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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riting Story

인연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My Writing Story> - 글, 사람과 놀다


 

제주인권학술회의를 두어 주 남겨두고 뭔가 일을 꾸몄다. 참석자들끼리 친밀감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다. 고민하던 끝에 학술대회가 열리기 전에 이메일로 각자 소개를 하자고 제안했다. 애초, 두어 달전 학술회의 준비팀과 회식을 하던 자리에서 처음 제안했다. 당시 준비팀에서는 사람들의 호응도를 염려해 보류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이번엔 내가 개인적으로 해 보겠다고 나섰다.


생각은 한 달 전부터 했는데 그 동안 나 역시 망설였다. 사람들의 호응도 문제지만, 너무 튀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반응이야 실망하지 않으면 될 것 같았고, 설령 조금 튄다해도 학술회의니까 금방 잊혀질 듯해 한번 밀고 나가보기로 했다.


2월 2일. 드디어 첫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을 보내고는 이틀 가량 지나 한 참석자로부터 소개 이메일이 왔다. 그 이메일을 한국인권재단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다시 참석예정자들에게 보냈다. 보낼 때 그 소개글을 보내준 참석자에 대한 신문 자료를 검색해 보았다. 마침 인터뷰 글이 있어서 첨부했다. 그리고는 나 역시 ‘눈물들’이란 제목의 자기소개글을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보냈다.



지난 1월말, 서른 둘로 생을 마감한 가수 김광석 5주기 추모 콘서트 장에 갔습니다.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머나먼 그곳으로 떠나 버리고…" 첫 곡인 '거리에서'를 따라 부르고 있는데 마음이 울컥 해졌습니다. 곧 빰에 눈물이 흐르더군요. 처음엔 '내가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결국 두어 시간 동안 진행된 콘서트 장에서 네 곡이 흐르는 동안 눈물을 흘렀습니다.

눈물. 

어느 목사님은 눈물이 메말라 가는 자신의 삶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저 역시 눈물이 헤픈 편은 아닌데, 간혹 가슴이 뭉클해 눈물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네 사회 정서와 교육에 의하면 눈물이란 '여성의 전유물'이어야 할 것 같은데 목사님이나 저나 때론 눈물을 그리워하는 걸 보면… 이상도 하지요? 

어린 시절 칼싸움하며 놀다 친구들과 싸우고, 혹은 흙장난하다 지져 분해진 옷 때문에 부모에게 혼나 흘리던 눈물이야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일 것입니다.

그 시절을 지나 눈물의 의미를 '인식'하고 흘렸던 때가 고둥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농사꾼이던 부모님이 상경해 둥지를 튼 '상계동 올림픽' 그 현장. 친구집 뒷산인 불암산 기슭, 해질녘에 바위에 걸터앉아 친구 앞에서 흘린 눈물은 부모의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춘기 때의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 91년 정권의 폭력진압에 사망한 명지대생 강경대의 장례행렬이 제 앞으로 지날 때, 저는 시위대열에 끼여 눈물을 훔쳤습니다. 전경들과 투석전을 벌이고는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5월 햇살아래 바라본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끝이 보이지 않았던 젊은 꽃들의 죽음….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던 그 답답함과 안타까움과 절망감까지가 그렇게 눈물로 피어났나 봅니다.

지난해엔 한총련 취재하다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제가 마냥 감상적이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지난 설 전 날 학교 때 후배와 가진 술자리에서 후배가 엉엉 울었는데 전 담담했습니다. 졸업 이후 그 동안 저와 소원했던 관계를 씻어 내리는 씻김의 눈물이었는데 저는 후배를 달래는 것으로 족했으니까요.

마음을 따르며 사는 삶에 눈물이 많을지 모르겠지만, 얼굴에 흐르는 눈물이 '사람'을 느끼게 하는 촉수와 같다면 그 역시 세상을 이해하는 한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후 다시 두 명이 추가로 자기 소개글을 올렸다. 한 참석자는 소개글 대신 내가 보낸 이메일에 대해 잘 받아보고 있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 참석자와 두어 차례 메일을 주고받기도 했다.

 

제주도로 떠나기 이틀 전인 14일 오후 퇴근을 얼마 남겨 두지 않았는데, 저녁 인권재단의 간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제주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뉴스레터를 만들기로 했단다. 첫날 뉴스레터에  게재할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었다. 통화 끝에 쓰기로 했다. 15일 오전 12시까지 원고를 보내 달랜다. 이런! 내가 급하게 원고 청탁 할 때보다 더 빠듯한 시간이다.


그때부터 원고 쓸 꺼리를 생각한다. 무엇을 쓸까? 퇴근 길에 맥주를 가볍게 한잔하고는 들어왔다. 여전히 술자리에서도 원고 생각… 결국 밤 12시 무렵부터 한 시간 정도에 걸쳐 원고 초고를 정리했고, 다음날 원고를 보냈다.

갑자기 회사 이메일에 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원고는 오후 늦게나 보냈다. 16일 제주에 도착해서 콘도 방문을 열었을 때 테이블에 놓인 뉴스레터 1호에 내 원고가 있었다.   


