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 그 10년

공무도하가(3)

높새을이 2009. 9. 26. 22:24
 

흰날새(白首狂夫)와 여설이 한집에서 살게 된 때는 여설의 아비가 고닥나무(神木)로 향하다 죽은 이듬 해였다. 여설의 아비는 그 앞선 해에 바침인(祭物人)이 되었었다. 그 해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면서 마을이 모두 타 버렸고, 이에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달래기 위해 바침인인 여설의 아비를 가람(江)너머에 있는 고닥나무로 보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고닥나무를 향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 마을에서 방짜였던 여설의 아비 역시 가람 가운데에서 물 속에 잠기고 말았다.   


그때 흰날새는 화가 났었지만 엮살살이(結婚)를 하지 않아 마을모임(洞會)에도 낄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뒤 흰날새는 어미에게 여설과의 ‘맺음’(婚姻)을 말했다. 그후 열 번째의 둥근 달을 보던 날, 흰날새와 여설은 맺음동굴로 가서 삼일간 엮살살이를 치렀다.


둘의 맺음살이는 큰탈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그러던 살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올해부터 였다. 흰날새는 지난해 바침인이 돼 마을굿(祭儀)을 치뤘는데 큰물이 져 버렸다. 그래서 올해 마을굿은 잘 치뤄져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굿에 바칠 짐승이 좋아야 했다.   

굿에 올릴 짐승을 잡으러 갔던 날, 해가 해너미서뫼(西山)로 잠길 무렵에 사냥을 나갔던 젊은이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함께 갔던 흰날새는 보이지 않았다. 

“흰날새는 어떻게 됐지요?.


냇가에서 고기를 잡고 돌아온 여설은 흰날새가 걱정이 돼 물었다.

“글쎄요. 지금쯤 돌아왔을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얼룩멧도야지 발자국을 발견했지요. 흰날새가 먼저 쫓겠다고 이쪽으로 향했거든요. 우리들이 보기엔 그냥 스친 발자국 같았는데, 흰날새가 우기더군요. 뭔가가 있을 것 같다고요.”


옆에 서 있던 젊은이가 굵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젊은이의 손에는 날카로운 구리칼이 들려 있었고 옆에는 네 발이 묶인 어른 몸집 만한 사슴이 긴 뿔을 땅에 떨군 채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놈도 흰날새가 잡았거든요. 조만간에 돌아오겠죠. ”


여설이 흰날새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두 번의 해가 뜨고 진 뒤였다. 사냥 다음날 젊은이들은 흰날새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끝내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이내 마을 안에서는 짐승에게 어찌됐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들이 돌았다.


조부비던 여설은 혼자서 밤길을 타고 쌍돌머리뫼(石山)쪽으로 걸었다. 한 손에는 긴 창대를 들고 그렇게 뫼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동이 터 올랐다. 하지만 밤새 싸늘한 날씨와 굶주림으로 여설은 가람기슭에서 쓰려져 버렸다. 여설을 일아본 이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흰날새였다. 


“얼룩멧도야지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가서 보니, 어린 얼룩멧도야지들이 놀고 있었지요. 그래 조금 기다리니 어미가 나타나더군요. 그냥 돌아올까 했는데, 마을굿(祭儀)에 올릴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혼자 잡기로 했지요. 어찌어찌 쳐서 한 놈은 잡았는데 다른 수컷이 나타나지 않았지요. 그렇다고 한 쌍의 짐승 중에 한 마리만 잡는 것은 마을 사냥풀이(規律)을 어기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둔하며 기다렸지요. 그때 바위 근처에서 하얀 꽃이 핀 풀뿌리를 뽑아 먹었는데, 다음날 가람에 비친 모습을 보니 머리가 이렇게 세어버렸지요” 


흰날새가 마을웃어른(祭司長) 앞에서 털어놓은 며칠간의 일이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세 번 놀랐다. 흰날새가 살아 돌아온 일과, 여설이 쓰러진 일, 희게 센 흰날새의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그래서 흰날새가 잡아온 얼룩멧도야지에 사람들이 기웃거린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그날 여설은 마을굿에 올릴 짐승을 잡은 일이 좋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흰날새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일이 마음에 걸렸다. (계속)
  

*. 방짜 : 알차고 훌륭한 사람이나 물건.

*. 한둔 : 한데서 밤을 지새다. 노숙(露宿).

*. 조부비다 : 초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