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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사람네

그냥, 노․동․주다


2009인권영상공모제 대상 수상자 노동주 감독

















그는 영화감독이다. <한나의 하루>,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 <6명의 슈퍼맨> 등이 그의 필모그래피다. 이 가운데 <한나의 하루>는 국가인권위가 주최한 ‘2009 인권영상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당신이 고용주라면…>은 ‘2008 인권영상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영화감독의 꿈을 초등학생 때부터 가졌다. 아버지가 비디오데크를 사오셨는데 그때부터 장르구분 없이 비디오를 보았다.  

“그때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영화를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드니 돈을 많이 번 다음에 하라고 얘기하셨지요” 

그는 2년여 전, 우연히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알게 돼 그곳에서 어릴 적 꿈을 되찾았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희귀병인 다발성경화증을 앓기 시작했다. 중추신경계가 손상돼 면역체계에 이상이 발생하는 병이다. 그 증상은 시력상실, 언어장애, 하지마비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병이다. 그는 발병 후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투병생활을 이어갔다. 검정고시를 거쳐 조선대 환경공학과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졸업할 무렵에는 나머지 시력도 빼앗겼다.   

 

“이것은요?” 

-톳나물이요. 

“이것은요?” 

- 구운 김이요.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식사에 앞서 식탁에 놓인 반찬그릇을 더듬었다. 반찬의 위치를 기억하려 했다. 현재 그의 시력은 딱 그만큼이다. “앞에 누군가 지나가면 윤곽을 알 수 있는 정도”다. 그 미약한 시각이라도 그에겐 빛이다. 그 빛으로 <당신이 고용주라면…>을 제작할 땐 직접 카메라 촬영도 맡았다. 친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제작비가 없는 상황을 그만큼의 빛이 해결했다.


그는 수기치료사다. 2010년 1월초부터 시작했다. 그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나주시에 있는 한 한방병원으로 출근한다. 병원 직원의 차를 얻어 타 왕복 6시간 걸리는 출퇴근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한방병원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수기치료사로 근무한다.

“시각장애인들이 대부분 안마시술소에 취직하는데, 회의가 들었어요. 그래서 안마시술소 자리가 있어도 안 갔어요.”


다행히 광주에 있는 한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한방병원에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피곤해 죽겠어요. 요즘엔 집에 들어가면 바로 자요. 주로 어르신들을 치료하는데, 그때마다 기를 뺏기는 느낌도 들고 안마시술소보다 급여도 적지만, 치료하는 일이라 뿌듯함이 커요.” 

 

그는 스물 일곱 살의 가장이다. 그의 아버지는 폐암으로 오랜 투병생활 끝에 채 예순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위암에 걸려 수술은 받았지만, 지금은 집에서 요양중이다. 그의 형은 현재 정신장애인이다. 나주에 있는 한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그가 어머니와 형을 돌봐야 한다. 두 차례의 공모전 당선을 발판삼아 영화제작에 뛰어들 법도 한데, 수기치료사를 시작한 것도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의 말씀처럼 돈이 많이 드는 영화를 계속 만들자면 달리 방법이 없다. 

   

영화감독, 시각장애인, 수기치료사, 가장은 그가 받은 후천적 이름표들이다. 그가 가장 먼저 받은 후천적 이름표는 따로 있다. 그의 이름 석자, 노동주다.

노동주는 시력을 잃었을 때 마음에도 상실감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동안 생각 못했던 장애인들의 삶을 새롭게 읽었다. 그의 영화들이 장애인을 다루는 것도 그 발견과 무관치 않다.


노동주는 피아노 연주가, 달리기 선수,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천사같은” 시각장애 아이들의 꿈이 대부분 안마사로 끝나고 마는 현실을 <당신이 고용주라면…>에 담았다. 노동주는 시각장애인이 일상에서 어떻게 소외되는지를 <한나의 하루>로 표현했다. 거기엔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시각장애 아동 한나의 바람까지 들어있다. 


“논어에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한다’는 말이 있죠! 제가 영화제작에 소질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열심히 하면서 또한 즐기고 있으니 잘 되지 않을까요? 이번 작품은 깐느영화제 정도? 하하하.”


또다른 필모그래피를 위해 멜로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중인 노동주에게 가장 으뜸인 이름표는 노동주다. 단지 그가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그 이름이다. 생명이니까 스스로 꿈을 꾼다. 사람이니까 꿈을 꿀 권리가 있다.



※ 이 글은 격월간 <인권>(2010년 1․2월호)에도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