인연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지난주 평화여성회 교육위원 김정수님에게서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3월에 제주에서 한․일 여성신학포럼을 가질 예정인데 하루 정도 제주 가이드를 해줄 분을 소개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전에 제가 인권학술회의2000에 참여한 분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제주에서 시민운동을 하며 지역통화 방식으로 제주여행 가이드를 하는 분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분이 녹색연합 자원봉사일 관계로 서울에 있어서, 교사 생활을 하다 휴직하고 계시는 다른 분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역통화를 했던 분은 이번 참가자 중의 한 분인 이지훈님과 제주범도민회에서 함께 일하는 분이었고, 전직교사였던 분은 이번 회의에 참석하려 했던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원 이영훈님의 친동생이었습니다.

김정수님께 연락처를 알려드리고 나서 저는 새삼 인연이란 것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동안 돌보지 못한 몸을 실컷 아주 실컷 돌보고 사랑도 열심히 하고 조용히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의 미학을 즐기렵니다. 진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나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무로 걸어 들어가고 싶습니다. 운동을 통해 알게 된 모든 인연들과도 당분간 안녕을 고합니다. 운동을 잠시 놓습니다. 잠시. 그리고 온전히 자연인으로서의 나로 돌아갑니다. 아하, 이 물이 그리워질 때쯤 다시 돌아오고 있겠지요.” 
            

지난 해 이맘때 인권학술회의2000에서 만났던 분들 가운데 한 활동가가 저에게 보낸 이메일입니다. 이 분은 지난 여름 몸이 아파 미국으로 휴양차 떠났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분들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지난 두 해 동안 인권학술회의가 맺어준 아름다운 인연들과 마음을 나누곤 했습니다.   

이번 인권학술회의2001 역시 무지한 저로서는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 켠에 두고 있습니다. 현장 활동인과 학술인, 법조인과의 만남에서 어우러지는 맛은 인권학술회의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메뉴일지 모릅니다. 귄위를 넘어선 진지한 발표와 논쟁도 어느 회의에서 느낄 수 없는 짜릿한 긴장감을 주는 만큼 기대해 볼 만합니다.

지난해 강조되었던 ‘인권 감수성’ - 머리가 아닌 마음을 열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인권 운동에 대한 저의 체감 온도를 느껴 보는 것도 별미입니다. 또한 서로간 호칭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종종 드러나는 녀남간의 차별적 행동이나 말 등 ‘사소한’ 생활 인권에 대한 의견들도 귀담아 들어볼 참입니다.
비공식적으로 열리는 모임도 인권학술회의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이므로 역시 부지런히 기웃거릴 겁니다. 잠시 짬이 난다면 현관문을 밀고 나가 제주도 푸른 밤에 몸을 적실 여유도 마련해볼 참입니다.   


그런 생각 못지않게, 이번 회의에 참석한 분들과 서로 한 마디라도 건넬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저에겐 더없이 중요한 의미가 됩니다. - 낮 가리는 성격이라 잘 될지 모르겠지만요. 인권과 평화 운동에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분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단지 ‘기자’라는 직업상의 필요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3박4일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몸이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하는 가운데, 한 끼라도 한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고, 비록 차이는 있겠지만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이 공동의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인권과 평화를 고민하고 실천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함께 할 ‘기억’이 있다는 것은 곧 연대를 위한 중요한 든든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번 학술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이메일로 자기소개를 하자고 부산을 떨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를 제외한 다른 세 분 역시 자기 소개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슬쩍 보여준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여 불쑥 날아든 제 이메일에 마음이 불편했던 분이 있었다면,  ‘생각은 가상하되 실천은 거친 한 청춘’의 실례로 이해하고 즐거운 웃음으로 맞이해 주시길 바랍니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생태 잡지 ‘plain’에 “기계 문명과 현대 문화에 어떤 한 개인이 맞서는 싸움은 현대 문화 전체의 힘에서 ‘한 사람 분’의 에너지가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잡지의 문장을 어설프게나마 잠시 빌려봅니다. “인권․평화 운동을 하는 이들의 연대와 친밀감을 위해 보냈던 네 사람의 소개글은 1백 명의 인권학술회의 참가자들 중에서 ‘네 사람 분’의 마음이 열렸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네 사람 분’의 자기소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이곳에 모인 1백여 명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씨앗으로 묻히길 바랍니다.

이 바람은 혹여 잠시나마 단지 ‘네 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했을지도 모를 제 영혼의 가난함을 달래기 위함이자, 이곳 회의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기도 합니다. 3박 4일 동안 저는 부지런히 러브레터를 쓰겠습니다. 


이 며칠간의 오밀조밀한 일에 대해 몇 몇 분들이 학술회의에서 아는 체를 한다. 어떤 이는 러브레터 잘 읽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고, 또 다른 참석자 역시 그런 이메일이 좋다며 인사를 건네 왔다. 지난 해 참석했던 다른 한 분은 지난 해 간간이 보냈던 이메일에 대해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렇게 인사를 나눈 이들은 여성참가자들이었다.)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도 나누며 3박 4일 동안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일이 아닐까 싶었다. 인권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끼리의 인간적 연대를 위한 작은 디딤돌을 놓는 일. 그래서 올해 역시 인권학술회의 후속 모임을 꾸려가야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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