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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존재를 보는 법 - 올레조각13





그때부터 성산일출봉은 기준이 되었다, 처음엔 그에게서 멀어지는 길손들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길손들은 그를 뒤어두었다가 오른편에 두기도 하며 걸었다. 잠깐씩 길손들이 그를 놓칠 때도 있지만 잊었다 싶을 때쯤 그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신삭봉에 올랐을 때, 그는 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올레 2코스의 첫마을인 오조리에 들어설 때도 그는 잠시 모습을 감췄다. 돌담을 지나 마을을 벗어날 즈음 그는 다시 길손의 왼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시선을 무엇에 먼저 두든 그 앞에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마을길과 밭을 가르는 돌담,  돌담너머로 붉은 빛을 띠는 흙밭, 밭 돌담 너머 자란 나무 몇 그루, 일출봉 위로 펼쳐진 하늘까지, 시선은 이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그, 성산일출봉이 지닌 매력이었다. 하나의 빛나는 존재는 그 존재의 주변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우뚝 솟은 성산일출봉 역시 밋밋한 해변에 지형을 바꾸는 것만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진가를 성산일출봉 근처에서는 알지 못하고 올레길에 들어서야 확인했다. 때로 빛나는 존재의 가치를 보려면 그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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