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보았습니다.
공 하나로 불꽃을 지핀 축제를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만들어 줄줄 아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엄숙하기 그지없던 태극기로
치마를 만들고,
두건을 만들고,
망토를 만들어
한껏 자신을 가꾸어내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얼굴에, 윗몸에, 종아리에,
페인팅 하면서
내 몸뚱아리가
나를 표현하는데
더없이 유용하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을 것입니다.
하여, 누가 ‘우리편’인줄 모를 아이들일지라도
역시 나를 가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제는 기꺼이 즐거웠습니다.
오늘 만난 아이들이
이 축제를 흐린 기억으로 남겨두기 전에
그들의 기억을 새롭게 채울
또 다른 축제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축제들이 포개지고 포개져
기억 결결이 높고 깊은 축제의 지층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때쯤엔
그 축제의 지층에 쌓인 기억들 속엔
애국(愛國)보다는 애인(愛人)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태극기 문양보다는
애인(愛人)의 이름을
얼굴에, 팔뚝에
페인팅한 이들이 많았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국가보다 소중한 존재는 ‘나’이며,
그런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바로 ‘애인(愛人)’입니다.
2002년 6월
서울시청 앞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부산 해운대 앞 바닷가에서,
피어오른 수백만 개의 붉은 씨앗들은
그런 희망과 염원을 품고 있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20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