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초짜, 카메라를 들다

높새을이 2009. 11. 17. 21:14



소설가 조경란씨 사이버 인터뷰를 하는 오늘, 난 사진기자가 된다. 아니 사진기자들이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난 찍새가 된다. 지금 쓰는 이 글 투에도 그게 어울리고, 내게 ‘사진기자’라는 이름이 가당찮기도 하니 찍새가 어울린다.

내가 잡지팀에서 찍새로 활동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잡지팀 안에서 사진을 잘 찍는 이로는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활동을 했다는 편집장이 1순위이고, 카메라가 있다는 이유로 깝죽이는 내가 2순위이기 때문이다. 실력으로만 보면 편집장이 찍어야 겠으나 내일 모레 그만 두는 사람에게 출장 취재를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라 내가 몸소 나섰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이유는 사진 비중이 그리 크지 않는 꼭지에 사진가를 아르바이트로 쓰기엔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다. 난 내 카메라를 들고 편집장의 망원렌즈를 빌려서 사이버인터뷰가 진행되는 선릉역 어디쯤의 강남으로 향했다. 


망원렌즈는 멋진 구석이 있다. 멀리 있어도 당기면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마음에 흑심을 품은 사람을 찍을라치면 가슴이 콩닥거리지 않을까 싶다. 하긴 그것은 초짜라는 것을 증명한다. 자동카메라를 사용하다가 지금의 ‘비싼’ 카메라로 세상을 보았을 때, 세상은 무척 넓어 보였다. 그만큼 시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역시 내 카메라도 보아도 세상은 좁다.

망원렌즈는 무겁다. 지난번에 소설가 하성란씨 사진을 찍을 때 망원렌즈를 처음 사용했는데 그때는 무게 때문에 팔이 적지 않게 흔들렸다. 


그래도 이번엔 요령이 생겼다. 내가 무릎을 꿇으면 조경란씨의 얼굴과 거의 일직선으로 되니 무릎을 꿇고 렌즈를 바친 왼쪽 손을 무릎에 기댔다. 그랬더니 훨씬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조경란씨의 표정이 다양하지 못하다. 잡지 편집 때 얼굴을 클로즈업 한 네 장의 사진을 연속적으로 배치하니까 다양한 표정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조금 난감하다. 가끔씩 술래잡기를 하기도 한다. 정면 표정을 잡으려고 조경란씨의 시선을 좇아가면 어느새 시선을 다른 곳으로 집중하고는 이쪽을 보아주질 않는다.


그래도 조금 내 안에 여유가 생겼나 보다.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세요?’란 질문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끝내고 난 그 순간, 얼굴 표정이 묘하다. 뭔가 긴 여운을 남기는 듯하기도 하고, 과거의 어느 한때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 이 생각까지를 카메라가 담아주기를 바라며 셔터를 누른다.


사이버 인터뷰 말고도 <작은이야기>에서 내가 찍새로서 활동하는 때가 있다. 신간안내에 소개되는 책 사진과 <작은이야기> 광고에 실리는 잡지책 사진이다. 여기서도 약간씩 배운다. 지난번엔 책을 세워놓고 찍었는데 책 등이 검게 나왔다. 생각해보니 앞표지만 빛이 들어왔고 등은 그림자가 졌었다. 그냥 찍을 때는 별것 아니다 싶었는데 찍어 놓고 보니 빛이 미치는 영향이 의외로 컸다. 그 다음부터는 꼭 모든 면 모두 빛이 들도록 배치하고 사진을 찍는다. 지난번 작은이야기 광고 사진을 찍을 때는 디자이너 이 선배의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그런 대로 쓸만한 사진은 구한 모양이었다. 


몇 달 전까지 작은이야기에 취재 꼭지 사진을 직접 찍었다. 그런데 엉망이었다. 그때마다 변명들이 있긴 있다. 제천에 사는 부부교사를 찍기 전날, 날씨가 무척 맑았다. 그래서 편집장에게 이런 날씨엔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어떻게 맞추라는 얘기를 듣고 제천으로 갔다. 그런데 취재 당일 날 제천엔 때 아닌 눈보라가 몰아쳤고. 취재원마저 사진취재를 거부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쉬운 얘기해가며 사진을 급히 찍었으니 나온 사진은 제대로 될리 없었다. 이럴 때마다 후회한다. 거절해도 설득해서 제대로 찍을 것을. <홍성청소년신문> 취재 때는 실외에서 찍고 싶었는데 실내 사진만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헌책방 취재할 때는 예상했던 헌책방의 분위기가 아닌지라 당황하기도 했다.  


그런 좌충우돌 찍새 생활 중에 그래도 나온 것은 지난해 1월 <말>에서 독도취재 때 찍은 사진이다. 취재에 인원제한이 있어서 내가 카메라까지 들고 갔는데, 독도경비대와 싸우며 찍느라 어떻게 셔터를 누른지도 몰랐다. 노리개가 열리자 않아 셔터가 거의 슬로비디오처럼 눌려지고 했던 그 사진에서, 그래도 건진 컷이 한 장 있으니, <말> 칼라면을 장식한 독도일출사진이었다.
 이른바 새 천년 첫날의 일출을 독도에서 찍은 사진은 이 세상에 내가 찍은 그 한 컷 뿐이다. 이번에 권혁범 교수 인터뷰 때도 사진을 직접 찍었는데, 그런대로 쓸 만 했다고 한다. 권 교수도 한 장 보내 달라고 하니 그런가 싶었다. 더욱이 <말> 구영식이 사진까지 원고료 정산을 해주겠다니, 얼마가 되었든 사진료를 받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조경란씨는 내 찍새 생활의 이 모든 것을 알았는지. 인터뷰가 끝나고 뒤풀이로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사진을 잘 찍느냐고 물었다. 아픈 구석을 찔렀지만 어찌하랴, 사실대로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잘 찍지 못하는데 그냥 카메라와 렌즈 믿고 찍고 있다고. 아마 촬영 전이었다면 취재원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빙빙 둘러 얘길 했으리라.

그래도 이런 일이라도 내가 사진을 찍을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런 일을 통해 지렁이가 기어가듯 조금씩이라도 사진을 배워가길 바랄 뿐이다. (2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