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부러진 집 열쇠
kBS1 라디오 <생방송, 오늘>에 ‘오늘의 단상’ 꼭지가 있다. 여기에 짧은 원고를 써 보라는 제안이 우연히 들어왔다. 이 일을 소개해 준 사람과 구성작가와 함께 만났다. 셋이서 마포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후 술 한잔하자는 분위기에 서대문 근처로 옮겼다. 내게 하루주점 티켓이 있었다. 편집장이 오전에 팔았던 것인데 나는 한 장만 구입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구입해내게 몰아주었다. 마지막엔 편집장이 가진 표까지 내게 줘 1만원짜리 아홉 장이 있었다.
셋은 서로 나이가 비슷해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모두들 술을 많이 마셨다. 안주를 세 가지 주문하고 영업시간이 되어 쫓겨 날 땐, 맥주 세 병을 가방에 넣고 나왔다. 구성작가의 ‘선동’에 셋은 다시 노래방으로 갔다. 맥주를 가방에서 꺼내고 30분 신청에 40분 노래, 다시 30분 더 신청했다. 노래방을 나오니 이번엔 구성작가가 자기집으로 가잔다. 바래다주기로 하고 함께 택시를 탔다. 신혼 5개월째인 구성작가를 남편에게 잘 ‘인도’하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제는 그때부터 였다. 노래방에서 맥주를 따다가 내 집 열쇠가 부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여러 고민 끝에 일단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역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밤 2시 30분. 할 수 없이 창문을 깨기로 했다. 그런데 몇 번 두드려 보니 어둠을 깨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창문은 깨지 못하고 문 앞 보일러실에 쭈그려 앉아 졸았다. 두어 시간 잤을까. 10월 추위에 잠을 깼다. 할 수 없이 4시 30분에 부모님이 계시는 상계동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다음날 돌아와 문을 여니 어젯밤 열리지 않던 문이 이번엔 쉽게 열렸다. (1999.10.24.)
10년 후, 나는
40대 초반의 ‘어른’들과 술을 마셨다. 역시 다른 세상을 만나는 기분이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데, 그때마다 나의 40대를 슬며시 그려다 맞춰 보고는 한다. 그러나 그 분들은 사회적으로 특별한 신분이라, 내 그림과 쉽게 맞지 않는다.
다만, 그 분들이 고민하는 일들, 공인임에도 사적인 얘기들을 들을 때, 나 역시 내 안의 나를 부지런히 들여다본다. 10여년 후에 나도 저런 고민을 하고 살까 싶다가고 고민의 깊이는 다르지만, 고민의 영역이란 곧 우리네 삶이라는 것을 발견하면, 슬며시 귀가 당겨지고 재미가 돋는다. 그래서 술자리도 즐겁다. (199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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