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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자전거의 짝사랑

높새, 노을이에게 오다

 




첫걸음은 마포에서 시작됐다. 어떤 남자가 마포의 자전거매장에 머물던 나를 구입했다. 그는 처음엔 나를 타고 인도를 10여 미터 달렸다. 다시 매장 앞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몸풀이를 한 셈이다. 내 몸이 유연하지 않았는지 핸들 부분을 잠시 만지작거렸다. 다시 발걸음을 뗐다. 그러나 그는 나를 타지 않고 공덕역까지 끌었다.

마침내 그 남자는 내게 올라탔다. 페달에 힘이 가해졌다. 이제 더 이상 걷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느새 몸은 인도를 벗어나 차도로 내려섰다. 두 바퀴는 도로 바깥쪽 노란선을 따라 내달렸다. 드디어 자전거 노릇을 제대로 했다. 마포도로를 내달린 지 10여분 후, 난생 처음 한강을 보았다. 가슴이 확 트였다. 


알톤사 태생인 나는 기종이 ‘RCT-260’이다. 기종을 좀 더 큰 범주에 엮자면 하이브리드다. 쉽게 설명하면 산악자전거와 생활자전거의 중간형태다. 산악자전거는 단단한 체형이 매력이다. 그 덕에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이들도 산악자전거를 많이 애용한다. 그러나 무겁다. 터프한 면도 있지만 그것이 투박스러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에 생활자전거는 날렵하다. 그만큼 가볍지만 약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이브리드는 그 중간쯤에서 각각의 장점을 취해 만든 유형이다. 산악자전거의 견고한 기품을 지녔으면서도 생활 자전거의 날렵한 체형을 갖췄다. 비교적 덩치도 작아 몸집이 작은 이들이 타기에 좋다는 평도 듣는다.


매장에서 나를 끌고나온 그를 처음 본 것은 사흘전이었다. 당시 그는 알로빅스500, 하운드700, 아젠타100 등 산악자전거와 하이브리드 자전거의 몇 가지 기종을 적은 쪽지를 들고 있었다. 나름 시장조사를 한 모양이었다. 그는 매장을 찾은 지 몇 분 후 내 앞에 섰다. 산악자전거의 투박함보다 한 눈에 보기에 잘 빠진 내 외모에 반한 듯 했다. 공교롭게 내 주변의 자전거들은 대부분 산악자전거 였다. 


내 옆에 나보다 신형인 ‘RCT-300’이 있었지만 그는 청색이 맘에 들지 않은 듯했다.  무엇보다도 프레임이 커서 매장주인이 권하지 않았다. 나에 대해 매장 주인에게 몇 가지 묻던 그는 내 가격이 20만원이라는 점에 망설였다. 인터넷구매는 13만원, 알톤사 홈페이지 공시가격은 24만원이었다. 20만원이면 비싼 편에 든 셈이었다. 매장 주인은 머뭇거리던 그에게 수입산 하이브리드 한 종을 잠시 보여줬다. 그는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얼핏 보아도 나보다는 몸이 좀 더 잘 빠졌다. 그런데 몸값이 35만원이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그날 그대로 돌아갔다. 


오늘 그는 다시 매장을 찾았다. 가게에 오자마자 그는 나와 수입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오가며 망설였다. 이내 매장 주인과 함께 수입 하이브리드 앞으로 다시 갔다. 아무래도 그쪽에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되돌아왔다. 그는 주인에게 나를 구매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수입 자전거는 그의 체형에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구입할 수 없었단다.


나를 구입한 그는 내 몸에 몇 가지 악세사리를 붙였다. 먼저, 뒤쪽에 짐받이를 달았다. 짐받이가 없으면 내 몸이 좀더 폼 날텐데 싶어 아쉬웠다. 후미등도 달았다. 뒷바퀴 옆에 달았는데 내 생명을 보호해주는 것이니 기분이 좋았다. 백미러도 한 개 달았다. 이것 역시 안전 보호에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음료수대를 달았다. 각각 8천원, 1만원, 1만5천원, 5천원이었는데 자전거 가격이랑 모두해서 22만 2천원에 구입했다. 장식을 단 나는 수개월 동안 머물렀던 자전거매장을 벗어났다.


그 남자의 집에 도착한 후 곧바로 거실에서 다시 분장했다. 이번엔 내 몸에서 불필요한 치장을 제거했다. 내 몸에는 크고 작은 상표와 문구들이 10여개 붙어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떼어냈다. 심지어 출생지를 표시하는 알톤사와 기종을 나타냐는 ‘RCT-260’마저도 떼어버렸다. 그 제거수술을 마치고 나니 빨간색과 흰색의 몸살이 드러났다. 그런 내 모습이 몹시 만족한 듯 했다.


이내 그는 나와 통성명을 했다. 그는 노을이라고 했다. 나를 높새라 불렀다. 높새와 노을이, 새롭게 인연을 맺은 파트너다. 앞으로 어떤 관계로 지낼 지 궁금하다. 오늘은 8월 18일이다. (200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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