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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그 10년

공무도하가(1) 물살은 흰날새(白首狂夫)의 허리를 휘감고 돌았다. 몸짓이 가람(江)가운데로 나아갈수록 아래쪽으로 금방이라도 휩쓸려 갈듯 휘청거렸다. 깨어진 칼날처럼 물살이 흩어지며 흰날새의 뺨에 박혔다. 하얀 머리까지 젖은 지 오래지만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손에 쥔 주둥이가 좁은 검은 그릇만은 물에 빠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미 겉은 모두 젖어 버렸고, 그릇 둘레에 뚫린 구멍에서도 물이 가끔씩 흘러나왔다. 이른 아침 노프새(霍里子高)는 나룻터로 나섰다. 날이 더 추워지기 앞서 부서진 뗏나무통(舟)을 고쳐놓으려 했다. 쌀쌀한 새벽바람이 얇은 옷소매를 스쳤다. 발목은 풀잎에 내린 이슬에 젖어 버렸다. 노프새는 나룻터로 내려가는 길에서 물안개 사이로 드러나듯 나타났다가 지워지듯 사라지는 희미한 것이 가람 가운.. 더보기
공무도하가(9) 여설은 지난 마을굿(祭儀) 앞날밤 흰날새(白首狂夫)를 만났던 언덕을 올랐다. 건너편 둑에 난 어린 고닥나무가 눈에 들어오는 것과 함께 가람안쪽에 있는 흰날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물결은 이미 흰날새의 목 근처에서 살매를 품고 출렁이고 있었다. “흰날새, 안 돼” 여설은 몸을 구르듯 언덕을 내려갔다. 심장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마구 뛰었다. “흰날새, 흰날새, 가지 마오” 흰날새는 머리를 때리는 물살 속에서 어렴풋이 들리는 여설의 목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렸지만 여전히 가람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멀어 보였다. 죽음나무뫼(東山)너머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노력했어야 했다. ‘달리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가람기슭에서 멀어질수록 몸은 나아가기보다는 가라앉고 있었다. 되돌아갔다가 다음을.. 더보기
공무도하가(8) 여설이 잔돌긴남밭마을에서 집으로 떠난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아침 기운이 어스름히 드러날 때 어린아이들을 앞세우고 잔돌긴남밭마을을 나왔다. 한숨이라도 먼저 흰날새(白首狂夫)를 보고 싶었다. 잔돌긴남밭마을을 나설 때 맞은 게으른 어둠은 아름드리숲을 지날 때는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아름드리나무 둘레로는 여린 빛들이 일었다. 여설의 손에는 조그마한 얼룩멧도야지 가죽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엔 잔돌긴남밭마을에서 얻어 온 조와 수수가 담겨 있었다. 여설 곁에서 걷던 아이들은 마을이 가까워오자 먼저 내달았다. 멀리 희미하게 드러난 죽음나무뫼(東山)를 바라보며 여설은 고우록(麗玉)의 움집을 곧장 지나쳐 내쳐 걸었다. 잎을 반남아 떨궈버린 하늘받이나무(神堂樹)밑을 지나고 나자, 갑자기 바람이 일었다. 뿌리 둘레에 있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