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2+33

마감, 마지막 5일의 순간들

높새을이 2009. 11. 17. 21:32
 


7월 31일 오후 5시 무렵. 이번 달 사이버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소설가 전경린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담당기자가 받았다. 한참 서로 말이 오가더니 담당기자가 소리를 높였다.

“지금 이렇게 되면, 첫째는 <작은이야기> 독자들과 <천리안> 네티즌들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고, 둘째는 <작은이야기> 마감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보충할 지가 문제입니다. 일단 편집팀에서 상의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는 끊겼다. 유난히 긴장을 불러 일으켰던 9월호 ‘마감, 마지막 5일’의 좌충우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은이야기> 마감은 매달 말일을 전후로 시작된다. 대개 고정 필자에게는27일을 전후해 원고를 받는다. 일러스트가 들어가는 꼭지들 역시 그 무렵에 마감한다. 매달 청탁하는 원고들은 30일 전후로 원고를 받고,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예외 상황이 발생할 경우 3일 정도까지 미뤄지기도 한다.


전경린씨는 몸이 아파서 사이버인터뷰를 못하겠다는 거였다. 사이버인터뷰는 취재원을 직접 회사로 모셔서 천리안을 통해 네티즌들이 직접 질문하고 취재원이 답을 바로바로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달 <작은이야기>를 통해 이번 달 사이버인터뷰는 전경린씨로 한다고 공고를 낸 상태였다. 함께 진행하는 <천리안>에서도 며칠 전부터 홍보를 했다.

그러니 전경린씨 의 전화는 거의 ‘오마이 갓!’ 수순이었다. 사이버인터뷰를 두어 시간 앞두고 이제와 못 하겠다고 해 당혹했음에도, 편집팀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했다. 아니다. 한번은 짖은 것 같다. 일단 편집팀에서 상의를 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던 담당기자와 함께 상의한 결과,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기로 하고 전경린씨에게는 항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못 오겠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으니 그것은 참 궁색스런 방법이었다.   


항의 전화는 내가 걸었다. 저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연극이라면 뛰어난 연기력이지만, 실제라면 정말 심각해 보였다. 그러나 그 어느 쪽인지는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나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택시라도 불러 줄 테니까 나와 달라고 했다. 그러나 저쪽에서는 아예 묵비권을 행사했다. ‘말하기가 불편 했을까?’하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그 순간 내 목소리는 현저히 낮아졌다. 

“몸 잘 관리하시고 다음에는 좀더 나은 인연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두고 다른 기자들이 꼬리를 내려버렸다고 평했다. 그래서 사냥개는 결국 닭 쫓던 개로 바뀌고 말았다.


참 이상하다. 이런 때일수록 힘이 솟는다. 당장 마감이 닥쳤는데 뭔가 일이 발생했을 때 오히려 신난다. 전경린씨의 펑크를 수습할 작전은 급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사이버인터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인터뷰로 대체하기로 했다. 누구를 할지 망설이다가 최근 수필집 <해주겄지>를 펴낸 이천에 사는 이인환님을 취재하기로 했다. 다른 기자는 이인환님을 섭외했다. 평소 친분이 있었으니 섭외는 어렵지 않았다. 사진기자를 섭외하려 한동안 부산을 떨다가 결국 내가 사진을 찍기로 했다. 애초 8월 1일엔 취재한 5일장 녹취를 풀고 어느 정도 기사를 잡아놓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터뷰가 더 급했으므로 일단 1일엔 이천에 가기로 했다.

 

31일 밤은 사이버인터뷰 건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하는 나눔의 글잇기는 이번 달엔 홍세화님이 글을 쓰기로 했다. 이미 7월 초에 재단의 임 간사가 청탁한 상태였다. 그 후 내가 마감일이 31일이라는 점과 우리 잡지에 맞는 글의 색깔, 주소를 알려주면 책을 보내주겠다는 등을 몇 글자 덧붙여 두어 번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이 두 이메일에 대한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 31일까지 약간은 긴장감이 돌았다. 파리에 계신 분이니 이메일 빼고는 달리 연락할 길이 없었다. 다시 이메일을 한번 더 보내고는 재단의 임 간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번 더 이메일을 보내 달라고. 그리고 묵묵히 답장을 기다렸다.


31일 밤 새로 온 편집장과 맥주를 한잔 하고 밤 11시에 사무실로 들어왔다. 낮에 원고 10매를 청탁했던 한 필자가 글을 쓰고 보니 30매 가량이 된다면서 페이지를 늘릴 수 없느냐고 물어왔다. 그렇게는 곤란하니 일단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었다.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없었다. 이 칼럼은 일러스트를 발주해야 하니까 미리 넘겼어야 하는데, 며칠 전 간략히 요약본만 넘겼던 터라 31일 중으로 원본을 보내주겠다고 했던 터였다.  


