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 귀엽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와 희망찬 조국을 물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게는 아들만 둘인데 이세상의 모든 딸가진 아버지들이 넘 부럽다.“
“누구나 이런 맘을 갖고 산다면
짧은 글이었지만 귀여운 아이의 사진만큼이나 지은이의 마음 씀씀이가 정말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정말 좋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좋은 글인 거 같습니다.“
“아 정말 이뻐요~~
하루도 안 배먹고 오마이에 오는 이유들 중의 하나~~* 아 정말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고 아름다웠지요. 보는 제가 이렇게 기껍고 행복한데 사진속의 사람들한테는 평생 못 잊을 추억의 사진일 텐데. -꼭 전해지길 바랍니다. 정말 인연의 아름다움을 믿어보지요. 후기를 꼭 올려 주세요. 날마나 기다리겠습니다.“
“이 기사를 탑으로… 나도…
맨날 더러운 정치 얘기, 분통 터지는 사회 얘기만 듣는 가엾은 독자들을 위해
저 예쁜 아이 얼굴이나마 더 많은 사람이 보 고 하루 더 사는 힘으로, 위안으로 삼게…. 독자를 소중히 생각하는 당신. 오마이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예쁜 사진 아름다운 글
내가 <오마이뉴스>를 좋아하는 이유 이런 기사가 나오니까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니까. 살만한 세상이란 웃기지도 않는 일들 속에 한 떨기 들꽃처럼 생명력 강하게 곱고 아름다운 마음들이 피어나고 피어나고 피어나는 세상이지. 한 곳만 보지도 말고 한 쪽에만 몰두하지 말고 이런 일 저런 일에 마음을 골고루 써 가며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살아가야지. 고마워요~ 노정환 기자님“
"이거 기자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귀여운 아이 가족에게 기다림을 선물하고 우리 숨막히게 살아가는 수많은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이 기사가 탑으로 가게 해주세요 그래야 정말 <오마이뉴스>답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 ... 이거 여기저기 퍼나릅시다. 기자님 정말 후기 꼭 올려주셔야 해요 꼭이요! ^.^."
마음이 즐거웠던 것은 칭찬일색의 의견글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한 “다른 포탈 사이트 게시판 같은 데 올려놓으면 찾기 더 쉽지 않을까요? 기사 퍼가도 되나요?”라며 스스로 뭔가 대안을 찾아 주려는 배려 때문만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기사에 매달린 의견들 역시 고마운 마음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단 한편의 글이 삐딱한 시선을 보인 모양이었는데, 내가 의견글을 읽을 무렵에는 몇몇 독자들의 항의에 <오마이뉴스>에서 삭제해버린 후였다.(항의글 몇 편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박노자 교수가 언급한 ‘월드컵 응원전의 집단적 광기’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고의 편협함에 애도를!)
"따뜻한 내용, 아쉬운 리플
매일 이곳을 찾으며 한발 앞선 소식을 접하는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기사는 근래에 들어서 참 보기 힘든 따뜻한 글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잠시나마 간접적인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으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올리는 보기 싫은 의견이 주름을 지게 합니다. 만약에 떳떳이 얼굴을 내고 말을 해야 한다면 저런 글을 적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어린아이의 눈망울이 깨끗하다 생각되는 내용에서 까지 지저분한 리플을 다는 사람들은 도대체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답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 한편으로는 어떤 의무감도 스며들었다. 이미 몇몇 독자들로부터 사진주인공 찾기는 일이 돼버렸다. 진정으로 사진을 주인공에게 돌려주고 싶었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기껏해야 혹 주인공을 만나게 되고 사진을 돌려주면 후기는 올려야겠다는 생각은 한 정도였지만, 이처럼 다른 사이트를 이용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글쓰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많은 관심과 지지는 단지 글로만은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사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 하더라도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한 응원 나온 아이의 그 예쁜 표정을 그대로 묘사하기엔 어렵다. 결국 이 월드컵 응원에 나선 아이의 사진은 취재의 영역에서 사진의 힘을 스스로 느낀 중요한 계기였다.
취재를 잘해 기사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사를 좀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한 장의 사진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됐다. 더욱이 이번 사진은 사진이 기사를 만든 경우이므로 그 의미는 좀더 큰 셈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나는 내 글을 읽은 9천 5백여명의 독자들에게 또 다른 기다림 한 가지를 남긴 셈이었다. 그래서 미완의 후기를 올렸다.
“아직 소식은 없습니다. 이제 인연으로부터 소식을 바라는 게 저 혼자만의 기다림이 아니지만, 불행하게도 저는 지금 그 인연에겐 기다리는 일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이 인연 앞에 놓인 오늘입니다.
세상엔 에너지라는 게 있습니다. 하늘 밝힌 달을 바라보며 기원하던 아이들의 마음들과 세상의 모든 신들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드리는 그 마음들이 모두 에너지입니다. 지난번 ‘6월 시청에서 만난 인연을 기다리며’라는 글을 게시한 후 수많은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한 편 한 편 올린 의견글은 곧 인연을 만나길 바라는 진심과 함께 절망스러운 현실에서도 희망 찾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또다시 글을 남깁니다. 그 에너지에 감사드리기 위한 마음입니다. 오늘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소식이 올 그 인연을 잊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이 글이 ‘6월 시청에서 만난 인연을 기다리며’에 대한 마지막 글이 아니라 미완의 후기인 이유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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