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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자전거의 짝사랑

버스를 사랑한 높새, 공존을 찾다

 
아침 8시 23분. 버스는 중간종착지인 석곡면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버스 짐칸으로 갔다. 매고 있던 배낭을 풀어 땅바닥에 두었다. 짐칸 문을 열었다. 짐칸엔 몸을 돌려 누운 높새가 있었다. 버스는 곧 다른 목적지로 이동한다. 높새를 바로 꺼내야 했다. 마음이 다급했다.

앞바퀴 부분을 바로 세워 높새를 꺼내려 하자 짐칸에 꽉 끼여 움직임이 수월치 않았다. 핸들을 비틀어 꺼내려는 순간 “윽” 했다. 핸들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가
락이 짐칸 쇠기둥에 끼였다.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 높새는 용케 짐칸을 빠져 나왔다. 버스는 곧장 떠났다. 텅 빈 터미널에서 높새를 바로 세웠다. 그제야 손가락의 아픔이 느껴졌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에 생채기가 났다. 껍질이 벗겨져 핏기가 보였다.


자전거 여행을 떠날 때 고민 가운데 한 가지는 출발지까지의 자전거 이동방법이다. 모든 자전거 여행을 집에서 출발할 수 없는 노릇이고, 출발지와 도착지가 다른 상황에서 여행지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도 없다. 결국 집에서 타는 자전거가 익숙하기도 해 제일 낫다. 그래서 생각한 게 ‘점프’다. 목적지까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자전거를 이동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점프는 쉽지 않다. 그 수단이 별로 없다. 대중교통이라고 해봐야 기차와 버스가 전부다. 기차는 몇 년 전부터 자전거 점프에 활용되고 있다. 코레일은 2006년도부터 ‘MTB 열차’을 운행하고 있다. 서울과 정선을 오가는 무궁화호에 자전거 전용칸이 마련돼 있다. 대구지방환경청도 지난해에 이어 2010년 3월부터 ‘기차와 자전거 생태관광’을 시작했다. 이 기차는 매월 한 번씩 동대구역에서 경주역까지는 기차로 이동한 후, 경주 관광은 자전거로 하는 방식이다.


2010년 2월에는 동명대학교가 순천만과 여수 오동도를 가기 위한 ‘녹색체험 기차여행’을, 2009년 11월에는 ‘에코레일 자전거투어 열차’가 전북에서 제천 구간에서 운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기차와 자전거의 만남은 이벤트적인 성격이 짙다. 이 이벤트의 날짜와 장소에 나를 맞춰야 한다. 비록 시도는 긍정적이나, 아직은 자유롭지 못하다. 


버스와 자전거의 만남은 원초적이다. 간혹 동호회에서 관광버스를 빌려 그 안에 자전거를 싣기도 하지만 그 역시 개인에겐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고속버스나 직행버스가 대부분이다. 원초적 만남은 버스가 달리 무슨 변환을 하지 않고 자전거를 싣는다는 의미다. 자전거 여행을 위해 버스가 준비된 게 아니라, 그 냥 다니던 버스에 자전거를 싣는 것 뿐이다. 


3월 26일 오전 6시 40분. 버스 점프를 위해 광주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 점프는 그동안 두 번 했다. 지리산을 돌때 서울에서 함양까지 점프했고, 돌아오는 길에 남원에서 서울까지 점프했다. 그때마다 망설였다. 혹시 버스기사가 자전거를 안 싣는다고 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뒤따랐다.

일정을 석곡면까지 버스점프로 잡았음에도, 석곡행 버스표를 끊을 때까지도 그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대합실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두 명의 자전거족을 보았을 때, 그 예의없는 행동에도 반가움이 앞섰다. 저들이 저처럼 당당하다면 버스점프는 많이 이용해 본 모양이라 생각했다. 


6시 45분. 석곡행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왔다. 높새를 끌고 버스로 다가갔다. 마치 무엇을 훔치는 이처럼 마음은 쭈뼛거렸지만, 몸은 당당하려 했다. 이윽고 버스에 다가가 짐칸을 열었다. 왠지 좁아 보였다. 자전거를 들어 짐칸에 올렸다. 짐칸이 좁으니 버스와 일직선이 되게 넣을 수는 없었다. 버스를 횡단하듯 높새를 버스 옆구리에 밀어놓는 방식뿐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안쪽 천정에서 내려온 가로막이 방해물이었다. 이리저리 자전거의 몸체를 굽혀도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은 안 들어갈 걸요, 분리해야 될 거에요”

버스운전사였다. 다행히 못 싣는다는 강한 부정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자전거 분리작업을 시도했다. 높새는 앞바퀴 분리가 쉽게 이뤄지는 형태다. 2년 전에 펑크를 때울 때 앞바퀴를 분리해 본 적이 있었다. 일이 번거롭게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쪽에서 자전거를 분리하고 있는데 다른 아저씨가 다가왔다.

