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취재 나흘째, 한라산에 올랐다. 한라산의 형세는 제주 지역운동의 지형도와 닮은 구석이 있다. 백록담을 에둘러 불쑥 고개를 치켜든 봉우리가 2백여 회원을 둔 시민단체들을 나타내고 있다면, 평평하고 넓게 펼쳐진 산허리는 자생적인 주민단체들의 모습에 빗댈 수 있다.
그러나 한라산은 백록담을 둘러싼 봉우리와 허리격인 중산간 지역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한라산이 우뚝 솟기 위해서는 산기슭이 있어야 한다. 파도에 부딪히며 끊임없이 자기존재를 확인해야 하는 해안의 바위들이 있어야 한다. 그 산기슭과 바위들이 한라산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시민사회를 지탱해주는 그 산기슭과 바위들은 누구일까. 민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진부해 보인다. 4박 5일간 제주지역을 취재하던 중 들었던 어떤 이의 삶으로 제주지역의 희망 찾기는 끝을 맺는다.
그는 올해 서른다섯 살이다. 한때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험 공부를 했으나 어려운 가정형편 등이 맞물려 여의치 않았다. 그는 나이를 부쩍 먹어 버렸고, 직장을 구하는 일은 갈수록 어렵게 되었다. 제주 5일장에서 노점상도 했다. 요즘엔 공공근로에 나가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시민단체의 회원이다. 활동에 참여할 때는 주변에서 성실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열심이다. 작년 여름, 공공근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시청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에서는 의문사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는 그곳으로 달려가 서명 받는 일을 함께 도왔다. 95년부터 틈틈이 장애인들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도 해왔다. 그는 말한다.
“학교 다닐 때 운동에 대한 생각은 있었지만, 내 주변 환경에 얽매여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용기가 없었고 비겁했었죠.”
<말> 11월호에 쓴 제주지역 기사의 마지막 부분의 초교 내용이다. <말> ‘연속기획 - 21세기 희망, 지역에서 찾는다’의 여섯 번째 지역으로 제주도를 취재했다. 애초에 선배들 중에 누군가 가기로 했으나, <말> 내부 사정이 복잡해 ‘한가한’ 내가 가기로 했다. 동료들의 부러움을 모른 척 하고는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10월 4일까지 5박6일 동안 제주도에 머물렀다. 애초 취재계획서는 3박4일로 잡았으나, 욕심을 내서 5박6일로 잡았다. 이 기간에 30여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때로는 잠깐 악수만 하고 헤어진 경우도 있고 밤을 함께 보낸 이도 있었다.
취재는 29일 4․3항쟁 관련한 단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오후에는 제주도 최대 시민단체인 범도민회를 취재하면서 첫날 일정을 끝냈다. 둘째날은 오전부터 바빴다. 애초 예상했던 사람들 말고도 새롭게 만나야 할 사람들이 생겼다. 이날은 점심을 먹을 시간도 없었다. 셋째날은 서귀포시 쪽에서 오전에 취재를 하고는 오후에는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일일호프에서 ‘죽치고 앉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넷째 날과 다섯째 날은 대부분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보냈다.
취재 사흘째날 밤 열린 일일호프는 지역 활동가들을 취재하러 온 나에겐 무척 좋은 기회였다. 웬만한 지역의 일꾼들은 모두 모일 듯했기 때문이다. 밤 12시 무렵 그곳에서 서른 네 살인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지역에서 ‘재야운동’을 하는 이였는데 그가 내민 명함에는 ‘철거용역 재활용품 수거’라는 글씨가 씌여 있었다. 쉽게 풀이한다면 ‘고물상’이다. 그와 술자리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말> 기자가 갖는 의무감이 더 큰 술자리였다. 그는 말했다. 제주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50만 도민이다. 그러면서 명망가 중심으로 취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개인적인 감정들도 묻어났다. 애초 <말>의 기획과도 조금 각도가 다른 내용이었다. 그러나 듣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므로.
그 때 떠오른 사람이 임의진 목사였다. 지난번 서울에 왔을 때 임의진 목사가 그런 얘기를 했었다. ‘80년 광주에는 양동시장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임 목사는 9월호 광주취재에서 양동시장 사람들이라는 상자기사를 썼다. 서른 네 살의 제주 청년이 하는 얘기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초 제주도 취재를 떠날 때 ‘양동시장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래서 미리 전화를 하고 그럴 만한 취재거리가 있는지 물색했다. 몇 가지 고민 끝에 ‘잠녀’를 떠올렸다. 그러나 몇 군데 전화취재를 한 결과, 너무나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 청년과는 새벽 세 시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한라산과 우도를 둘러보고 제주도에서 돌아왔다. 며칠 후 기사를 어떻게 쓸 지 머릿속으로 기획하면서도 여전히 ‘양동시장’이 남았다. 그런 고민 끝에 제주지역 기사를 서른다섯 살의 청년 이야기로 끝맺게 된 것이다. 비록 ‘양동시장’같은 질펀한 삶이 베어나진 않았지만, 이 청년의 삶이 바로 ‘평범한, 그러나 남다른’ 이의 삶이었는데, 고물상 청년과 함께 술집을 찾아가던 택시에서 잠깐 들었던 얘기였다.
이 청년의 이야기를 쓰는 데는 두 가지 사전 경험이 필요했다. 한 가지는 일요일 날 한라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다. 한라산에 올랐기 때문에 한라산이 제주도에서 어떤 형태로 놓여 있는 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밤새워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내용이었다. 서울에 올라온 후, 서너 군데에 전화를 걸어 이 청년과 통화하고 기사를 마무리지었다. (199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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