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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riting Story

의식이 삐뚤면 글은 넘어진다


  <My Writing Story> - 글, 글과 놀다



하얀 우유의 힘

“남자는 강하고 건강하게

여자는 날씬하고 매력적이게”



 

어느 날 지하철에서 우유를 홍보하는 광고를 보았다. 농림부와 농협, 마사회가 광고주였다. 그 우유 광고는 광고기획으로서는 그리 매력이 없었다. 디자인이 산뜻하지 못했다. 더욱이 문구 또한 매력이 없었다. 특히 이 문구는 성차별적인 반인권성이 내포돼 있으며, 글쓰기의 관점으로 보아도 적절하게 배치되지 못한 문구였다. 사소한 일에 시비걸기. 그것은 그렇게 시작됐다.


1

우유 광고 문구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남녀의 고정관념에 충실하고 있다. 남성은 ‘남자’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는 점이 전제돼 있다. 반면 여성은 ‘여자’다워야 하며,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날씬하고 매력적이게’ 자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성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강하고 건강하게‘ 보다는 ’날씬하고 매력적‘이라는 문구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남성은 강해야 하고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그 고정관념에 딱 어울리는 문구다.


이 광고 문구가 여성과 남성의 ‘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을 정하는데 있어, 남성은 힘의 우월, 여성은 성적 매력이라는 기존의 잣대를 들이댔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비판이다. 페미니즘의 약진으로 이제 이 정도의 비판은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었다. 교과서 삽화에 여성은 부엌에 있고 남성은 거실에 있는 장면이나, 의사는 남성, 간호사는 여성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바로 그런 기존 성역할의 고정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정부에서 만든 광고에 그런 남녀차별적이며 반인권적인 문구가 사용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2

우유광고가 남녀의 전통적인 역할론에 충실하려다 보니 기본적인 글쓰기에 어긋나는 문구를 쓰고 말았다.

무엇보다 이 광고 문구는 윗줄의 “남자는 강하고 건강하게”와 아랫줄의 “여자는 날씬하고 매력적이게”가 구조상 서로 대칭을 이룬다. 즉, 남성은 ‘강함’과 ‘건강’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표현되었고, 여성은 ‘날씬’과 매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광고 카피의 “남자”와 “여자”가 대칭을 이루듯이,  ‘강함’과 ‘건강’은 ‘날씬’과 매력‘이라는 단어와 대칭을 이뤄야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를 설명하는 문구들은 구조상 대칭은 이뤘으나 의미상 대칭은 이루지 못한다. 그 문제는 여자를 표현하는 ’매력‘이란 단어에서 비롯된다.


‘매력’이란 말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이란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매력적”이라는 것은 ‘날씬’한 것일 수도 있고, 강한 모습일 수도 있다. 또한 밝은 웃음일 수도 있으며, 잘생긴 외모일 수도 있다. 결국 광고 문구로 쓰인 ‘매력’이란 단어는 대칭되는 의미보다는 대칭의 자리에 놓인 다른 의미를 포괄해버린 셈이다.
그로 인해 구조적인 대칭을 유지하며 얻고 싶었던 내용상 의미 또한 허물어져 버린 셈이다. 우유가 주는 힘, 즉 남성에게는 강함과 건강을 주고, 여성에게는 날씬함과 매력을 준다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은 여성에게는 날씬함 말고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칭을 맞추자니 ‘매력적’이라는 단어를 벽돌 끼워 맞추듯 끼워 넣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글은 그것을 표현하는 틀이 불완전하면 내용 역시 부실해져 버린다. 대칭구조를 활용하며 대비되는 표현을 적용하고 이를 통해 의미를 극대화 했던 우유 광고 문구. 그러나 벽돌을 잘못 끼우듯 부적합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불안한 의미만을 전달하고 말았다.
이는 마치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론에 충실하려는 의도가 무리수였음을 나타내는 또다른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이 우유광고는 ‘하얀 우유의 힘’을 표현하기 위해 남녀의 전통적인 이미지에 기댔다. 그러나 그 버팀목이 차별적 의식을 내포한 탓에, 표현에서나 의미 전달에서나 동시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광고에 대해 어떤 이가 이 광고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 하는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에 전정했다. 국가인권위가 이 진정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농림부측에 우유 광고의 문구를 수정할 것을 설득했고, 농림부도 이를 받아들여 광고 문구를 바꾸었다. 바뀐 광고 문구는 이랬다.

‘우유는 힘! 마시자. 114 가지 각종 영양의 완전식품 하얀 우유, 우유 한잔으로 온 가족이 건강하게’

여전히 재미없긴 마찬가지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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