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갇혔다. 그 길을 달리던 높새도 멈췄다. 시청광장 동쪽면에 난 7차선 도로가 끊겼다. 전경버스가 디귿자형으로 장벽을 쳤다. 버스와 버스가 바짝 붙어 사람이 지나들 틈이 없다. 도로가 섬이 돼 버렸다. 그 섬 가운데 전경들이 열을 지어 앉았다.
높새는 그 전경들 옆에서 머쓱해졌다. 널찍한 7차선 도로 안에 전경들과 높새가 서로 아는 척 모르는 척 조우한 것이다. 전경으로 둘러싸인 틈 사이에 갇힌 꼴이기도 했다. 마치 곧 총성이 울릴 것 같은 전쟁터에 어린아이 한 명이 무심코 지나가는 영화같은 상황이었다.
전경들은 높새에겐 도대체 관심이 없다. 어느 소대의 전경들은 차디찬 바닥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유는 없어보였다. 주변에 있는 경찰들 또한 ‘들어오지 마라’는 한 마디 말도 없었다. 헬멧을 쓰고 마스크를 한 흡사 스파이같은 복장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너 같은 존재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또는 ‘너 아니더라도 나 지금 무지 바쁘거든’ 하는 정도였다.
경찰의 무관심은 이 텅 빈 도로로 들어올 때부터 시작됐다. 무리를 지어 덕수궁입구에서 플라자 호텔 쪽으로 움직이는 전경들은 바빴다. 무전기를 든 전경들도 무전기에 말을 싣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틈 사이에서 태평로의 차량 소통을 돕는 교통경찰 역시 자전거는 안중에도 없었다.
횡단보도 신호는 좀처럼 자전거와 사람의 통행을 허용하지 않았다. 다행히 저 멀리서 전경무리들이 길을 건너면서 그나마 서울광장 쪽으로 닿을 수 있었다. 전경들이 신호등이었다.
그럼에도 높새만이 전경들에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전경의 무리만 봐도, 전경버스들이 도열한 현장만 봐도 ‘그냥’ 눈이 갔다. 그럼에도 바라보고 있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태평로로 들어서면서 전경들의 무리 옆을 지나칠 때는 신기하기까지 했다. 전경들 옆을 이처럼 평화롭게 지나다니. 더욱이 역주행하는 높새가 불안해 보였는지 전경 두어 명이 짧게나마 길을 터 준다.
이런 어색한 평화는 덕수궁 앞에 와서는 난감함으로 바뀌었다. 높새의 주 통행로인 시청광장은 전경버스들로 장벽이 쳐 있었다. 광장으로 드나드는 게 아예 불가능했다. 잠시 궁리하다가 택한 길이 플라자호텔 앞을 지나 갈 수 있는 무교동길이었다. 그런데 그 길도 무관심한 전경들과 유관심인 높새의 머쓱한 조우를 끝으로 끊겨버린 것이다.
높새는 다시 길을 잡아야 했다. 사무실을 10여 미터 앞에 두고도 닿지 못했다. 어디로 갈 것인지를 선택할 여지는 없었다. 을지로, 막혔다. 무교동길, 끊겼다. 조선호텔 방향, 잘렸다. 덕수궁길, 갇혔다. 서울역 방향, 역방향이다. 남은 길은 한 가지뿐이다. 광화문 쪽. 높새는 되돌아 나와 광화문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바깥차선은 전경버스로 울타리가 됐다. 그 울타리는 태평로와 인접한 시청과 광장 전체를 막았다.
다행히 길이 열린 출구를 찾았다. 프레스센터 옆에서 국민은행쪽으로 난 길은 텅 비었다. 일방통행로인데 차들이 없다. 무교동 입구에 댐이 들어섰으니 아예 물길이 막힌 것이다. 그 길을 역주행해 사무실에 도착했다.
11월 11일 일요일. 높새의 출근길은 시청광장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별 부담이 없었다. 여느 날처럼 집을 나서 한강변을 달렸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마포길 변에 있는 자전거매장에 잠시 들른 정도였다. 체인이 좀 늘어난 듯 해 간단한 정비를 부탁했다. 채 5초도 걸리지 않고 정비는 끝났다.
중앙일보사 앞을 지나 서울광장으로 진입할 무렵, 2호선 시청역 입구쪽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로 서성였다. 집회에 참가하려는 이들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서울광장에서 집회가 있다는 것은 라디오뉴스를 통해 들었다.
그때부터 잠시 앞길을 잃은 높새의 일요일 출근은 그나마 그 정도에서 헤맨 것이 다행이었다. 5분만 늦었어도 높새는 한참을 헤매었어야 했다.
“이곳은 많은 시민들과 차량들이 통행하는 곳입니다. 여러분들의 불법 도로점거는 많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불법 도로점거 행위를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해산하지 않을 시에는 살수와 함께 해산조치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높새가 사무실에 도착하고 5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경찰의 집회 해산 방송이 울렸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집결한 시위대가 덕수궁앞쪽에서 경찰과 대치상황을 이뤘다. 시위대는 서울역 방향과 중앙일보사쪽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십 개의 깃발이 휘날렸다. 경찰들은 전경버스로 태평로를 가로막았다. 전경들의 점거로 서울광장 주변은 찬 듯 비었다.
수십 번의 경고방송이 들리고, 시위대쪽에서 구호와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제 높새가 지나온 길은 사라졌다.
그 거리를 창 너머로 힐끗거릴 때 정작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지금까지 본 전경도 시위대도 아니었다. 사무실 건물 앞길에서 샛노랗게 가을을 붙잡은 은행나무들이었다.
시린 칼바람 같은 현실의 대치보다 계절의 극치로 돋보인 은행나무가 먼저라니. 세월이 흐르면서 몸과 마음이 너무 멀리 현실에서 떠나온 탓이다. 그 거리만큼 의식도 굳어졌고 연대감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만, 5분간 길을 잃은 높새보다 어쩌면 노을이가 더 오래 길을 잃고 헤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할 뿐이다. (20071111)
* 높새는 노을이가 즐겨타는 자전거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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