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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5일간의 혼란


5월 29일 오후 5시 6분. 한 통의 전화가 5일간의 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혼란의 정체는 '갑작스런 이사' 였다. 이 전화가 걸려오기 3시간 전쯤에 4천만원짜리 전세 계약을 하려던 참이었다. 내 행동이 3시간만 빨랐어도 계약금 4백만원은 그대로 잃어버릴 뻔했다.  결과적으로는 이사 없이 살던 곳에 여전히 살게 됐지만, 당분간은 지난 5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를 공황에 빠질 듯 싶다.   

4일전, 5월 25일  
저녁 8시. 회사 동료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사를 준비해 달라는 거였다. 이사 예정일인 6월 4일까지 딱 10일 남았다. 곧바로 야근을 하려던 일정을 접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전세로 나온 방들을 물색했다. 그리고 한 곳을 찾았다. 학동. 전세 4천만원인 빌라다. 주인에게 전화를 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지하철을 타고 전세방에 도착하니 밤 9시가 약간 넘었다. 방 2개에 작은 거실과 넓은 베란다가 있는 빌라 2층.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큰 문제가 있지도 않았다. 베란다 앞쪽 골목길 건너에 빌라가 있다보니 조망권이 없는게 조금 아쉽다.내가 집을 비울 날까지 열흘이 안 남았으니 구할 집도 그 일정에 맞아야 했다.. 내가 계약을 서두른다면 날짜도 어느 정도 맞출수 있을 듯 했다.  몇 가지 더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회사소유다. 서울에서 지역으로 가 근무하는 직원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아파트가 한 개 뿐이니 직원들이 2명 이상 내려오면 동거해야 한다. 그러나 가족이 있는 직원이 내려온다면 동거도 원활하지 않다. 다행히 지난해 광주에 왔을 땐, 먼저 온 직원이 시골에 살고 싶다며 담양에 살고 있어 아파트에 혼자 살 수 있었다. 

평화롭던 아파트 주거에 균열이 난 때는 한 달 남짓 전이었다. 당시에 담양에 살던 직원이 살던 전세집 계약이 만기가 되었다.. 이에 주인은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그 직원은 시골에 집을 구하지 못하면 회사 아파트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나로선 1년 살았으니 비워주는 게 맞겠다 싶어 그러겠다고 했다.  

3일전, 5월 26일  
순천에 출장가는 날이었다. 출장이 아니면 휴가를 내고 전세집을 구하려 했다. 할 수 없이  어젯밤에 인터넷 검색에서 찜해 둔 몇 군데 연락처만 들고 출장길에 올랐다. 순천에서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무렵. 두어 시간 후엔 강의 약속이 있으니 남은 시간은 2시간 남짓이다. 
농성동 전세집에 전화를 걸고는 찾아갔다. 빌라 3층집. 4천만원이다. 역시 방 두 개에 거실인데, 주방을 베란다로 빼 놓았다. 거실을 넓게 쓰는 장점이 있지만, 베란다엔 난방이 안되니 겨울엔 주방이 추울 듯 했다. 옥상을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사 날짜는 맞출수 있을 듯 했다. 방을 둘러보고는 6시 30분 약속장소로 움직였다. 저녁식사는 모임이 끝난 밤 10시경에야 할 수 있었다.  

담양에 살던 직원은 광주 인근 지역에 집을 구하려 며칠을 다녔다. 그리곤 어느날 아예 집을 사기로 했었다. 계약까지 마치고 이삿날까지 잡아 두었다. 순탄히 매듭지어질 듯하던 일은 이사 이틀전에 발생했다. 사려던 집에 포함된 타인의 땅을 발견한 것이었다. 결국 계약은 해지되었고, 다시 새 집을 구하려 나섰다. 
며칠 후 다시 그 직원은 새로운 집을 구입하려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제 3자의 땅이 포함돼 있었다. 측량까지 실시해 진위를 가렸으나 두 번째 계약 역시 해지되었다. 그때가 5월 25일이었다.


2일 전, 5월 27일 
이사 예정일이 8일 남았으니 이제는 계약을 해야 했다. 오전에 휴가를 내고 두어 군데 만 더 돌아볼 작정이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집이 없으면 25일에 본 집으로 계약을 하자 싶었다. 마침 직장 직원이 아파트를 내 놓은 게 있어서 거기도 가 보았다. 거실이 없는 방 2개짜리 15평 아파트. 3천 9백만원이다. 조망은 좋은데 좁아 보인다.  

