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고 산뜻한 마무리였다. 생태학교 종강은 그랬다. 대학 다니면서 아마 대여섯 차례 정도는 종강파티를 했을 텐데, 이처럼 의미있게 종강을 맞이하긴 처음이었다.
6월 4일, 그동안 열두 번의 강의와 한 번의 생태기행으로 구성되었던 불교환경교육원의 20기 생태학교 종강식이 열렸다. 8시 40분 쯤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그때부터 종강식이 시작되었다. 이날 종강식은 곧 졸업식이기도 했다. 졸업장으로는 지구시민증이 전달되었다. 결석이 세 번 이하인 학생까지는 받을 수 있었다. 나 역시 취재 관계로 결석한 일이 한 차례 있었지만, ‘다행히’ 지구시민증을 받았다.
지구시민증에는 “나는 인간만 생각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생명과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나는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정신적 가치와 깨달음을 소중히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지구시민오계’가 적혀 있었다. 국민교육헌장보다 훨씬 나아보였다.
이로써 “지구시민으로서 가족과 국가 민족을 뛰어넘어 전지구적인 문제에 책임을 다하는 삶과 고통받는 이웃과 파괴되는 자연, 신음하고 있는 생명들을 살리는 일에 전력을 다할 것을 서약”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전력”을 다하고 살수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할 일이다.
이보다 앞서는 서약서를 작성했다. 불교환경교육원 박석동 부장은 복사물을 건네고는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서약내용에는 우리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한 가지씩 적으십시오.”
서약서에는 “나는 위의 서약내용을 어떠한 유혹에도 지켜내어 생태적 인간으로 거듭날 것을 서약합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 위쪽엔 서역내용을 적고 그 아래엔 이 내용에 대한 연대보증인 두 명의 서명을 받게 되어 있었다. 생태학교에서는 가끔 이처럼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는데, 나는 이번에도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결국 내가 쓴 내용은 간단했다.
“폐건전지를 모아서, 분리수거 하겠다.”
녹음기와 카메라를 이용하면서부터 건전지를 곧잘 사용하는데, 이 때문에 폐건전지가 생겼다. 그래서 회사에 폐건전지 모으는 통을 한 개 마련해둔 차였다.
서약 내용을 적은 후에는 내 주변에 앉은 이들에게 연대보증을 받았다. 나 역시 다른 두 명에게 서명을 해 주었다. 그렇게 두 장의 서약서를 작성하고 한 장은 불교환경교육원에 제출하고 나머지 한 장은 내가 보관했다.
잠시 후, 각자가 쓴 서약내용을 짧게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의견은 다양했고, 내용은 구체적이었다. 우선 에너지 절약 내용들.
“수도세를 20% 절감할 수 있도록 물을 아껴 쓰겠습니다.”
“전기요금을 2천원 정도 줄이겠습니다.”
모두들 자신들의 삶에서 실천 방안을 찾아 발표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것부터 비밀 봉지 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장바구니를 이용하겠다, 물건 사기전에 세 번 생각해 보겠다는 내용도 또한 생활적이었다.
“저는 주 1회는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겠다는 내용을 적었는데요. 이와 별개로, 자동차를 10년 이상 타자는 것인데,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경유차이기 때문에 오래 타는 게 환경적으로 득인지 경유차를 버리는 게 득인지 좀 헷갈리긴 합니다.”
또다른 이 역시 차에 관한 다짐을 밝혔다.
“자가용을 사지 않겠습니다. 만약 제가 차를 몬다면 영업용일 겁니다.”
“택시를 월 1회만 이용하겠습니다.”
아예 차를 이용하는 일을 자제하고 걷기를 즐기겠다는 내용도 나왔다.
“경동시장에서 학교(고려대)까지 버스로 두 정거장이 걸리는데, 다음부터는 걸어서 다니겠습니다.”
서울여대에 다니는 한 학생도 버스 안 타기를 결심했다. 돌이켜 보면, 일상에서 없어도 되는 것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샴푸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어떤 이의 다짐은 그에 대한 반성인 셈이었다. 먹는 문화에도 없어도 되는 것들이 있었다.
