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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존재가 부활하는 법, 자리를 찾다 시골 마을 돌담 위에 홍시 두 개가 나란히 앉아 있다. 감나무에서 떨어질 때 제 스스로 자리를 골라 이 담위에 올라앉지를 않았을 터였다. 누군가 길가에 떨어진 감을 주워 이처럼 돌 담위에 올려놓고 보니, 비록 상처입은 감이나마 제 모습을 오래 갖추게 되었다. 더욱이 지나는 길손의 눈길까지 유혹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 유혹에 발길까지 멈춘 나그네는 사진찍는 볼 일을 보고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가을 햇살에 시나브로 말라 갈 감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이 감상은 이유도 없고 원인도 모른 채였다. 그저 떨어져 이제는 의미를 잃었을 감에게 새로운 존재감을 부여한 어느 손길의 마음에 슬며시 웃음 한 번 지으면 넘치지 않았을 감정의 과잉이었다. (20101226) 지난 10월 담양에 있는 무월마을의 골목길을.. 더보기
달리면 불손한 도로 남원읍을 벗어난 버스는 24번 국도를 5분쯤 달리다 삼거리를 맞이한다. 그곳에서 직진하면 순창, 우회전하면 대산면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는 언제나 우회전이었다. 그 어느 때부터 막연한 소원이 생겼다.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지 않고 직진하는 버스를 타고 싶었다. 아니 버스가 아니더라도 직전하는 저 길을 따라 가보고 싶었다. 순창으로 가는 길은 삼거리를 지나 1킬로쯤 가면 살짝 우로 굽은 길을 올라 고개를 넘는다. 고개 왼쪽엔 야산 봉우리가 있고, 오른쪽 산자락은 풍악산으로 항해 그 길은 유일한 길처럼 보였다. 그 고개 너머, 길을 따라가면 어떤 세상이 있을지 그것이 못내 궁금했다. 남원에서 살던 14년 동안 단 한번도 가지 않았던 그 길, 27년의 시간동안 담금질만 한 끝에 마침내 넘었다. 그 고개를 넘는 .. 더보기
시월의 마지막 날, 페달 밟다 10월 31일 아침 6시 24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한옥 운조루에 자전거 한 대가 빠져나왔다. 아직 주위는 여명만 있을 뿐, 햇살의 기운을 느껴볼 수는 없다. 안개는 산자락으로 바짝 붙어 섬진강쪽에는 아직 내리지 않았다. 운조루를 나온 자전거는 이내 오미리를 빠져나갔다. 오직 노고단에서 흘러내린 지리산 자락만이 침묵으로 배웅할 뿐, 사람도 꽃도 알지 못했다. 삶은 애당초 계획하지 않는 게 맞다. 지인과 술 한잔을 할 때도 약속을 잡기보다 어느날 불쑥 전화해 만나는게 쉽듯이, 그저 그처럼 훌쩍 이뤄지는 일이 적기 않다. 시월의 마지막 날 이뤄진 자전거 여행 역시 그랬다. 어느 투어행사에 참여한 30일 혹시나 싶어 자전거를 관광버스에 실었다. 30일 저녁엔 함께 참여한 이들과 구례 토지면에서 술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