이번엔 택시를 타고 계림동으로 갔다. 다세대 빌라 3층이다. 방 2개에 거실이 넓직하다. 큰 방 창문 너머엔 텃밭과 감나무가 있다. 그동안 둘러본 곳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집을 보고와 주인에게 전화를 하니 근저당 얘기를 꺼낸다. 등기부등본을 떼 확인해보니 복잡하다.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진작에 포기할 집이었다. 공인중개사와 지인 등 서너 군데 확인하고 주인과 통화를 서너 차례 하고 나니 그제야 상황이 잡혔다. 전후사정을 알고 나니 주변에서 모두 계약을 만류했다. 복잡한 집에는 가지 말라는 것이다.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으니  하루 내내 방 구하는데 만 시간을 쓸 수는 없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보고나니 이제 욕심이 생긴다. 나를 위한 투자인데 기왕이면 마음에 드는 집을 찾자 싶었다. 빈집만 찾는다면 8일 남은 이사날은 그리 문제가 아니었다. 
퇴근시간엔 담양 직원의 차를 타고 함께 집을 구하러 다녔다. 방림동 아파트. 낡은 아파트의 내부를 깨끗이 정리했다고 하지만, 내부 구조는 너무 조잡했다. 오래전에 지은 집들이 그러듯 공간은 좁은데 방만 많이 만들어 놓은 구조였다.  

이번엔 월산동 빌라 3층이다. 4천만원. 밖은 낡은 빌라인데 안은 그런대로 쓸 만하다. 조망권이 없긴 하지만 거실이 넓고 베란다가 유리문이라 시원한 느낌이다. 날짜도 맞아 6월 2일 정도면 방을 비울 수 있을 것 같단다. 이사 후보집 중에 하나로 찜하고는 이번엔 농성동에 있는 집을 보러갔다. 첫 입주자를 구하는 신축빌라 3층인데,  그런대로 실내 공간이 잘 빠졌다. 공인중개사는 담보도 없는 건물이란다. 5천만원. 4천만원보다 1천만원이 많은 값을 잠시 생각하다 계약하자고 했다.  이 정도에서 집찾기는 종지부를 찍어야지 싶었다.

그러나 계약엔 실패했다.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거니, 이미 다른 중개사에서 계약을 해 버렸단다. 한 발 늦었다. 이제 별다른 대안에 없으면 월산동 빌라와 계약을 하겠다 마음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 월산동 빌라 세입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삿날이 10일날 아니면 어렵겠다는 거였다. 또다시 변수가 생겼다. 

한달 남짓 전, 이사를 갈 수 있다는 상황을 알았을 때, 이사 갈 곳에 대한 조건으로 자전거출퇴근을 내세웠다. 자전거 출퇴근이 쉬운 곳이 제 1조건이었다. 그러자면 자전거도로가 있는 광주천변 인근 동네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10일 남기고 이사가 확정되자 이런 조건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제 1조건은 이제 '6월 4일 이전 이사 가능한 곳'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본능처럼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거실이 넓고 전망이 시원할 것. 이는 아파트에서 1년 가량 살면서 생긴 욕구였다. 돌이켜보면 주변에 산이 있다해도 1년에 서너 번을 가기 아렵다. 옥상이 있어도 올라갈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남은 것은 집에서 가장 많이 생활하는 거실이었다. 그 거실에서 보는 전망, 그 거실의 크기 등 그 거실이 매력적이라면 그 집이 마음에 들 듯했다.


1일전, 5월 28일
또 출장이다. 마음 같아선 휴가내고 집 문제를 매듭짓고 싶은데 어쩔 수 없다. 늦어도 오늘은 계약을 해야 6월 4일 전에 아파트를 비울 수 있다.
출장 전에 일찍 출근해 볼만한 집을 찾고 있는데, 서울 직원이 글을 좀 봐 달란다. 글을 수정하고 나니 출장 시간이 돼 버렸다. 일찍 나온 담양 직원이 프린트해 준  전세 리스트를 받아들고는 출장을 나섰다. 차 안에서 4천만원 미만과 사무실에서 거리가 먼 곳은 모두 지웠다. 남은 곳은 서너 군데 뿐이었다.

다행히 출장은 광주시내다. 점심 때 농성동에 있는 빌라 4층을 보았다. 4천5백만원. 위치나 내부 구조는 그런대로 쓸만하다. 문제는 담보다. 열 집이 전세나 월세로 사는데 담보가 2억5천만원이란다.  전세를 다섯 집만 잡아도 5억원이 내 앞 순위다. 최악의 경우 대응이 쉽지 않다. 포기한다. 

