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 숲길의 봄비
애초 이번 자전거 여행은 3월 5일까지 제주도 해안을 한 바퀴 돌 계획이었다. 그러나 첫 날을 보내고 난 저녁에 슬그머니 일정을 바꾸었다.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는 기록은 남겠지만 너무 직선의 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첫날 일정에 오름여행을 넣은 것이다.
이런 생각과 날씨가 둘째 날 일정을 바꾸었다. 용포형의 도움을 받아 제주도 동쪽에서 갈 만한 곳을 물색하다 산굼부리와 사려니 숲길을 들러 주변을 도는 길을 잡았다. 그런데 그 길마저 비가 막아섰다. 떠난 지 채 10분이 되지 않아 곶자왈 작은학교로 되돌아왔다.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엔 높새는 두고 우산을 챙겼다. 학교에서 산굼부리까지 4킬로미터 남짓이라 쉬엄쉬엄 걷다 올 생각이었다.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산굼부리에 도착했다. 산굼부리에도 비는 내려 깊은 분화구엔 구름이 반 이상 잠겼다. 그 깊이를 볼 수 없으니 입장료 6천원은 제 값을 못한 셈이다.
이제 발길은 사려니 숲길로 잡았다. 산굼부리를 걸어오던 길에 버스정류장을 발견했다. 어쩌면 사려니 숲길도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산굼부리 매표소 직원에게 물으니 사려니 숲길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버스로 10분 정도 달리니 사려니 숲길 입구가 나왔다. 안내소 직원은 물찻오름은 통제하지만 약 10킬로미터는 걷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사려니 숲길. 비는 흩날렸다. 그로부터 세 시간 남짓, 어느 여행보다도 여유있게 걸었다. 뒤따르는 사람은 먼저 보내고, 마주오는 사람은 지나치며 혼자의 숲길을 만들었다. 길은 평지는 아니었지만 경사랄 것도 없었다. 때론 시멘트로 때론 흙으로 덮힌 숲길은 어느 길 못지않게 운치가 넘쳤다. 제주도의 어느 올레길보다도 아름다웠다. 녹음이 우거진 계절이었다면 더욱 아껴가며 걸을 법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음도 흥겨워졌다. 다른 무엇을 할 필요가 없는 하루, 문득 생각해보니 금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