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자전거의 짝사랑

지구자전거3 - 사람지도의 여운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배울 때, 담당 교수는 학생들에게 불쑥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노래 가을편지 구절의 한 토막이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질문은 이랬다.

“모르는 여자가 왜 아름다울까?”


높새와 첫 여행지인 함양에 고속버스가 도착한 시간은 밤 8시 무렵이었다. 숙소를 찾으려고 높새를 타고 어두운 함양읍내 거리를 슬슬 달렸다. 숙소를 찾는 조건은 두 가지였다. 가격이 싸고, 높새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 것. 세 군데의 모델을 드나든 끝에 네 번째 모델에 들러 방을 예약했다. 가격은 2만원이고, 높새를 모텔 방에 함께 들였다. 


그 모델 주인 아주머니와 몇 마디 말문이 열렸다. 내일 아침 여정인 휴천면 가는 길이 어딘지 궁금했다. 아주머니는 복도로 가서 창밖의 길을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두 번째 질문은 내일 아침 6시쯤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느냐는 거였다. 역시 말 약도를 그리며 식당을 한 곳 일러주었다. 다음날 아침 모텔 주인 아주머니가 얘기해 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일러준 길을 따라 산청읍으로 향했다.

 

낯선 땅 낯선 길을 나서면서 준비한 것은 1만분의1 도로지도를 복사한 종이 여섯 장이 전부였다. 종이지도는 국도나 지방도까지는 제법 모양새를 갖췄지만 샛길 등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틈 사이에 갇혀 서성이던 높새에게 방향을 열어준 이들은 낯선 땅의 낯선 사람들이었다.


낯선 땅에서는 사람이 곧 지도였다. 고갯길인 웅석봉 자락을 내려온 후 식당을 찾아 허우적거릴 때도 동네 할머니의 길안내를 받았다. 사각형에서 대각선쯤에 해당하는 길이었다.

사람지도는 종이지도와 달리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역할까지도 하는 매력을 지녔다. 사람보다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도 없었다.


산청읍에서 다시 길끝을 잃었다. 경호강 다리위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한 아저씨를 만나 길을 물었다.

“저쪽 건너편 다리를 건너 삼거리가 나오면 좌회전해서…”

두어 번 듣다보니 알 듯 싶었다. 이번엔 아저씨가 높새의 행선지를 물었다. 하동이라고 답하니 한참을 더 가야 만날 듯 싶은 길까지 일러주었다.


“중산리로 들어가면 청학동 가는 터널이 있고…”

아저씨가 일러준 길을 따라 산청읍을 통과했다. 그런데 조금 전에 길을 물었던 곳에서 직진해도 나왔을 길이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하고 다시 길을 잡고 얼마쯤 가자 또 다른 길이 나왔는데 역시 사거리에서 직진해도 만났을 길이었다. 


잠시, ‘길안내 제대로 해주신 것 맞아?’ 하는 ‘의심모드’가 걸렸다. 그러나 이내 ‘이해모드’로 바꾸었다. 아마도 우회길을 일러준 것은 고개 때문이었을 것이다. 길안내를 받은 곳에서 보았던 직진 길의 오르막이 떠올랐다. 3~4분 가량을 길안내에 정성을 쏟았는데 부러 거짓 지도를 그려낼 까닭도 없었다.


낯선 사람들에게 몇 마디를 건네면서 지리적 정보만 얻은 것은 아니다. 내 몸과 머리에 스민 습성도 하나둘 도드라졌다. 다행이라면 내게 익숙한 습성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늦지 않게 짐작했다는 점이다. 그런 인식은 세 번째 길 안내자를 만나면서 나타났다.


세 번째 길안내는 1001번 도로 고갯길이 시작되던 어천마을 입구에서 짧게 이뤄졌다. 도무지 이 길이 맞을까 싶은 깊은 의혹을 품은 채 도로를 가다가 마을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 길로 가면 1001번 도로로 가나요?”


순간, 질문에 ‘눈높이’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골에 사시는 분들에게 도로번호가 얼마나 중요할까! 그저 앞길이고 어느 마을로 가는 길을 알면 족할텐데. 그것을 놓쳤다. 역시나 아저씨의 답변은 늦지 않게 확인해주었다.

“1001번 도로인지는 모르겠는데…”

도로 이름대신 높새가 지나갈 마을이름을 말하자 드디어 답이 나왔다. 마을 아저씨의 처지를 생각지 못하고 계속해서 1001번 도로라는 이름에 집착해 답변을 얻으려 했다면 서로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다.


여행길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는 지도 역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청읍으로 가는 도중에는 3명의 자객(라이더)을 만났다. 자객들은 자전거 복장을 제대로 갖췄는데 길을 막 오르던 때부터 높새 뒤편에 있었다. 그들과 함께 맞이한 두 번째 내리막에서 앞길을 양보하며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지리산을 오르다 등산객이 지나치면 서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주고받곤 했는데 평지 길에서 자객들과도 통했다.


이 짧은 한 마디는 ‘찰나의 연대’이기도 했다. 지리산 능선을 따라 종주할 때, 때론 한적하기도 하고 힘이 들어 왜 왔을까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낯선 행인이 건네는 말은 큰 에너지다. 공동의 경험자로서 갖는 연대가 주는 힘이 느껴진다. 자객들 또한 그러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서로를 보았을 때 자객임을 깨닫는 순간 공동의 경험자로서 갖는 연대감이 발했다. 그런 연대는 순간이지만, 여운이 제법 깊다. 자객들과는 산청읍에서 멀지 않은 금서면에 다다라 헤어졌다. 그들은 지리산 기슭으로 몸을 붙인 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말을 나누지 않더라도 마음이 열린 때도 있었다. 구례읍을 지나 유곡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였다. 유곡리 마을민 몇 명이 마을 앞길에 있는 정자에 앉아 있

었다. 서로 인사하듯 대화하듯 나누는 몇 마디 말을 엮어보니 구례읍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마을아낙에게 나이를 물었다. 


“서른여덟이요”

아낙은 조금은 쑥스러운 듯 짧게 답했다. 그 답에 반응이 가장 컸던 이는 아마도 노을이였을 것이다. ‘서른여덟은 내 나이인데…’. 몸을 푸는 척하며 슬쩍 그 아낙을 보았다. 내 어머니의 그 나이 때도 그랬을 것 같은 그야말로 촌의 아낙이었다. 서울에서 만나는 동갑내기의 여성들과 비교할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레 이어졌다. 동시대에 태어났어도 환경과 처지에 따라 다르게 사는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아마도 어느 한 순간의 선택이 없었다면 촌놈인 노을이 역시 그 아낙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채로 어느 시골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나이를 말하고는 쑥스러운 듯 웃던 아낙의 모습이 더 이상 ‘풍경’이 아니었다. 유곡리를 지나고도 한참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호주의 사막오지에 사는 원주민들은 수 개월간의 여행을 떠날 때 달리 무엇을 준비하지 않는다. 음식이나 잠자리 등을 그 여행지에서 해결한다. 그들은 늘 신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먹을 것이 많아도 당장 필요한 양 이상을 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른바 문명인들을 일컬어 돌연변이라는 뜻을 담은 ‘무탄트’라고 부른다. 자연의 섭리와는 맞지 않은 삶이 곧 돌연변이라는 의미다.

 

높새와 여행을 떠났던 한 무탄트에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들 신이 보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신이 보낸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름답고 고마웠다. 그럼에도 20대에 만났던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모르는 여자가 왜 아름다울까? 모르는 이가 왜 아름다울까!” (2007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