출장을 마치고 저녁에 담양직원과 함께 다시 집을 보러 나섰다. 이제 집 보는 노하우도 생겨, 볼 집들의 동선까지 생각했다.  첫번째 집. 빌라 3층 5천만원인데, 그리 썩 맘에 들지 않는다. 두번째 집. 한옥 내부를 아파트식으로 수리했다고 해서 내심 기대가 컸다. 그러나 한옥이란 지붕이 기와라는 점뿐이었고, 아파트식이란 샷시문을 단 정도가 전부였다. 
세번째 집은 상가건물 3층인데, 방만 세 개에 거실도 무척 넓다. 아니 너무 넓으니 휑한 느낌마처든다. 더욱이 사무실에서 멀어지고 나니 약간 외로운 맛도 든다. 

이제 더이상 볼 만한 집이 없다. 잠시 담양직원과 얘기를 나누고는 월산동 빌라 3층과 계약을 하기로 결심했다. 10일날 이사를 해야하는 단점이 있지만, 별 방법이 없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계약맺자고 하니, 내일 오후에 하잔다.  가던 길에 사무실에 들러 그래도 미련이 남아 한 군데를 더 알아보고는 내일 계약하기로 했다. 

담양직원이 이사를 올 날은 6월 4일이다. 그때까지 내가 방을 구하지 못하면 그 4인가족과 동거를 해야 한다. 가급적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4일 이전에 이사갈 수 있는 집을 구하다보니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없었다. 
4일까지 나갈 집을 못 구하더라도 동거할 생각은 없었다. 내 짐은 한 곳으로 몰아넣고, 사무실에서 기거할 계획이었다. 다행히 6월 초에는 출장도 많고 서울 갈 일도 있어서 10일까지는 사무실 신세도 지지 않아도 될 듯했다.  


디데이, 5월 29일 
토요일 아침 9시 45분. 어제 본 집을 마지막으로 보려고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를 나섰다. 10분쯤 가니 빌라가 있다.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물건을 확인했다. 역시 방 2개인 빌라. 집은 비어 내일이라도 입주가 가능한데, 역시 담보가 1억 5천만원이 있고, 전세들어 사는 집이 적지 않아 보인다. 복덕방엔 전세든 가구수를 알려달라고 부탁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 부동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내가 그리 가지 않는다는 것  예측했나 보다.)
10시 20분. 담양 직원이 부인과 함께 아파트에 왔다. 이사할 집을 미리 보러 왔다. 내가 남기고 갈 물건을 일러주었다. 직원은 부인과 함께 가구배치 등을 설계했다. 한 시간 정도 머물던 직원은 집으로 돌아갔다.   

11시 40분. 이삿짐 센터에서 어제 부탁한 바구니와 박스를 가져왔다. 내가 이사를 언제가든 4일에 아파트에 이사를 들어오니 짐을 미리 싸울 작정이었다. 30분 후, 이사 갈 집을 미리 가 본 이삿짐센터 직원은 사다리차를 댈 곳이 없다며 난감해 했다. 장농도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했다. 
12시 10분. 월산동 빌라에 사는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어  2시 30분쯤에 전화를 하러 갈 것이라고 했다. 
12시 40분. 점심밥을 먹었다.  자전거를 타고 30분 정도면 가면 계약할 집이니 오후 2시에 나서면 된다.  계약금은 인터넷 뱅킹으로 이체하면 된다.

13시 10분. 담양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담양의 다른 집을 보고 있으니 계약 전에 전화를 해 주겠단다.  

13시 50분. 다시 담양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내가 할 계약을 저녁으로 미루었으면 좋겠단다. 담양에서 알아보고 이는 집 주인과 얘기가 5시 정도에나 끝날 것 같단다. 

13시 55분. 계약하기로 한 월산동 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사를 오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을 수 있어서 계약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세입자에게도 전화를 걸어 사정을 알려주었다. 

이사 예정일을 6일 남겨주고 다시 원점이다.  담양 직원이 이사를 오게 되는 건지도 불투명하다.  나는 이사갈 집을 구하지 못했다. 이사짐을 싸야 할 지 말아야 할 지도 판단유보다. 계약금을 마련하려고 해지한 어머니 통장은 또 어찌되는 건지도 알 수 없다.   
5일 동안 시간만 고스란히 흘렀다. 연가를 쓰고 야근을 하지 않아 사무실 일도 서너 가지가 밀렸다. 개인 일정도 세울 수가 없었다.  이사일을 가늠할 수 없으니 6월의 일정을 어떻게 사용할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이 모든 것이 5월 29일 오후 5시 6분. 한 통의 전화로 마감되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도는 우주'라는 믿음은 확인되었다. 결과는 내게 이롭다. 그럼에도 과정은 씁쓸하다. 심리적 공황은 이 씀슬함의 결과다. 

그럼에도 생활은 계속된다.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간다. 오늘 저녁은 푸짐한 저녁을 먹어야겠다. (201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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