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을 벌어 118원 어치 경조사비 지출과, 의류, 생활용품 등을 구입하고, 66원을 식생활에 썼다. 55원 어치 술을 마셨으며, 31원을 정보․관리비로 납부하고, 25원으로 여행 등 문화생활을 즐겼다. 22원은 교통비에, 21원은 각종 형태의 후원금으로 사용했다.’
2008년 노을이의 경제생활 결산이다.
거의 10여 년 가까이 가계부를 쓰고 있다. 절약보다는 돈의 쓰임을 알고 싶어 시작했다. 그럼에도 가계부를 쓴 10여 년 동안 돈 쓰임을 분석할 정도까진 이르지 못했다. 처음엔 매일 사용한 돈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 결과 매달 어디에 얼마 정도 쓴 것까지는 알았지만, 구체적인 기록이 오히려 쓰임새의 큰 그림을 확인하는데 방해가 됐다.
몇 년을 그렇게 기록하다가 결국, ‘가계부 기록’과 ‘쓰임 정리’는 전혀 다른 일이란 걸 알게 됐다. 매일 소비한 내역을 아무리 꼼꼼히 기록해도 체계적으로 분류하지 않으면 돈 쓰임을 살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양한 돈 쓰임을 모두 열거하듯이 나눌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면 몇 개의 영역을 만들어 그 영역별 쓰임새를 확인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그 현실성을 고려해 2008년에 가계부 틀을 다시 잡았다. 2008년에 쓴 지출내역을 크게 일곱 가지 영역으로 나누었다. 문화생활, 식사․식품, 술, 일반생활, 교통, 정보․관리비, 후원이다. 2008년 초만 해도 이렇게 분류하지는 않았다. 처음엔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여비(출장비), 자산취득비(자산으로 분류할 가치가 있는 물건구입) 등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법만으로는 지출의 흐름을 살펴보기가 어려웠다. 결국 내 생활 동향을 고려해 현재처럼 일곱 가지로 나누었다.
문화생활에는 여행, 도서구입과 영화 등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도서 구입은 내 급여보다는 복지비(급여와 별도로 지급되는 비용)로 충당한다. 따라서 문화생활의 상당부분은 여행이나 영화 관람비다. 식품은 점심식사비와 집에서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장을 본 모든 식료품 구입비를 포함한다. 술은 가장 간단하다. 말 그대로 술값이다. 이전엔 식사비와 함께 분류했는데, 술값으로 얼마나 사용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교통비 또한 간명하다. 지하철․버스 이용비와 택시비다. 정보․관리비는 전기세부터 핸드폰요금까지 포함됐다. 후원은 각종 후원금이다. 이런 분류에 들지 않은 내역은 대부분 일반생활 영역으로 묶인다. 여기엔 의류와 생활용품 구입, 경조사비 등이 포함된다. 이와 같은 분류법으로 나누고 나니, 이제 조금 어디에 얼마 정도의 돈을 사용했는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2008년에 가장 많은 지출을 한 영역은 일반생활비다. 수입액의 11.8%를 사용했고, 한 해 지출비 가운데 35%를 이곳에 사용했다. 일반생활비의 지출이 높았던 달은 3월과 12월이었다.
3월은 가족회비와, 병원비, 선물비, 옷 구입비 등이 겹치면서 가장 큰 소비를 하게 됐다.(아무래도 가계부 쓰는 장점은 이런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도대체 3월에 뭘 한다고 이렇게 많은 돈을 썼을까 싶었는데, 그 내역을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런 이유로 3월은 월 평균보다 2.9배나 많은, 가장 적은 일반생활비를 지출한 8월에 비해 9.3배나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일반 생활비의 지출이 두 번째로 높았던 12월 또한 충분히 이해되는 지출이 이뤄졌다. 아버지를 모셔 둔 납골당 관리비와 의류 구입비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12월에는 큰 맘 먹고 등산의류를 구입했다. 몇 년 전부터 고어텍스 점퍼를 구입하고 싶었는데, 너무 비싼 가격에 망설이고만 있던 차였다.
