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돌긴남밭마을로 가는 여설은 다리가 가끔씩 휘청거렸다. 저만치 앞서 걷는 아이들 역시 힘이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밥을 먹으러 간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는 곧장 앞서 걸어갔다. 아침에 흰날새(白首狂夫)도 여설이 잔돌긴남밭마을로 간다는 것은 눈치를 챈 듯 했다. 그러나 여설 역시 내놓고 말을 못하듯 흰날새 역시 모른 척 했다. 여설은 그것이 보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미, 아직도 멀었나요?”
앞서 걷던 작은애가 기다리고 있다가 여설이 다가오자 땅 위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내리 뻗은 다리에 무릎 뼈가 볼록 드러나 보였다. 한주먹으로 감싸 쥘만한 뼈는 오늘따라 유난히 볼록해 보였다. 내려다보는 어깨 역시 부등깃 모양이었다. 여설은 다시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인제 다 왔다. 일어나거라”
작은아이가 여설의 손을 잡고 일어나 다시 걸었다. 그러나 큰애는 말없이 줄곧 걷기만 했다. 제법 싸늘한 기운이 한바탕 불어왔다. 그나마 얇은 옷이 다 헤어져버려 몸이 잔뜩 움츠려졌다.
“잔돌긴남밭마을에 가면 어떻게 끼니는 구할 수 있을 것이지만, 여설네가 값어치를 치러야 해요. 엿새 정도 그 마을에 살면서 일도 거들어야 하고``` ```, 하기야 그깟 일이 어려운 게 아니니까. 그래도 여설네는 젊으니까 그렇게 찾아 갈 곳이라도 있지”
어제 저녁, 길을 떠나려 마음을 굳힐 때 고우록(麗玉)이 한 말이었다. 굶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고우록은 그나마 홀앗이라 걱정이 덜했다.
지지난 반달이 뜰 때만 해도 마른 채로 아그데아그데 붙어 있던 열매들도 어느새 모두 동이 나 버렸다. 오가리 든 잎들도 있었다. 더욱이 지난번 둥근달 뜰 때에는 한마을 남정네가 쌍돌머리뫼(石山) 너머에 있는 숲에 열매를 따러 갔다가 짐승에게 몸이 산산이 뜯겨 죽은 일이 있었다.
지난 큰물 이후 두 번째로 일어난 이 일로 해서, 마을 사람들은 먹을거리가 없어도 쌍돌머리뫼 안쪽에서만 맴돌았다. 짐승들 역시 먹이를 구하지 못해 더욱 사나워진 모양이라고 수군거리기만 할뿐이었다.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를 한숨 돌릴 정도 걷고 나서 맨 끝에 선 나무를 안으로 안고 돌면 잔돌긴남밭마을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작은아이는 맨끝나무를 돌아가고 있었다.
가람(江)언덕에서 돌아온 흰날새는 텅빈 움집에서 멍하니 누워 있었다. 움직일 힘이 없기도 했지만 움집안에 들어서면 달리 무엇인가 할 일도 없었다. 여설과 아이들이 떠나 버린 움집안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오히려 가람기슭이 편했다. 어딘가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가람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다잡아졌다. 또한 가람은 여설과의 얘깃거리를 많이 보듬고 있었다.
맺음(結婚)동굴이 가람에 한 줄기를 보태는 샛물줄기 위쪽에 있는 것이 그렇고, 지난번 사냥 뒤 쓰러진 여설과 만난 곳도 가람이었다. 그러나 요 며칠 흰날새는 가람기슭을 그냥 걷는 것은 아니었다. 발길은 언덕과 가람기슭을 거닐었지만 눈동자는 자꾸 가람건너 죽음나무뫼너머마을쪽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종종 노프새(霍里子高)의 눈에 띄었지만 흰날새는 전혀 피하지 않았다.
‘마을굿(祭儀)이 노여움을 탄 거다. 그때 여설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조금만 참았으면 됐었는데.’
허기진 것도 잊혀져 버려 배고픔은 더 이상 흰날새의 머릿속에 남아있지 못했다. 머릿속의 양끝은 아직 마을굿과 죽음나무너머마을로 팽팽하게 연결돼 있었다. 죽음나무뫼너머마을 생각이 다가올 날에 대한 바람을 품고 있다면, 마을굿에 대한 생각은 지나버린 날에 대해 돌이키며 안타까움과 사랑과 씁쓸함을 뒤섞인 생각이었다.(계속)
*. 아그데아그데 : 열매같은 것이 연이어 매달린 모습.
*. 부등깃 : 갓난 날짐승 새끼의 어리고 약한 깃.
*. 홀앗이 : 식구가 단출하여 가간사를 혼자 처리하여 나가는 살림. 홀어미와는 의미가 다름.
*. 오가리들다 : 식물의 잎이 병들고 마르고 오글쪼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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