“그냥도 들어갈 텐데…, 이리 와 보쑈”

머뭇거리다가 다시 짐칸 앞에 높새를 세웠다. 이번엔 그 아저씨와 둘이 높새를 들었다. 얼마 후, 높새는 짐칸에 들어갔다. 안장 높이를 낮추는 것 말고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 앞바퀴도 그대로 붙어 있다.


그만큼이 다행이었지만, 거기엔 당황스러움도 담겼다. 도우미로 나타난 아저씨가 높새를 실으며 투박함을 드러냈다. 짐칸 바닥에 올려놓은 자전거를 그대로 밀어넣어 버렸다. 오마이갓! 바닥에 긁힐 높새 몸에 날 상처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혹시 긁힐까 싶어 바닥에 댈 수건까지 준비해 온 마음은 졸지에 사치가 돼 버렸다. 체인 부분이라고 어긋나면 수리가 필요할 수도 있었다. 이 방식이라면 새 자전거로는 버스 점프가 불가능하겠다 싶었다. 


석곡면에 도착해 보니 정착 그렇게 구겨 넣은 높새는 양호했다. 핸들 부분이 서너 곳의 코팅이 긁혀 점처럼 남았지만 그 정도뿐이었다. 타고 달리기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마음이 급한 내 손가락에 생채기만 남겼다.   


점프에 유용한 면만 보자면 접는 자전거가 딱 맞다. 접는 자전거라면 생채기 걱정도 없고, 혹 못 싣는다고 거절할까 깊은 기우도 해결된다. 심지어 접는 자전거라면 기차는 물론 지하철에 실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접는 자전거는 ‘모냥이 빠진다.’

안전정이야 큰 차이가 없는 자전거에 남는 건 폼생폼사다. 접이용은 대개 바퀴가 20인치가 맞다. 26인치도 있지만 차체 프레임이 너무 두껍다. 실제 사용할 땐 별 차이가 없겠지만 그 두께가 왠지 민첩함을 떨어뜨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곧 죽어도’ 접이용을 기피한다.   


목적지인 석곡면에 안착했다고 버스점프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진 아니었다. 이제는 돌아갈 일이 걱정이었다. 올 때처럼 구원의 아저씨가 나타나지 않으면, 나타나더라도 높새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려면 앞바퀴를 분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걱정은 광주로 오는 버스를 타고서야 해소되었다.


27일 12시 30분. 동광양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표를 끊고 나니 광주행 버스에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 자전거 실을 시간이 있으니 다음 차를 탈 계획으로 짐칸만 살폈다. 그 버스엔 자전거 한 대가 실려 있었다. 그것도 무척 편안한 자세였다. 버스와 나란한 방향으로 자전거도 누워 있었다.


그때부터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관심사는 버스의 짐칸 형태였다. 버스의 짐칸은 대개 2~4개의 문으로 이뤄졌다. 2개의 문으로 이뤄진 짐칸은 대개 자전거를 싣기에 맞춤이다. 3개인 경우에도 한 개의 문이 크다면 그 역시 가능했다. 문제가 4개의 문이었다. 그만큼 짐칸이 좁았다. 석곡면으로 올 때 만난 버스가 그랬다.


나름의 분석은 이뤄졌지만 공식은 세울 수 없었다. 동일한 노선을 운행하는 버스들도, 또한 동일한 회사의 버스들도 짐칸 문의 형태는 각각 달랐다. 짐칸 내부도 버스에 따라 달랐다. 그러니 앞차에 자전거가 실렸다고  내가 탈 버스도 그럴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이윽고 광주행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짐칸 문짝을 살폈다. 짐칸 문짝이 세 개였다. 그 중에 한 개는 다른 것과 달리 컸다. 외관상으로는 안심이다.

 

높새를 끌고 버스에 다가갔다. 큰 칸의 문을 열었다. 텅 비었다. 높새를 들고는 그대로 실었다. 앞바퀴를 뺄 수고도, 긁힐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는 자전거만 싣고 얼른 문을 닫으세요!”

옆에서 짐을 싣던 직원이 반가운 안내까지 덧붙여 주었다.


광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마음이 편했다. 높새는 짐칸에서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버스점프와 관련해 짐칸 형태에 대한 정보와 체험을 얻은 것은 수확이었다. 이는 나중에 자전거 캠페인으로 이어갈 생각이다. 몇 가지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한 가지 중요한 확신도 생겼다. 버스기사들은 자전거 싣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박하게 자전거 싣는 걸 도와주던 광주터미널의 아저씨며, 석곡면으로 가는 버스에서 하이킹에 관심을 가져주던 운전기사며, 광양터미널에서 안내말을 덧붙이던 직원까지, 모두들 자전거는 그냥 승객이 갖고 있는 짐일 뿐이었다.


다만 지레짐작으로 짐 가진 승객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내가 문제였다. 결국 손가락에 난 상처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조급함의 결과였다. 이 정도 깨달았으니, 상처가 아무는 동안 버스점프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질 것 같다. 그만큼 다음 버스점프가 기대된다.(201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