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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두부 사며 덤으로 마음을 받다


양동시장에 들러 장을 봤다. 반찬과 국거리를 간단히 사고 집으로 돌아가려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색 신호를 기다렸다. 

그때 횡단보도 옆 길가에 펼쳐진 난전에서 두부 한 판이 막 개시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할머니가 칼로 열두 조각을 낸다. 순간, 횡단보도 근처에 있던 손님들 서너 명이 몰려든다. 두부 모 가르기를  마친 할머니는 손님들이 달라는 대로  두부를 비닐봉지에 담는다.

옆에 서 있다가 두부 한 모를 주문했다. 굴국을 끓일 참인데 거기 넣으면 좋겠다 싶었다. 김이 모락모락 거리는 걸 보니  김치을 얹혀 그냥 먹어도 좋겠다. 

하얀 비닐 봉지에 담긴 두부는 다시 검은 비닐봉지에 한번 더 포장된다. 할머니는 두부를 담으며 뭐라 한마디 하신다. 차 소리에 잘 들리진 않았지만 김치랑 먹으면 좋다는 의미같다. 포장을 마친 할머니는 두부가 든 봉지를 내게 건네려다 다시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안쪽 하얀 비닐 봉지의 입구를 한번 더 묶어 여민다. 

"따뜻할 때 묵어야 하는디, 남자라..."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보통 아줌마들이라면 두부가 식지 않게 비닐 봉지를 잘 묶어서  가져갈텐데, 나를 본 할머니는 그만한 세심함이 부족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할머니의 손에 한번 더 다듬어진 비닐 봉지를 받아들고는 1500원을 냈다. 

양동시장에서 집까지 자전거로 20분 정도 걸렸다. 집에 도착해 보니 두부는 따뜻했다. 그 맛에 김치를 꺼내 두부를 한입 먹었다. 두부가 식었더라도 바쁜 시간에 손을 한번 더 놀려 봉지를 여미던 할머니의 마음은 기억하고 볼 일이다. 두부의 온기보다 오래갈 그 따뜻한 마음은 돈을 주고 산 것은 아니었다. (201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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