <작은이야기>에 머물 생각이라고 보면 되는가?
“전반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작은이야기>가 가진 태초의 한계가 다시 재발할 경우엔 어찌될 지 알 수 없다.”
- 태초의 한계란?
“노코멘트다. 회사 내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그걸 지적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태초의 한계다. 그 한계에 맞춰 일해야 한다는 것을 현실로 인식하는 게 더 낫다.”
- 그럼 그런 내적인 문제만 정리되면 오래 있을 생각인가?
“그런 문제 해결은 기본이다. 그밖에도 디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나는 <작은이야기>에 무엇인가를 배우러 왔다. 그런데 이곳에서 내가 배울 게 없다면 떠나야 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내 장래와 관련한 일이기도 하다.”
- 그럼 그동안에 배운 것은 있는가.
“요즘 들어 필자들과 관계를 맺는데 매력을 느낀다. 이른바 유명 필자들이야 나름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힘들지만, 일반인들에게 청탁할 때 어떻게 기획하는지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래서 전화 청탁할 때 무척 마음이 편하다. 이런 과정에서 편집자가 갖는 매력을 슬쩍 슬쩍 느끼기도 한다. 아울러, <작은이야기>식 글 형식을 익혀가고 있는 듯하다. 짧게 말하면 주제가 아니라 글쓰기 방식의 문제로 접근하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싶다.”
- 내용을 정리하면 노을이가 말한 기본문제가 해결되면 당분간은 <작은이야기>에 머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 말고도 몇 가지 변수는 있다. 한 달 전 쯤 <오마이뉴스> 선배로부터 그곳에서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지난 봄에 이어 두 번째였다. 어찌어찌 거절하긴 했는데, 언젠가는 그런 매체로 가야하지 않나 싶다. <오마이뉴스>는 내 나름대로 묘한 매력을 느끼는 매체다. 또한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인다. 최근 그 매체에서 특집기사 공모를 냈는데, 아마 내가 지난 봄에 갔다면 그런 방식을 6개월 정도 일찍 시작했을 것이다.”
- 그래도 그곳에 바로 가지 않는 데에는 나름대로 망설여지는 무엇이 있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하다. 내가 그 매체를 생각하는 것은, 글 쓰는 이들과 연대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 때문이지만, ‘운동’이라는 현실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말>을 너무 빨리 떠나온 것에 대한 미안함 뭐 그런 정도다. 이전에 민가협 규선 누나가 말했듯이 그 매체에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는 게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문제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현재 2대 8이라는 진보와 보수의 언론구조에서 진보 쪽에 힘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망설이는 이유는 <작은이야기>에 오면서 꿈꾸었던 ‘내가 만들고 싶은 잡지’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에 가면 매체를 꿈꾸고 실행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게 걸린다. 육체는 건강한데 정신이 많이 약해졌다. 뒷골이 당기는 게 그런 증상이다. <오마이뉴스>에 가면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지금 내 몸 상태는 가능한 신경을 많이 쓰지 말아야 한다. 자칫하면 또다시 입 돌아갈 수 있으니.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이런 모든 게 변명처럼 들릴 때도 있다. 뭔가 내 몸도 자본과 편리에 익숙해져 가는 게 아닌가 싶기고 하고.”
- 조금 주제를 달리하자. 요즘 회사에서 직원모임을 만들려고 하던데, 갑자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갑자기’는 아니다. 회사에 들어 온 지 몇 달 후부터 그런 생각은 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직원도 늘고 상대적으로 친밀감은 조금씩 나아졌다. 뭔가 얘기하면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정도는 됐다. 마침 단행본 팀 회의에서 그런 얘기가 제기된 게 결정적 계기다. 신기한 건 내가 막 그런 얘기를 꺼내려고 하는데, 2층에서도 그런 얘기들이 오간 거라는 점이다. 그게 어떤 분위기,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본다.”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그 직원모임에 어떤 색깔을 담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그럴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될 리도 없지만, 그 어떤 생각도 없다. 아마 노조를 말할 수 있을 텐데, 이직률이 높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노조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도 그렇게 시작하려 한다. 직원들 모임을 만들자 그 정도만 합의하고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는 직원들 전체의견을 반영해 그 수위로 맞추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 이상은 생각한 바 없다. 궁극적으로는 다니고 싶은 직장을 만드는 일이다. 다니고 싶은 직장은 단지 급여 문제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만들 수 있는 뭔가는 생각보다 많다고 본다.”
- 노을이를 잘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엔, 또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노을이가 일 벌이기 좋아하는 것은 주변에서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늘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바동거리며 만들 생각은 없다. 흐름을 볼 것이다. 사람들의 요구가 있는데, 머뭇거리고 있다면 그것을 논의할 자리를 마련하는 선에서 내 역할은 끝나지 않을까 싶다. 본래 그런 모임은 처음을 꺼내기 어려운 법이니까. 개인적으로 보면 나는 회사와 좀 더 이야기할 부분이 많은데, 그런 일은 공식라인을 통해도 된다고 본다. 편집장이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믿기 때문에. 그게 어긋나면 또 혼자 깝치고 다닐 지도 모른다. 최근에 그런 문제가 하나 있기는 한데, 시기를 보고 있다.”
- 직장과 일에 대한 인터뷰는 이것으로 정리하기로 하자. 아무쪼록 당신이 그런 일에서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한편으로는 너무 돌출 행동을 하지 않고 시류를 보며 자중하고 있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람은 생긴 대로 산다는 말의 심오함을 알기에 굳이 도시락 사들고 다니며 말릴 생각은 없다. 열정이 넘치다보면 자칫 자신의 발목을 데일 수도 있으니 그것만 유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고 싶다. (2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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