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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비혼남의 장보기 탐구생활

 

스탑, 우선멈춤, 주의에요. 이 글은 티비 프로그램 <롤러코스터> 버전으로 생성되었어요. <롤러코스터>를 모르는 언니,오빠, 누나, 형, 동생,삼촌,아저씨,아줌마들은 이 글을 읽으면 열라,울트라,초특급,쓰나미,킹왕짱,왕짜증이 날 거에요. 그래도 원망은 마세요. 티비 안보는 당신이 문제에요.  



남자, 요리 못 해요. 요리도 남자 못 믿어요. 그래도 비혼남은 어쩔 수 없어요. 자신이 하지 않으면 그대로 굶어죽어야 해요. 동거니,병허니가 합심해 낳온  미모만땅의 비혼남이라도 먹는 건 다른 대책이 없어요. 주말을 맞아 한 비혼남의 장보기 탐구 생활을 엮어보았어요

 

토요일 오후, 국거리가 떨어졌어요. 남자는 저녁꺼리를 생각해요. 한 달 전쯤에 산 밑반찬이 있었어요. 깻잎김치, 몇 장 되지 않아 가장 빨리 떨어졌어요. 마늘짱아치, 매실에 담았다고 가장 비쌌는데 역시 양이 적었어요. 그저께 끓인 미역국도, 이제 냄비 바닥이 보여요. 더 있어도 이건 못 먹겠어요. 비싼 소고기를 넣었는데도, 미역이 본분을 잃었어요. 맛을 내놓지 않아요. 몹쓸 미역이에요. 음식물 쓰레기만 아님 몽땅 버렸을 거에요. 시금치, 진작 먹어 치웠어요. 만만한 국거리인 콩나물도 없어요.


할 수 없어요. 남자는 옷을 챙겨 업어요. 아무래도 장을 봐야 겠어요. 거울을 봐요. 머리가 개판,난장판,아수라판,빨래판이에요. 하지만 걱정 없어요. 모자 하나로 간단히 해결해요. 물 절약이자 시간 절약이에요.


남자는 큰 길가에 펼쳐진 난전으로 갔어요. 각종 야채장수 아줌마들이 10여명 있어요. 남자는 째발리 스캔하지만, 누구에게 다가갈 지 고민이 시작돼요. 아줌마들은 다른 손님은 불러도 이 남자에겐 눈길도 안줘요. 장바구니를 들고 올걸 그랬나봐요. 생선 가게도 세 곳이나 돼요. 무엇을 살지 딱히 정한 건 없어요. 난전 앞에서 서성거리며 슬쩍 야채들만 쳐다봐요.


진열된 야채는 이름 모를 것도 많아요. 어떻게 요리해 먹어야 할 지 알 수도 없어요. 간혹 상추, 배추, 감자 등 아는 물건이 있으면 무척 반가워해요. 그래도 절대 장사하는 아줌마에게 말을 못 걸어요. 아줌마에게 말 거는 순간, 무조건 물건을 사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자는 그렇게 10분을 서성거려요. 드디어 용기를 내요. 굶어죽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에요. “저거, 얼마에요?” 사려는 건데도 역시 이름은 몰라요. 그냥 ‘저거’에요. ‘이거, 요거, 요 앞에꺼,’ 등이 등의어에요.  


남자는 아줌마가 부르는 대로 물건 값을 치러요. 우거지! 3천원이래요. 3천원을 내요. 재래식 된장! 1kg에 1만원이래요. 1만원을 내요. 상추! 1천원원이래요, 1천원을 내요. 무! 5백원이래요, 5백원을 내요. 그나마 무는 두 개 1천원이란 걸 한 개만 구입 했어요. 남자는 5백원을 벌었다고 무척 흐뭇해해요.

