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썸네일형 리스트형 아파트 재계약의 조건 84년 남원에서 서울이란 낯선 도시로 우리 가족이 이사 왔을 때, 첫 터전이 상계동이었다. 당시 지금의 상계역 근처엔 기와집들이 즐비했다. 우리 식구가 살 집은 방 두 칸짜리 전셋집으로 250만원이었다. 그 후 지하철 4호선이 들어선 상계동은 ‘상계동올림픽'이라는 철거민의 역사를 뒤로 한 채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터전에 살던 원주민들은 철거에 밀려 쫓겨났지만, 우리 식구는 아파트들이 형세를 넓힐 때마다 밀리고 밀리면서도 단독주택을 찾아 이사했다. 매년 전세값은 올랐지만, 용케도 부모님은 빚지는 일없이 개발의 파편들을 묵묵히 피해갔다. 그런 우리 식구들에게도 그 개발의 혜택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마침내 아파트 건설 바람은 우리가 살던 전세집에도 불어왔다. 곧장 쫓겨날 처지였지만 그래도 얻..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