그러다 12월에 한 해 소득을 보니 목표한 바도 이룬 터라 나를 위해 선물하는 셈 치자는 마음으로 옷을 구입했다. 다행히 40~50%의 세일가간에 구입해 일반가격보다는 싸게 구입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구입한 옷값은 연봉의 1%에 육박하는 ‘거금’이었다.
두 번째로 지출비용이 높은 영역(수입액 대비 6.6%, 지출액 대비 19.5%)인 식품은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먹는 데 쓴 돈이니 가장 기초적인 영역이고, 가장 아깝지 않은 지출이다. 식생활비에서 가장 기본은 점심값이다. 한동안은 이 점심값은 하루 3,000원으로 굳어 있었다. 시청에 구내식당이 있어서, 별 약속이 없으면 사무실 동료와 이곳을 주로 이용했다. 점심값 지출은 시청이 공사에 들어가면서 식당이 폐쇄돼 버려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근처에 3,900원짜리 한식 뷔페가 있어 인상폭이 크진 않았다. 다른 식당에서 식사하면 한 끼에 6,000원이 지출된다.
식생활비 사용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11~12월 두 달 동안 지난해 식생활비의 31%를 지출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도 확연한 이유가 있다. 10월에 승진 발표가 있었는데, 그에 따른 ‘한 턱’비였다. 11월엔 가족들과 함께 한 식사 비용이 있고, 12월엔 직장 바깥의 지인들과 만나면서 쓴 식사비가 포함됐다. 그럼에도 정작 승진이 발표된 10월엔 식사비에 큰 증가가 없었는데, 그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통계는 술값이다.
술값은 세 번째로 지출비용이 높은 영역(수입액 대비 5.5%, 지출액 대비 16.3%)이다. 지난해 술값 지출은 10월 이후 석 달을 제외하면 무척 양호하게 이뤄졌다. 1월~9월 아홉 달 동안 지출된 술값은 월 평균 12만원이었고 한 해 술값의 52%였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10월 이후 석 달 동안 2008년 술값의 48%를 사용했다는 의미다. 이런 결과 또한 승진의 영향이 컸다. 승진이 확정된 10월엔 46만원 정도가 술값으로 지출됐다. 1~9월 평균 비용의 거의 4배 수준이며, 작년에 가장 많이 지출한 달이기도 하다.
이런 지출 경향을 승진과 관련하여 밥값과 비교하면 재미있는 흐름도 보인다. 10월엔 사무실 동료들을 중심으로 술값으로 승진턱을 냈고, 11월 이후엔 사무실 바깥의 지인들을 만나 밥으로 승진턱을 냈다는 경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10월 이후 승진턱으로 낸 술값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술값은 양호하게 나간 셈이다. 여기엔 두 가지 분석이 따른다. 술값이 적게 들었으니 돈 아끼고 몸도 챙긴 이점이 있다. 그러나 그만큼 사무실 동료들이나 지인들과 관계가 소원했다는 점을 반증하기도 한다.
나머지 지출영역인 정보․관리비나, 교통비 등은 큰 의미가 없다. 여행 등 문화 생활비와 후원금 또한 달리 분석할 내용이 마땅치 않다. 다만, 후원금은 수입액의 3%대까지 높이는 게 목표였으나 그에 못 미쳤다. 거기엔 ‘걸어다니는 책’을 실행하지 못한 게 원인이 될 듯도 싶다. 문화생활비 또한 수입액 대비 2.5%의 지출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고자 했으나 그 또한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그 결과가 고스란히 가계부에 반영됐다.
기록은 훗날 그 시간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할 때 유용한 사다리가 된다. 가계부 역시 그런 사다리가 되었다. 가계부를 다시 분석하고 정리한 이 글은 그 사다리를 더욱 견고하게 해 준 듯싶다. (2009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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