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이는 부뚜막위에 계란껍질을 놓고 누이 옆에 있는 비사표 통성냥을 들고 나갔다. 성냥을 밭두렁에 두고 산에 가서 잔가지가 많은 솔가지를 두어 개 꺾어 왔다. 팽낭골로 향한 밭두렁길을 사이로 위쪽에는 고추를 심고 아래쪽은 감자를 심어 두었었다. 저 밑쪽 밭두렁은 까맣게 드러나 있었으나 석이네 밭두렁은 마른 잔디들이 수북이 자라나 있었다. 집쪽으로는 마른 억새풀들이 서너 묶음이 듬성 듬성 있었다.
석이는 밭두렁 중간쯤에 와서 성냥을 그었다. 산쪽으로는 불이 가지 못할 것이라 집 쪽으로 멀찍이 떨어졌다. 오른손에 솔가지를 들고 너울거리는 불을 보고 있었다. 불은 잔잔히 부는 바람과 함께 소리없이 번졌다.
“누나, 누나, 빨리 와 봐, 불났어”
밭두렁을 빠져나와 넓은 둔덕을 향하는 불을 보고 석이는 겁이 일자 거의 울먹이다 싶이하며 집쪽 언덕에서 부엌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누나, 빨리 와보란께”
어쩔줄 몰라 하며 다시 불렀다. 눈물이 곧 흐를 것 같은 석이의 눈은 쟃빛 부엌문과 번지는 불길을 왔다갔다 했다.
“뭐라야, 불났다고”
민희가 다급하게 부엌에서 나오면서 언덕으로 달려왔다. 오른손에는 부지깽이가 들려 있었다. 불은 이미 밭두렁에서 반원을 그리며 번지며, 대밭쪽으로도 향했다. 그 앞쪽에 있는 무덤을 향해 뱀이 기어가듯 번졌다.
“난 몰라잉”
석이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놀란 민희도 어쩔 줄 몰랐다. 이내 발만 구르고 있었다.
“뭐 흐냐. 후딱 아부지 불러오제”
“어디 갔는지 모르는디”
“오동떡집에 갔을 것인께 빨리 불러 오그라”
이내 민희도 울먹이는 목소리다.
석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마을쪽으로 뛰었다. 불이 계속 번지면 앞쪽에는 왕겨를 보관해두고 화장실로 쓰는 초가집이 있었다. 밑으로는 커다란 대밭이 있어서 곧 그쪽으로 번질지도 몰랐다. 어떻게 뛰어왔는지 모르게 고개마루까지 왔다. 오동떡집은 다행스레 고개밑에 있는 첫 집이었다. 석이는 그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엄... ...”
목소리가 잠겨 제대로 나오지를 않는다. 마음이 다급해져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른다.
“엄니--”
이번엔 목소리가 작았다. 불은 벌써 초가집을 태우고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흐르는 눈물도 닦을 생각도 나지 않는다.
“엄니, 엄니---”
태모네 집 방문이 열리고 사람 몇이 나왔다. 그중에 엄마가 있음을 보고 석이는 다시 외친다.
“엄니---, 불났단께. 집에 불났어”
태모네 집 마루에 있던 석이엄마는 잘 못들었는지 다시 마당으로 내려섰다. 무어라 하는 것 같았는데 석이로서는 알아듣지 못했다.
“집에 불났당께”
이내 말이 끝나자 석이엄마가 바삐 움직이며 신발을 찾는다. 석이아버지랑 동네사람 몇이서 마루로 나선다. 이미 엄마는 사립문을 나섰다. 석이는 뒤돌아서 다시 집으로 뛰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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