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온날
집단 자기학대 청바지, 회개하다
높새을이
2010. 7. 9. 07:36
자기학대다. 주어는 청바지다. 세 벌이니 집단이다. 집단적 자기학대다. 사전모의 혐의도 있다. 학대방식이 비슷하다. 모두 낡아 구멍이 났다. 학대부위도 비슷하다. 모두 샅 부위다. 어쩌면 스트라이크일 수도 있다. 대상은 주인인 나다. 공통점은 또 있다. 모두 구입한지 4~5년 되었다. 할만큼 했다는 반항일 수도 있다.
첫번째 청바지. 지오다노다. 신촌에서 구입했다. 7만원 정도 준 것 같다. 가장 낡았다. 엉덩이 부분이 헤졌다. 뒷주머니 밑부분
두번째 청바지. 상표미상이다. 홍대앞에서 구입했다. 5~6만원 준 것 같다. 역시 엉덩이 부위가 하예졌다. 성성한 머리털 같다. 샅 부위에도 곧 구멍이 날 태세다. 이대로 두면 당혹스러운 날
세번째 청바지. 캘빈클라인이다. 할인해 10만원쯤 되었던 것 같다. 셋 중 가장 늦게 구입했다. 앞만 보면 멀쩡하다. 엉덩이쪽도 앞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샅 부위다. 어느날 그곳에 구멍이 났다. 다른 곳은 말짱한데 딱 거기만 그런다. 묘하다.
세 벌 모두 버릴 수 없다. 우선 아깝다. 구멍 한두 개로 '아웃'시킬 수 없다. 정도 쌓였다. 그동안 모두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없다. 새 청바지에서 지금의 만족도를 얻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새로 장만하는 과정도 귀찮다. 매장을 돌아다니고, 옷을 입어 볼 일이 번거롭다.
버릴 수 없으면 살려야 한다. 방법은 하나다. 떨어진 부위를 꼬매 입기다. 두어 달 망설이다 옷수선 가게에 갔다. 세 벌 수선에 25,000원이다. 곧바로 맡겼다. 가격은 따지지 않았다. 오직 아깝고 정든 마음만 생각했다.
이틀 후, 청바지 세 벌이 거듭났다. 모두 샅 부위를 집중 수술했다. 바지 안쪽
수선한 청바지. 생명이 연장됐다. 기간은 알 수 없다. 첫번 째 것은 워낙 기력이 쇠했다. 본전도 못 찾을 수 있다. 두번 째와 세번 째 것은 다르다. 이제 입을 만하다. 1년은 더 동고동락하겠다.
여전히 수선비의 가치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청바지 세 벌을 산 것 같다. 기분이 좋다. (2010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