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부터 사무실 옆에 선 감나무에 눈길이 자주 갔다. 겨우내 잎사귀 한 장 달지 않고 서 있던 감나무는 어느 날 잎사귀를 틔웠다. 그 잎사귀는 바람과 놀면서 이제 제법 통통한 살이 붙었다. 며칠 전에는 감꽃을 틔울 새순이 올라왔다. 생태학교에서 만난 이현주 목사는 말한다.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배우는지 알면서 배우는 게 있고, 모르면서 배우는 게 있는데, 게 중에 모르고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이는 몸으로 배우는 것인데, 사람 몸은 주변 환경에서 끊임없이 배우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기계와 가까이 하면 기계처럼 되고, 콘크리트 건물에 살면 콘크리트처럼 사고한단다.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을 염두한 말이란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으면 건강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과 가까워질수록 자연을 닮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몇 달 동안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배우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저 죽은 듯 살아 있던 나무가 저처럼 생명을 가꾸며 내게 보내는 초록의 눈짓을 즐겁게 바라보고자 했다. 그로 인해 이따금씩 내 마음이 상쾌해지기 때문에. 이 목사의 말이 맞는다면, 내가 상쾌한 만큼 나무들도 저처럼 부단히 생명을 피워 올릴 때마다 상쾌한 웃음을 짓지 않을까 싶다. 그 웃음소리와 내 웃음소리는 얼마나 닮았을까? 한번쯤 들어보고 싶다. 아! 어제 단비가 내리더니, 오늘 노란 감꽃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2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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