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였다. 접속어를 배울 때 ‘역접’을 들었다. 역접은 말 그대로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될 때 사용된다. 역접에 해당하는 접속어는 ‘그러나’ ‘하지만’ 등이다.
지난 9월 28일 있었던 2심 판결 당시 이 역접의 묘미를 새롭게 느꼈다. 판사의 판결문에 나온 서너 번의 역접은 피고인에게 순간순간 희비가 엇갈리게 했다. 서울지방법원 423호실에서 오전 10시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나는 네 번째로 불려 나갔다. 내가 피고인석에 서자 판사는 판결문을 읽었다.
“본 사건은 국회에서의 증인 불출석의 죄에 대한 문제로… 1심에서는 피고인의 증인 채택이 국회 국정감사와 관련이 없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차분했던 마음이 이 대목 ‘그러나’가 나오자 순간 찔끔했다. 무죄를 선고했다는 내용 다음에 오는 접속어가 순접이 아닌 역접이니, 반대의 뜻이 아닌가. 예상대로, 다음 내용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렀다.
“… 국림공원관리공단 임원 문제 등이 언급된 점으로 봐서 증인 채택이 국정감사와 관련있다는 검찰의 항소는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이 역접의 접속어를 대하면서 마음은 다시 원점으로 왔다. 훗날 생각해보면 판사의 이 말은 일면 당연했다. 그렇지 않다면 감찰의 항소 이유 자체를 받아들이지 말아야하며, 그럴 경우 아예 이번 2심 자체가 열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 다음부터 읽어나가는 판결문이 2심 결과를 규명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 본 사건의 관련법상 출석 7일 이전에 출석요구서를 발부해야 한다는 점이 명시돼 있고, 이번 경우는 강행규정으로 볼 수 있지만, 이번 재판 진행과정에서는 7일 이전에 출석요구서를 보냈다는 점을 확인할 길이 없어 이번 사건은 사건 자체의 성립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는 인과관계 접속어이므로 일단 다음 내용은 안심할 만했다.
“이번 검찰의 항소는 기각한다.”
그 다음엔 역접이든 순접이면 인과든 어떤 접속어도 이어지지 않았다. 판사는 이내 언제나 그래왔듯이 다음 사건 피고인을 부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상장을 받았을 때, 상장을 읽던 선생님의 목소리도 판결문을 읽는 판사의 목소리보다 또렷하지 않았다. 상장은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고, 상장 내용보다는 어떤 자세로 받을 것인가에 더 중요했다. 그러나 판결문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더욱이 역접이 사이사이 끼어드는 문장으로 구성된 글에선 더욱 어려웠다.
1심 무죄, 2심 무죄. 검찰이 다시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까지 갈 지는 잘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대법원까지 가려면 증인출석요구서 사본을 찾아야만 가능할 것 같다. 그래야 나름의 이유가 성립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2심까지의 재판과정에 보건대, 법에 관해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의사와는 달리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에서 출석요구서를 받은 시점을 따지고 들어간 게 내겐 이로웠다. 검찰 조사 당시 나는 층인 출석 요구서를 25일 받는 걸로 진술했단다. 22일 이전에 출석요구서를 받았어야 7일 이전에 받은 것으로 해서, 이번 사건이 성립된다. 2심 판사는 이것을 따지고 들어갔고, 재판 진행상 나를 고발한 당사자인 검사는 이것을 증명할 의무가 있었다.
나 역시 요구서를 받은 시점에 대해 나름대로 알아보았다. 2심 초반에는 “기억으로는 22일날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자료는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내 무덤을 스스로 파려 했는데, 맞는 것은 맞다고 말하면서 싸우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자세는 재판하는데 좋은 자세가 아니었다. 재판은 정공법이 아니라 임기응변도 필요한 듯했다.
만일 1심 재판에서 요구서 받은 시점을 문제 삼았다면 얘기는 달라졌다. 우체국에 확인한 바로 등기는 보관이 1년이라고 했다. 그러니 1심 재판은 발송한 지 1년이 지나기 전이므로 그때 자료를 찾으려 했다면, 22일이든 25일이든 보다 명확한 날짜가 밝혀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증인 출석 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논의했을 것이고, 판결이 어느 쪽으로 나왔을지는 알 수 없다.
2000년 5월부터 2001년 9월까지 평균 한 달에 한 번 꼴로 서초동을 오간 시간. 그 시간이 그 노력이 직장인인 내게, 변호사인 금실 누나에겐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한번 쯤 생각해 볼 부분이다. 훗날 돌아보면 한바탕 꿈같기도 한 날들일텐데. 재판은 한 번이 더 남았다. 그러고 보니 3심 제도란 역접 접속어 ‘그러나’를 위해 만든 제도 같다.
내 판결이 열리던 28일. 국회 문광위가 국정감사장에 증인출석을 요구했던 언론사주인 김병관, 조희준, 방상훈 3인은 ‘건강상의 이유’와 ‘진행 중인 제판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란 이유를 들어 증인출석을 거부했다. 내가 재판 받은 이유가 증인출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들 언론 사주들의 이유는 관련법상 “정당한 사유”에 드는지, 국회가 올 12월에 이들 3인을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찰에 고소할 지, 고소가 이뤄진다면 검찰은 이들을 기소를 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역접은 접속어만을 규정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네 세상에도 역접은 많다. 원칙은 권력 앞에서 순접보다는 역접인 예외가 적지 않았다. (2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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