아줌마는 된장국 끓일 때 넣으라며 뭔가를 세 뿌리 줘요. 덤이에요. 남자는 역시 이름을 몰라요. 대파 같긴 한데, 잎이 일반 파와 달라 자신할 수 없어요. 뿌리도 먹어야 하는지 고민이 돼요. 제기랄, 받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이번엔 생선가게로 갔어요. 여기서도 주인에게 말을 걸면 큰일나요. 말을 건 순간, 주인은 가게에 쌓아놓은 오징어, 동태, 간재미, 꼬막, 우럭, 광어 등 모든 생선을 남자에게 팔아버리려 할 지 몰라요. 남자는 그 생각에 조심조심 곁눈질해요. 아싸! 드디어 한 가지를 발견했어요. 피조개가 25마리에 1만원이래요. 한 번도 안 사본 거니 싼 지 비싼 지는 알 수 없어요. 아까 산 무를 넣어 국을 꿇일 수 있겠다 생각해요. 하지만 선뜻 다가설 순 없어요 서성거리길 5분, 드디어 주인에게 말을 걸어요. “이건, 손질해야 해요?”


아뿔싸, 주인은 남자가 쌩초짜,원시,날것,원조,젖비린내나는 요리맹이란 걸 알아버렸어요. 이 남자는 모든 요리는 장금이만 하는 것으로 알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주인은 비웃음을 참고 남자에게 답변해 줘요. “이쪽의 검은 부분하고 여기는 손질을 해야 돼요.”


남자는 냉큼 돌아서요. 집에 장금이도 없는데 손질을 해야 하다니. 아마도 키조개는 임금들만 먹었던 게 틀림없어요. 여전히 남자는 생선가게를 서성거려요. 앗싸. 이번엔 이름을 아는 생선이 있어요, 고등어에요. 두 마리 6천원인데, 역시 망설여요. 요리를 할 수 있을지 레시피를 작성중이에요. 이때를 기다려 주인은 잽싸게 채근해요.


“그걸로 드릴까요?” “네” 이런 시빌레이션,우라질,빵꾸똥꾸에요. 남자는 얼떨결에 대답하고 말았어요. 어느새 고등어는 주인이 내리친 칼에 동강나고 있어요. 잠시 후 남자, 6천원 내고 동강난 고등어를 받아요. 그런데 왠지 집에서 한번은 씻어야 할 것 같아요. 차라리 키조개를 살 걸 그랬나 봐요.


이제 남자는 뿌듯해 해요. 잔뜩 샀으니 이제 한 열흘 정도는 먹고살겠다 싶어요. 된장은 몇 달은 먹을 거라 생각해요. 우거지는 된장만 넣고 끓여도 되니 쉬운 요리에요. 멸치 넣고 국물 맛을 내면 조미료도 필요 없어요 양도 많아 예닐곱 끼는 먹겠어요. 상추는 시들기 전에 다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당분간 풀 뜯는 소가 됐다 생각할래요. 무는 고등어 조릴 때 냄비 밑바닥에 깔고 조려야겠다 싶어요. 이 정도면 물가폭등이 일어나도 든든하다 싶어요.


돌아오는 길가에서 이번엔 곶감을 팔아요. 한 봉지에 8천원이래요. 평소에도 먹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 못 사먹던 거예요. 물가폭등에도 버틸 만한데…. 남자는 다시 질러요. 1만원을 내고 곶감 한 봉지를 받아요. 너무 즐거워 거스름돈도 안 받고 가려해요. 곶감 장사꾼이 서둘러 2천원을 챙겨줘요. 이런 남자, 2천원 안 주었다가 나주에 무슨 봉변을 당할 지 몰라요.     

  

곶감까지 든 남자는 정말 든든해 졌어요. 곶감은 두고두고 먹겠다 작심해요. 더욱이 집에는 햇노가리도 있어요. 금요일 저녁에 집에 오는 길에 산 거에요. 이대로 방공호를 파고 땅속에 들어갈까 봐요. 맥주도 세 병 있으니 이제 딱이에요. 


이상 28,500원으로 부자가 된 비혼남의 장보기 탐구생활이었어요. 다음 시간엔 음식만들기 탐구생활을 할까 생각,고민,계획중이에요. (201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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