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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운주사, 그저 자유로운 천불천탑의 정원




운주사에 갔다. 

운주사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천불천탑'이다. 고전 문헌을 보면, 운주사에는 정유재란 이전까지 천불산 좌우 협곡에 석불과 석탑이 일천기씩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하여 천불천탑 운주사다.    

1.
운주사는 지세가 특이하다. 양쪽으로 야트막하게 천불산 자락이 펼쳐진다. 그 야산이 서로 틈을
약간 벌여 만든 평지에 운주사가 있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이 들어선 곳까지 가는 길 역시 평지다. 그 평지부터 운주사의 맛이 시작된다.

평지에는 불탑과 불상들이 듬성듬성 놓였다. 저 좋을대로 거리를 벌이고는 약간씩 엇지게 일렬로 늘어선 불상불탑은 이정표 노릇도 한다. 중생이든 관광객이든 그 불탑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대웅전에 닿을 수 있다.

잠시 대웅전 앞뜰을 둘러본 후 대웅전 오른쪽으로 난 길을 붙잡는다. 그 길로 발걸음을 옮기면 중생도 관광객이 된다.  관광객은 이제 한동안 야산 비탈길을 따라 오른다. 이때 제대로 관광객이 되려면 한 굽이굽이 마다
뒤를 돌아봐야 한다.
그때마다 천불산 자락사이의 평지에 펼쳐진 불탑과 대웅전이 어울리는 모양새가 바뀐다. 소나무 가지사이로 보이던 불탑은 어느새 저 멀리 들판에 우뚝 선 형세를 띤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것이 한 점 한 점 돌막대기가 꽂혀 있다 할 법도 하다.  

대웅전 뒷산인 불사바위 인근에 오르면 운주사를 둘러산 천불산의 산세도 한눈에 잡힌다. 물결이 치듯 누운 능선들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운주사를 감싼 야산은 08년 4월에 난 산불로 헐벗은 곳이 많다. 불길은 용케 운주사를 넘보지 않아 그만큼의 야산은 푸른 소나무가 감싸고 있다. 

2.
드라마 <추노>에 등장
해 더욱 유명해진 와불은 대중전을 벗어나 오른쪽 야산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와불은 야산의 능선 자락에 편안히 누워 있다. <추노>를 본 이들에겐 드라마의 그 와불이되, 드라마만 신뢰하는 이들에겐 운주사의 진실이 의심스러울 법도 하겠다. 관광객의 발길을 막는 경계를 그어놓은 줄이나 와불전망대 등은 <추노>에선 볼 수 없다. 

와불말고도 곳곳에 제 편한대로 자리한 불상들도 볼만하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길을 따르다 오른쪽에 있는 야산자락을 살피면 곳곳에서 불상의 무리들을 만난다. 와불을 만나러 오르는 길가에도 바위를 지탱하듯 선 불상들이 있다. 

불상들은 어느 곳에 있든 자세며 위치가 모두 제각각이다. 거기엔 특별한 규칙이라곤 보이지 않아 그만큼이 또한 자유롭다. 불상들의 표정을 살피면, 성별이며 연령대가 제각각임을 알 수 있다. 이를 두고 운주사의 누리집 소개글에는
이렇게 표현했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그래서 불상배치와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불탑도 불상처럼 놓인 곳과 모양까지 제각각이다.  평지에 있는 불탑 가운데는 원형다층석탑도 있다. 두 야산자락 곳곳에도 석탑이 놓여있는데, 5층, 7층, 9층 등 그 높이도 다양하다.  

3.
한 시간
남짓, 운주사를 돌고  나오는데 봄기운이 뒤따라 나선다. 햇살은 따스하고 찬바람도 자취를 감췄다. 그 봄기운이 홀연히  중생과 관광객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는 객을 유혹한다. 

객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면서 생존하는 존재"인 중생과,  그저 이목구비가 부르는 대로  무턱대도 발걸음만 내딛는 존재인 관광객의 경계가 얼마나 먼 지 알 지 못한다. 
다만, 관광객인들 입과 귀와 눈의 감흥을 마음으로 읽어내지 못하면 중생이나 다를 바 없고, 중생 또한 마음의 얘기를 듣지 못한다면 관광객과 다를 바 없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낀다.  
 

그러니 존재를 이름으로 규정짓기보다 그저 봄기운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아두는 게 오늘 발걸음의 미덕일 듯 싶다. 제 멋대로 자리잡고 저 좋을대로 모양짓는 불탑불상들처럼, 이번 봄은 제멋대로 만든 천 개의 표정으로 와도  괜찮다. 할아버지봄, 할머니봄, 남편봄, 아내봄, 아들봄, 딸봄, 아기봄이라 이름지을 수 있다면 이번 봄에겐 더이상 바랄 게 없겠다. 설혹 미욱한 군상의 표정을 짓더라도 봄은 그 자체가 희망이다. (20100220)




<사진설명>
모두 운주사에서 만난 인연들이다. 나무더미는 경내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이며, 맨 아래 사진은  경내 찻집인 지혜당의 문풍지에 붙은 천들이다.   

<단어 설명> 
위 글의 "중생"의 의미는 '
다음'의 '문화원형백과'에서 빌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