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온날

걸어다니는책, 첫 마음을 꺼내다



걸어다니는 책을 건네며 ① - 『강아지똥』   


오늘, 이 책 한 권을 권합니다. 

내 조카들이자 친구인… 지운, 지수, 예슬, 진성, 송이, 동연에게.

나이가 많든 적든 한번씩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10분 정도만 시간을 내면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이 없습니다. 

내 여섯 친구들이,

각자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빌려주고 함께 돌려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읽어보라고 권해도 좋습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 마음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건네지는 나눔의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이 쌓일 것입니다.

그 느낌을 일기장에 적어 보길 바랍니다.

일기장에 쓰는 내용만큼, 마음이 자랍니다.    

‘재미없다’고 적어도 괜찮습니다. 


이천일년 유월에, 내 조카들의 친구 노을이 드림



가톨릭대 이삼성 교수가 쓴 <세계와 미국>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용이 좋았다. 물론 많이 팔리면 출판사나 저자에게 새로운 양서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의욕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기도 했지만, 3만원이란 가격은 일반인들에게 적은 돈은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가진 책을 잠깐 주변 지기들을 빌려 줄까도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내가 가진 책들로 꼬리를 물었다. 책을 집안에 쌓아두는 것도 욕심 아닌가? 이것도 나무를 베어 없애는 일인데, 환경문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책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들이 제때 되돌려 줄까? 그럼 아예 돌려받는 걸 포기하지 뭐! 그래 책을 어느 한 사람에게 주지말고 돌려 볼 수 있도록 하자. 대신 사람들이 제대로 돌려주지 않을 것에 대한 걱정을 덜자. 내 방식의 운동이라고 생각하자….  걸어다니는 책은 그렇게 태어났다.


내 재산 1호는 책이다. 고등학교 1,2학년 무렵이었다. 학교에 어느 출판사에서 책을 팔러 온 적이 있었다. 그 출판사 직원은 여섯 권짜리 책을 소개했다. 논술을 대비한 책이라고 했는데, 한국단편소설선, 세계단편소설선, 한국고전소설선 등과 논술 글쓰기 등이 한 질을 이뤘다. 학력고사 세대인지라, 논술하고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데도 논술이라는 말에 혹했을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후회이기도 했다. 누이들이 가끔 주었던 용돈을 모아둔 게 있어 3만원을 주고 그 책 여섯 권을 구입했다. 당시엔 내 돈 주고 구입한 물건 중에서 가장 값이 나갔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 보니 내용은 그리 값나가는 물건은 아니었다.


걸어다니는 책은 먼저 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보냈다. 그 처음이 나와 서로 친구라고 부르는 내 조카들이었다. 조카들은 고 1부터 초등학교 1학년까지 나이 차가 크지만, 함께 읽어봐도 좋을 책으로 강아지똥을 골랐다. 걸어다니는 책 1호다. 처음엔 이삼성 교수의 <세계와 미국>을 걸어다니는 책 1호로 할까 했으나, 책이 두꺼워 순환주기가 더딜 것 같았다. 그럴 경우 책이 어느 한 사람에게 영원히 머물러 버릴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책 앞 부분에 ‘걸어 다니는 책을 건네며 ①’라는 문구를 붙여두었다. 뒷 부분에는 걸어다니는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 붙여두었다. 


걸어다니는 책은…


걸어다니는 책은 모두가 주인입니다.

이 책을 당신에게 건네 준 사람이나,

지금 보고 있는 당신 역시 이 책의 주인입니다. 


걸어다니는 책이 당신에게 온 데는 특별한 인연이 있을 겁니다.

그 인연만큼 소중하게 다뤄 주십시오.

또한 그 인연만큼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주십시오. 

걸어다니는 책은 개인이 가질 수 없고,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 다니는 책입니다.


믿음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만들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아주 평등한 것입니다.


믿음은 작은 것으로부터 피지만, 거목으로 자랄 힘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걸어다니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걸어다니는 책과의 만남이 즐거운 일이었길 바랍니다.



내 방엔 책이 가득하다. 1,000권에 거의 육박한 듯 싶다. 책을 본격적으로 구입하기 시작한 지는 약 10여년 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변변한 독서를 못한 나는 대학 들어와 본격적으로 책을 읽었다. <태백산맥>을 읽을 무렵부터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책은 사서 읽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었다. 그때부터 책을 빌려 읽지 않고 구입했다. 책을 구입하여 읽는 일은 중독이었고, 그 중독은 욕심을 불렀다.
대학 4학년 때는 대하소설로 비평을 쓰겠다하여, <토지>, <장길산> 등 10여 권짜리로 된 웬만한 대하소설은 모두 구입했다. 당장 읽지 못할 책이라도 좋은 책이다 싶으면 일단 사놓고 보았다. 한길사에서 나온 27권짜리 <한국사> 전집이 대표적이다. 잠시 책을 빌려준 적이 있지만, 빌려 간 사람들이 성실하지 못함을 보고는 책은 빌려주지 않는다는 원칙도 세웠다. 그 덕분에 그런 대로 잃지 않고 쌓아 두었다.

      

걸어다니는 책은 한 달에 한 권 정도씩 내보낼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 스스로 재원을 마련해야 했다. 책 한 권 살 돈이야 없지는 않지만, 내 안에 원칙이 있다. 지금까지 해오던 후원과 걸어다니는 책 운동은 똑같이 내 가계부에서는 나눔 영역에서 지출된다. 내 월급에서 나눔 지출액은 지금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을 초과하는 것은, 내 누이들이나 부모님 등 내가 먼저 나눠야 할 가족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결국 전체적으로 나눔 영역의 지출 안에서 걸어다니는 책값이 책정되어야 한다. 그게 내가 즐겁고, 오래도록 걸어다니는 책을 만드는 길이다.


그렇다고 단체에 후원하던 일을 그만 둘 수는 없다. 결국 이 원칙에 충실한 방법은 공식적인 월급 외의 수입에서 비용을 마련하자는 것. 우선 올해는 지난달에 쓴 <말> 원고료로 충당할 생각이다. 아마 구영식 기자가 술사라는 얘기만 안 하면, <말> 정기구독 하고도 책 몇 권 살 돈은 남을 것 같다. 그게 모자라면 <오마이뉴스>에 저장된 원고료를 털 생각이다. 어차피 <오마이뉴스> 원고료는 내 수입에 넣을 생각은 없다.


내 방에 쌓여 있는 책을 걸어다니는 책 목록으로 넣는 일은 지금으로선 보류 할 생각이다. 대신 ‘책 안 빌려주기’라는 원칙은 깨볼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책 목록을 작성하고 이메일 등을 통해 지기들에게 빌려주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목록 작성하는 짬을 낼 수 없다. 


누군가는 그렇게 책이 돌아다니면, 출판사들은 무엇을 먹고 사냐고, 작가들은 무엇을 먹고 사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 곰곰이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는 항의할 만큼 도서관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그 여론에 기대보건대, 내가 이참에 도서관 하나 세운 걸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걸어다니는, 보유도서가 현재로선 고작 한 권 밖에 안 되는, 철저한 믿음으로 운영되는 도서관 말이다.

얏호! 갑자기 즐거워진다. 지구 안에서 누군가도 이런 일을 하고 있겠지만, 아무튼 내 ‘똑똑한’ 머리에게 무지무지 감사한다. (2001.06.)


'하루온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로젝트 ‘생강40’ -내용은 이렇다  (1) 2010.01.03
<이웃집, 노을이네>는...  (0) 2010.01.03
흐름을 읽어라!  (0) 2010.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