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기억에서 동네는 대부분 시골이다. 거기엔 논밭과 산자락이 있고, 가난이 빚어낸 갖가지 마음 쓰린 추억도 함께 한다. 말끔한 도시가 배경이라면 기억이 두텁지 않다. 동네의 기억은 시멘트에서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도시화는 그런 동네의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동네가 사라지자 사람들의 이야기도 사라졌다. 생활과 업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던 시절, 사람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웃음과 눈물과 삶이 오고갔다. 그러나 생활과 업의 공간이 나뉘고, 업의 가치가 사람이 아닌 돈으로 평가되면서 그런 이야기들은 넘나들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는 풍부해졌지만 정착 그 이야기를 나눌 공감의 마당도 사라졌고, 소통이 증발해 버렸다.
요즘 동네의 주인은 대부분 사회에서 힘이 없는 이들이다. 시골 동네엔 노인들만 남았다. 도시의 낮 동네엔 아줌마, 노인, 아이들이 주인이다. 장애인 등 몸이 불편한 이,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들도 동네를 벗어나 생활하기 쉽지 않다. 이들은 낮 동네의 주류지만 세상 동네에서는 비주류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시선으로 보면 도시에서도 동네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들은 이야기가 있고, 누구보다 서로 소통한다. 그 소통의 중심에 아줌마가 있다. 활동 폭도 넓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도 깊으며, 보살핌의 힘도 지녔다.
태아에게 생명 에너지를 전하는 탯줄엔 세 개의 핏줄이 있다. 사람의 몸이 동․정맥 쌍으로 이뤄진 것에 비하면 특이하고 신비롭다. 동네, 소통, 아줌마. 이 세 가지는 줌마네가 만드는 <동네 한 바퀴 더>의 탯줄이다. 생명이자 출발이며 지향이다. 이 잡지는 동네 사람들끼리 좀 더 풍부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아줌마들이 만드는 지역매체다.
창간 준비호를 선보이며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세월 따라 잡지도 곱게 늙어가는 것이다. 잡지를 만드는 아줌마와 읽는 아줌마도 함께 곱게 늙어가, 잡지가 늙은 아줌마들의 수다 친구로 남길 바란다. <동네 한 바퀴 더>는 생명연장의 욕심없이 그렇게 사라져도 괜찮다.
2008년 12월, <동네한바퀴 더> 준비호를 만들 때 뒤표지에 쓴 글이다. 좀 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데, 지면을 고려해 줄이고 줄였다. 2009년 <동네 한바퀴 더> 창간호를 내고 나서도 이 글에 뭔가를 덧붙이고자 했다. 그 욕심에 '딸랑 한권?'의 연재 마지막을 이 글로 정리하려 기획했다.
그런데, 괜찮다. <동네한바퀴 더>의 기둥을 이루는 세 단어 - 동네, 소통, 아줌마를 얘기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부터 쓰는 글은 모두 사족이 될 뿐이다.(20100223)
<사진설명>
2004년 연남동에 있던 줌마네 사무실 담벼락에 있던 그림을 찍은 사진이다. 이 그림은 줌마네의 한 회원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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