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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그 10년

공무도하가(8)

 

여설이 잔돌긴남밭마을에서 집으로 떠난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아침 기운이 어스름히 드러날 때 어린아이들을 앞세우고 잔돌긴남밭마을을 나왔다. 한숨이라도 먼저 흰날새(白首狂夫)를 보고 싶었다. 잔돌긴남밭마을을 나설 때 맞은 게으른 어둠은 아름드리숲을 지날 때는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아름드리나무 둘레로는 여린 빛들이 일었다. 여설의 손에는 조그마한 얼룩멧도야지 가죽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엔 잔돌긴남밭마을에서 얻어 온 조와 수수가 담겨 있었다.


여설 곁에서 걷던 아이들은 마을이 가까워오자 먼저 내달았다. 멀리 희미하게 드러난 죽음나무뫼(東山)를 바라보며 여설은 고우록(麗玉)의 움집을 곧장 지나쳐 내쳐 걸었다. 잎을 반남아 떨궈버린 하늘받이나무(神堂樹)밑을 지나고 나자, 갑자기 바람이 일었다. 뿌리 둘레에 있던 잎사귀들이 줄기를 따라 솟구치더니 가지들을 뒤흔들었다. 깜짝 놀라 여설은 뒤를 돌아 보았다. 그러나 솟았던 잎들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을 뿐, 모든 바람은 멎어 모든 곳이 조용했다. 오히려 숨이 차 오른 여설의 숨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여설은 움집이 보이자 다시 뛰었다. 

“흰날새, 내가 왔어요”

움집의 막을 걷어올리며 외쳤으나 움집 안에는 밖에서 기지개를 폈던 어둠이 어느새 먼저 누워있을 뿐 흰날새는 없었다. 

“어디에 있어요?. 흰날새, 흰날새”


다시 움집 밖으로 나와 뒤 터앝으로 갔다. 고닥나무 장작을 기대놓은 솟을침 나무가 텅빈 뒤뜰을 지키고 있을 뿐, 거기에도 흰날새는 없었다. 움집 근처 어디에서도 흰날새를 찾을 수 없자 여설의 마음에선 반가움이 싹 가셨다. 대신 불안감이 모락거리며 피어올랐다. 어느새 손에 들렸던 얼룩멧도야지 가죽은 움집 문 앞에 떨어져 있었다. 여설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어 다시 움집안으로 들어갔다. 해너미서뫼(西山)쪽 기둥 옆에 둔 그릇이 없어졌다.

‘흰날새, 설마```’


검게 숯칠이 되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그 그릇안에는 마을 불씨가 있었다. 마을굿 때 쌍돌머리뫼(石山) 꼭대기에서 받은 마을불씨는 바침인(祭物人)과 마을웃어른(祭司長)만이 가지고 있었다. 먹을 거리를 만들거나 달리 잡스러이 쓸 때는 집집마다 아궁이에 있는 불씨를 사용했지만,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나거나 사냥에서 큰 짐승을 잡을 때처럼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마을불씨를 썼다. 불씨를 만드는 숯은 마을 둘레에서 보기 드문 고닥나무를 태워 만들었다. 고닥나무는 쌍돌머리뫼 꼭대기 근처에서만 자랐기 때문에 마을굿을 끝내고 내려오면서 몇 그루를 베어왔고, 바침인을 데리러 갈 때 다시 나무를 베어왔다.


그만큼 중요한 불씨였기에 마을끼리 싸움이 붙더라도 불씨를 가장 먼저 숨겨 두었다. 불씨를 잃으면 마을을 잃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혹여 이 불씨를 꺼뜨리게 되면 마을에서 내쫓겨 났다. 그런 불씨가 없어진 거다.


여설은 어깨가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어미, 아비가 가람쪽으로 갔다고 하요”

“뭐, 가람?”

“예, 바우아이가 아까 참에 보았다고 그러요.”

“너는 여기 있거라. 내가 가보고 올란다.”


여설은 황그리는 얼굴로 곧장 가람 쪽으로 뛰었다. 불안감이 머릿속을 메워 나갔다. 간밤에 꾼 꿈이 새벽녘에는 달콤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더 두려웠다.

마을굿이 있기 전날 밤 가람에서 흰날새를 만나던 때였는데, 왜 피풀줄기가 가람기슭을 에워싸고 있었는지, 왜 흰날새는 날 껴안으며 손에서 쇠붙이라는 물건을 꺼내 주었는지. (계속)


* 터앝 : 나무를 심을 만한 울안의 작은 터.

*. 황그리다 : 낭패를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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