“롯데 자일리톨껌을 씹지 않겠습니다. 먹는 것 중에 입으로 들어갔다가 입으로 나오는 게 껌인데, 자일리톨껌은 광고에서 꼭 자기 전에 씹으라고 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는지 생각됩니다.”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일하는 이는 “밥을 한 번에 두 공기 이상은 먹지 않겠다”는 의외의 의견을 냈는데, 알고 보니 농사를 짓기 때문에 밥도 그만큼 많이 먹는데 이를 자제하겠다는 의미였다.
먹을거리에 대한 생태적 고민은 자연스레 채식을 하겠다는 다짐에 담기기도 했다. 먹는 게 문제인데 싸는 건 문제가 없으랴. 화장실 문화에 대한 고민은 화장지 줄이기로 나왔다.
“화장지를 하루에 24칸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는 다짐이 그야말로 화장지 한 장까지 세어야 하는 ‘꼼꼼함’을 필요로 했다면,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고 뒷물을 하겠다”는 안은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다짐이었다.
이처럼 대부분 안들은 절제된 삶을 위한 다짐들이었다. “월 1회 생태관찰을 위해 길동 공원 등에 가겠다”는 다짐은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밖에 다음 생태학교에 최소한 두 명을 데려오겠다거나 불교환경교육원 회원에 가입하겠다는 서약도 이뤄졌다. 금요일 점심을 굶어 좋은 일에 쓰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생태학교 동기들의 의견을 발표하는 동안, 그 다짐들을 내게 비춰 보았다. 자동차는 없으니 앞으로 사지 않을 것을 좀 생각해보면 되겠고, 택시는 자주 이용하는 편이니 조금 반성해야 할 것 같고…. 그런 내용 중에 머릿속에 강하게 남은 것은 ‘화장지 24칸’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내가 하루에 대략 쓰는 화장지를 헤아려 보았다. 화장실에서, 식당에서, 기타 회사에서. 이곳들 중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화장실에 가서 평소보다 화장지를 덜 사용해 보았다. 별 문제가 없었다. 이로서 매일 2장 내지 4장의 화장지를 절약하고 있다.
또 하나 관심 가는 의견은 채식이었다. 내가 먼저 고기를 사는 일은 자제하고 있지만, 고기를 안 먹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래서 스스로 “가능한 채식주의자”라고 자위하며 살기로 하고, 천천히 느리게 “가능한”이란 수식어를 떼기로 했다.
생태학교가 끝나고 회사의 한 직원에게 이날 발표된 내용들을 얘기했더니, “나는 그렇게 구차하게 절약하는 거 말고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하며 화장지 절약하기 등은 못하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하긴 내가 화장지를 하루에 2장을 줄인다고 그게 무슨 변화를 일으킬까 싶긴 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환경문제라는 게 결국 ‘편리’ ‘빠름’ ‘소비’로부터 비롯되는 문제이니 만큼 이에 대한 거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환경이나 생태운동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 앞서, 우리가 ‘편리’와 ‘빠름’과 ‘소비’에 얼마나 젖어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후엔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편리’와 ‘빠름’과 ‘소비’로부터 멀어지는 법을 배워야한다. 더디더라도.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친다고 모든 단어를 가르칠 필요는 없다. 자음과 모음, 그리고 일상의 몇 글자만 배워도 다른 글자를 스스로 깨우칠 힘이 있다. 화장지 두 장을 아끼는 일이 지구환경을 보존하는 일과 그리 멀지 않음은 그 이유 때문이다.
생태학교가 끝나고 열흘 쯤 지난 후, 내가 보증을 섰던 한 참가자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뒷물껀은 비교적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딱 한번 무의식중에 휴지 썼던 것 빼고”
‘딱 한번’에 대해 실천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난을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또한 화장지 절약과 물 절약 중 어떤 게 효율적인 환경보존이 될지 가늠이 쉽진 않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유쾌했다. 이미 그 친구의 의식은 제 몸을 다스리는 데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의식은 한 번 열리면 제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2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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