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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광주생활 1년의 여유와 부유



4월 21일 밤 0시 10분경, 기차가 광주송정역에 멈췄다. 검표대를 지나 역 밖으로 나왔다. 조금 걸어 나오니 택시 승강장이다. 그곳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에 올라탔다.

“금호동 ○○아파트요!”


택시기사는 이것만으로 그 위치를 알아야 했다. 내겐 더 이상 줄 정보는 없었다. 금호동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금호동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그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택시는 큰 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이면 도로로 접어들었다. 잠시 뒤엔 골목을 헤쳐 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큰 도로로 나왔다. 얼마쯤 흐른 후 택시는 어느 아파트 단지 입구 앞에 멈췄다. 다행히 그동안 택시기사는 질문이 없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아파트 동을 확인하고는 호수를 찾아 현관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도 용케 전기스위치는 찾았다. 불이 켜지면서 드러난 아파트 내부는 휑했다. 이미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일주일쯤 되었다. 빈 책장과 장롱이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이불도 없이 광주에서의 생애 첫날밤 잠을 청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이제는 1년 전 그날 밤 택시가 어느 길로 왔는지 헤아릴 수 있다. 아파트 근처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도 안다. 설혹 택시기사가 아파트의 위치를 모르더라도 이제는 안내할 수도 있다. 그만큼을 1년이란 시간이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또다른 무엇들이 1년 동안 내 몸에 경험으로 느낌으로 쌓였다.


1.

직장에서의 전보로 광주로 왔으니 직장 일이 가장 큰 변화였다. 업무로만 보자면 예전에 해 봤던 업무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낯설었고, 어느 지역이든 있게 마련인 지역정서도 낯설었다.

사람들과 관계정립을 위해 우선 내 포지션을 정했다. 축구경기의 포지션으로 하자면 중앙수비수. 공격수나 미드필더의 역할은 이미 광주에서 4년 가까이 일해 온 이들에 맡는 게 나을 듯했다. 나는 뒤에서 챙기되, 빈 부분이 있으면 한두 번 전진하는 정도면 족했다.


이 포지션은 전반적인 분위기를 조율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하기보다는 좀더 기다리면서 판을 읽고자 했다. 이 포지션에서도 몇 가지 일에서 재미를 찾아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지난해 말부터 한두 가지 조직 운영과 관련한 얘기를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포지션을 미드필더로 바꾸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비수로서 할 일은 많지 않았다. 한 명만 남겨놓고 모두가 공격수의 포지션을 가져도 나쁘지 않은 판세였다. 이 흐름에서 몇 가지 실험들도 꾸려가고 있다. 

  

1년이 지났지만 지역정서는 여전히 미지수다. 어떤 사업을 할 때, 광주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 지를 가늠하긴 쉽지 않다. 지역 사람들과 관계 맺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곳에 몇 년을 더 있을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일을 풀어나가는 데서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미 이곳에서 일했던 이들이 맺은 관계에서 도움을 받아 풀어가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2. 

광주생활에서 의미있는 변화를 찾자면 직장보다는 생활 그 자체다. 하루 생활의 12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니 크게 바뀔 일상은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여유가 많아졌다. 길거리 난전에서 장을 보는 일도, 가끔씩 훌쩍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쐬러 가는 일도 그 여유의 표현들이다. 아는 이가 드물어 갖게 된 혼자만의 시간도 축복이다. 글을 쓰든, 잠을 자든, 그 모든 시간을 나 혼자 계획하고 조절하고 살 수 있는 게 좋다.


주거 공간이 아파트로 바뀐 부분도 여유에 보탬이 되었다. 아파트 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하숙집처럼 오가는 집으로는 딱 제격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예전에 살던 빌라보다 두 배 넓으니 집이 주는 여유도 쏠쏠하다. 때로 지인들을 초대할 수도 있는 여유도 이 공간으로부터 나왔다. 조금만 벗어나면 시골과 다르지 않는 풍경도, 그곳이 광주광역시에 속한다는 사실도, 모두 도시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활의 빛인 여유가 만든 그림자는 인간관계의 빈곤화다. 대부분의 지인들이 서울에 사는데, 이들과 안부를 묻고 살기가 쉽지 않다. 얼굴을 마주하고 술 한 잔 나누긴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관계의 빈곤화에 대해 큰 걱정은 없다. 몇 년 연락이 없다고 해서 멀리 떠나갈 관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어느 날 불쑥 만나도 어제 만난 이들처럼 곧바로 수다를 떨 수 있을 듯싶다.


3. 

지난해 광주로 올 무렵 한 지인은 ‘좌천된 것이냐’는 표현을 썼다. 지역에 대한 편견이 빚어낸 말이다. 그럼에도 그 편견은 현실인지라 적지 않게 그런 얘기들을 들었다. 지역. 광주에 살면서 지역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다. 가장 큰 차이는 직장에서의 일처리에서 불거진다. 서울의 입장과 지역의 입장이 이렇게 차이가 큰 줄은 예전엔 몰랐다. 지역에서 서울을 보면 현재의 시스템에서 바뀔 부분이 많아 보인다.


지역의 생활 정서도 흥미롭다. 이를 테면 광주의 한 기업이 부도가 났다면 당장 지역언론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걱정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분위기는 혹 그 기업이 부정으로 인해 부도가 낫다고 해도 크게 바뀌지 않을 듯싶다. 마치 ‘가족 먼저’ 같은 느낌이다.  

버스 안에서 불쑥 말을 거는 어른들도 지역의 정서인 듯 싶다. 서울에서 타인에게 말걸기란 갈수록 상상마저 불허하는 분위기인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옛 시골의 정서와 아파트 단지로 대변되는 새로운 도시화의 분위기가 공존하는 이 분위기. 이게 묘하게 사람을 당긴다. 


광주 1년 살이의 결론은 이렇다. 이 정도의 조건에, 이 정도의 분위기라면 광주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가능하다면 좀 더 장기적인 생활 전망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월급쟁이의 생활이란, 언제 어디로 갈 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부유하는 삶일 수밖에 없다.


이 부유를 그나마 안정으로 돌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삶과 부유의 포함 관계를 바꾸는 일이다. 삶을 부유하게 두기보다, 부유를 삶의 일부분으로 흡수하는 방식이다. 이는 삶의 지향을 명확히 한 후, 그것을 차근차근 실천해가면 가능하다.

광주에서 또다시 시작하는 1년은 그 포함 관계를 바꿔나가는 시간이 될 듯 싶다.(201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