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버지

아버지에게 글을 바치다 - 글, 사람과 놀다④ 꿈 한 자락 제대로 내보이지 못한 채 이천삼년 팔월 끝자락에 육십사 년 시대가 지고 청절한 한 우주가 닫히다 소년이 소박했고 청년이 가난했고 중년이 낯설었고 노년이 쓸쓸했지만 그만큼이 삶이고 역사이고 그만큼이 세상과 모든 사람들에게 베푼 사랑이었다. 저 세상의 영혼은 평온하시길. 그 사랑을 미쳐 알 수 없었건 이가 아버지 기일이 돌아왔다. 납골당에 가는데 영정을 준비했다. 납골당에 사진 한 장을 둬야겠다 싶었다. 장례식장에서 영정으로 사용했던 사진을 택했다. 돌아가시기 1년 전쯤 내가 찍은 사진이다. 추석 명절 때 낮술을 한 잔 하시고는 집에 찾아온 조카들을 보고 계시던 모습이다. 사진을 준비하고는 그것만 액자에 담자니 뭔가 허전했다. 그래서 짤막한 글을 썼다. 아버지의 삶을 담을.. 더보기
'몸 속에 암이 있는데….' 단 한 번뿐인 이별이야기3 6. 병실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버지의 간호 문제 때문이었다. 간호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인천에 사는 큰 누나. 이번에 고3인 아들 녀석이 있다. 남들과 비교해 극심한 뒷바라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고 3아들의 어머니다. 게다가 집에서 부업을 하는 모양인데, 최근에 다시 시작해 그 일을 그만 두기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중화동에 사는 둘째 누나. 결혼 전부터 하던 미싱일을 다시 시작했다. 우리 가족들 중에서는 그래도 둘재 매형의 벌이가 괜찮다 싶은데, 늘 그래도 부족하단다. 그러더니 몇 년 전부터 직접 돈을 버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일반 부업거리보다는 돈을 많이 버는 모양이다. 하긴 그 일은 그런대로 노하우를 갖고 있으니까. 간병을 .. 더보기
이생의 마지막 일들 단 한 번뿐인 이별이야기 2 “미안해요. 아프게 해서…”- 단 한 번뿐인 이별이야기1 10. 형수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나도 병원을 나섰다. 아버지를 입원시키고 난 후, 누나들끼리는 간병문제를 전화로 의논했다. 누나들은 간병인을 사자고 했다. 나는 수술 끝나고도 며칠은 중환자들이 있을 거니까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했다. 나라고 달리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며칠간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퇴원하고 난 후 어디에 계실 것인가가 더욱 큰 문제였다. 다시 가족들의 상황을 하나 둘 떠올려 보았다. 그 누구도 여의치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하는가! 다시 어머니를 달래볼까? 어머니가 버는 돈을 내가 줄 테니 아버지 간호해 달라고. 그것이 애정이 없이 가능한 일인가! 아니, 애정..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