1일. 어수선한, 그럼에도 그리 걱정스럽지는 않은 마음으로 이천으로 행했다.

‘취재가 빨리 끝나야 돌아와 장터 취재 한 녹취를 풀 텐데…’

다행이라고 해나 하나. 이인환님 인터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은 인터뷰보다 집에서 내놓을 막걸리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일죽 근처의 음식점과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죽에서 버스를 탄 시간이 2시 50분. 사무실에 도착하니 5시 30분쯤 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10매짜리 원고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알고 보니 이날 오전에 회사 이메일이 뭔가 문제를 일으켰단다. 그래서 받는 이메일도 보내는 이메일도 불통이 되었다. 다시 필자와 연락을 취해 오후 무렵에 원고를 받았다.


홍세화님으로부터 답장 이메일은 1일에 왔다. 급작스럽게 손님이 와서 늦었노라고 내일 오전까지는 원고를 보내 주겠다고 했다. 다시 2일까지 기다렸다. 그나마 홍세화님이 보낸 이메일에 쓴 짧은 글이 짜증이 묻어나 있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원래 청탁한 글이 1%나눔의 차원이기 때문에 원고료가 없이 진행된다. 더욱이 <작은이야기>라는 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울 법도 했는데, 홍세화님의 이메일에 부정적인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전의 어느 필자처럼 이제야 못 쓰겠다고 하니 않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2일. 드디어 홍세화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글을 대충 마치고 (프랑스 사회의 '나눔' 제도와 문화) 노정환님이 먼저 보내주셨던 취지글을 다시 읽어보니 너무 동떨어지게 쓴 것 같아 아무래도 다시 써야 되겠습니다.”

내가 보낸 취지글은 대략 <작은이야기>에 어울리는 글 형식이었다. 칼럼은 작은이야기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에피소드를 담고, 필자의 직간접적 경험을 담았으면 좋겠다는 게 주문사항이었다. 이 원고 마감은 3일로 미뤄졌다.


2일. 정작 걱정스러운 일은 어깨춤님의 칼럼에서 발생했다. 내가 맡은 청탁 필자 가운데 언제나 꼴찌를 하지만 펑크 낸 적이 없어서 원고를 받는 일은 걱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일러스트였다. 어깨춤님은 원고를 보내면서 일러스트를 그리는 분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때부터 마음이 초조해졌다. 핸드폰도 없는 지라 집 전화번호로 통화되지 않으면 연락할 길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날 퇴근 무렵까지 일러스트를 그리는 분으로부터 연락이오지 않았다.


3일. 오전 드디어 일러스트를 그리는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후 쯤에는 일러스트를 보낼 수 있을 거란다. 덕분에 한숨 돌렸다. 연락불통일 경우를대비해 굴리던 잔머리도 멈췄다. 이달 가장 늦은 원고로 예상했던 ‘이미지스토리’ 원고가 오후에 들어왔다. 애초 청탁을 늦게 한 지라 가장 마지막 마감원고로 잡았던 터였다. 그래도 약속을 지켜 주었으니 다행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홍세화님 원고. 3일이 약속한 마감일이었다. 이쯤 되면 디자인팀 눈치가 보이는 시점이다. 절치부심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파리에서 홍세화님이 직접 전화를 거셨다. 4일 오전까지는 반드시 넣어 주겠단다. 대개 필자들이 전화를 걸어 늦는다고 말해주는 경우는 드무니, 한 감격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4일 오전 이메일에 원고가 첨부돼 왔다. 이로써 기나긴 9월호 마감 5일의 날이 저물었다.


이전에 <말> 원고 진행은 실리는 기사의 120% 정도를 진행했다. 취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청탁 원고가 들어오지 않을 때는 다른 기사로 대체가 가능했다. 그러나 <작은이야기>는 100%만 진행했다. 그러니 청탁원고가 펑크나면 어려움이 크다.

그래도 이제 짠밥이 좀 있어서 그런지 나름대로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켠에 있다. 마감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 원고에 불안해 하지만, 그 불안함까지도 즐길 여유도 생기는 모양이다. 매번 연재하는 사람들의 경우야, 최소한 매달 한 두 번씩은 통화를 하니 원고를 보내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없다. 그럼에도 늘 조금이라도 일찍 온다면 그만큼 남들을 배려할 수 있을 듯싶다. (20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