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y Writing Story

월드컵의 인연(상)

                                                                                     <My Writing Story> - 글, 인터넷과 놀다

 

축제를 보았습니다.

공 하나로 불꽃을 지핀 축제를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만들어 줄줄 아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엄숙하기 그지없던 태극기를

치마로 입고, 두건으로 두르고, 망토로 쓰며

한껏 자신을 가꾸어내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얼굴에, 윗몸에, 종아리에,

페인팅 하면서  

내 몸뚱이가

나를 표현하는데 더없이 유용하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을 것입니다.

하여, 누가 ‘우리편’인줄 모를 아이들일지라도 역시 나를 가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제는 기꺼이 즐거웠습니다.


오늘 만난 아이들이

이 축제를 흐린 기억으로 남겨두기 전에

그들의 기억을 새롭게 채울

또 다른 축제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축제들이 포개지고 포개져

기억 결결이 높고 깊은 축제의 지층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때쯤엔

그 축제의 지층에 쌓인 기억들 속엔

애국(愛國)보다는 애인(愛人)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태극기 문양보다는

애인(愛人)의 이름을

얼굴에, 팔뚝에

페인팅한 이들이 많았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국가보다 소중한 존재는 ‘나’이며,

그런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바로 ‘애인(愛人)’입니다. 


2002년 6월

서울시청 앞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부산 해운대 앞 바닷가에서,   

피어오른 수백만 개의 붉은 씨앗들은

그런 희망과 염원을 품고 있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전을 보며 쓴 글이다. 당시 월드컵은 많은 이들에게 추억을 주었지만, 내겐 이 한 편의 글이 남았다. 엄숙주의를 단번에 해체해버린 그 문화적 습격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한 장의 사진도 남았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만난 이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이는 2002년 월드컵 때 거리응원을 나온 한 꼬마였다. 당시 월드컵 분위기에 취해 남들처럼 시청 앞에서 열린 거리응원에 나갔다. 축구경기는 그냥 텔레비전으로 보는 게 좋았지만, 응원을 나온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그 거리에서 부모와 함께 응원을 나온 한 꼬마를 보았다. 사진 찍는 게 능숙하진 않았지만 셔터를 눌렀다. 며칠 후 인화를 해보니 사진이 좋았다. 카메라 렌즈에 잡힌 아이가 워낙 깜찍한 모습이 아마추어급에도 못 드는 초보 사진쟁이의 모자람을 단숨에 메워 버렸다.

그러나 정작 그 사진의 주인공에게는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인화한 사진은 서랍에 묵혀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7월 중순… <오마이뉴스>를 이용해 사진 주인을 찾아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실행했다. 그때 찍은 사진과 함께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를 올렸다. (계속)


6월, 시청에서 만난 인연을 기다리며

- 이 사진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한 달여 전 6월 22일 토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스페인과의 8강전을 앞두고 서울시청 앞 광장엔 오전부터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그날 아스팔트 위에서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이는 무릎까지 닿는 붉은색 티를 입고는 언니와 남동생, 엄마 아빠와 함께 응원을 나왔습니다.

그 아이를 보며 6월의 축제를 새롭게 느꼈습니다.


엄숙하기 그지없던 태극기로 치마를, 두건을, 망토를 만들어 한껏 자신을 가꾸면서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만들어줄 줄 아는 그런 사람들처럼, 그 아이 역시 '내 몸이야말로 나를 표현하는 데 더없이 유용하다'는 것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아마도 엄마 아빠의 손길이 닿았겠지만, 얼굴에 붙인 선명한 태극문양과 머리에 두른 빨간 수건만으로도 아이에겐 이미 충분히 즐거운 축제였습니다.


아이와 헤어지면서 아빠에게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혹 사진이 잘 나오면 보내드리겠다고, 그러나 지금 사진 찍는 것을 배우는 중이니 큰 기대는 하지 말라며,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사진을 인화하고는 아이의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 …

저의 실수였습니다. 전화번호를 잘못 적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책상서랍엔 갈 곳 잃은 사진 몇 장이 쌓여 있었습니다.

간혹 서랍을 열 때마다 그 사진을 빼보곤 합니다.

'아이에겐, 아빠에겐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될 토요일 하루였을 텐데…'

'기대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혹시나 기다렸다면 그것도 작은 약속을 한 셈이나 마찬가지인데…'


오늘, 인연을 믿어 봅니다.

그날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들 가족을 만났듯이, 그 아이의 아빠가 이 글을, 이 사진을 본다면 좋겠습니다.

가뿐한 마음으로 연락을 준다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서랍 속 사진의 주인공들이 사진을 받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딸을 바라보며 소탈한 웃음을 짓던 아빠의 얼굴에서 스치듯 보았던 평화를, 아이가 내게 가르쳐준 축제의 새로운 의미를, 이제 몇 장의 사진으로 대신 돌려드리려 합니다.

오늘 하루는 이 사이버 세상이 작은 인연 하나를 맺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운 날이기를 바랍니다.


 

이제 곧

연락이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