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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내 일의 10%, 라디오 인터뷰이-일이놀이3

 


지난 1월부터 광주의 한 라디오 방송에 고정 인터뷰이로 출연하고 있다. 한 주간의 인권소식을 전하는 코너다. 몇 년 전부터 직장에서 해 오던 일인데, 올해부터 내가 맡게 되었다. 3월 19일로 이 인터뷰 출연이 열 번째로 이뤄졌다. 


인터뷰 출연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원고를 작성하는 일이 첫 번째다. 인터뷰이가 되자면 한 주간의 인권소식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료를 취합하고 방송용 원고를 작성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보도자료 등을 참조해 한 주간의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원고를 쓸 보도자료가 없을 때는 새로운 자료를 찾아야 한다. 이럼 점을 고려하면 인터뷰를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을 반나절로 잡고 있다. 반나절이면 내 업무의 10%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다른 일들도 있으므로 방송에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긴 어렵다.


라디오 방송원고를 작성하는 일은 이미 10년 전에 한번 해 본 적이 있다. 당시 KBS라디오에 매주 ‘오늘의 단상’이란 원고를 쓴 적이 있었다. 이때는 1분짜리 분량이고, 감상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원고지 9장 정도의 원고를 작성하는 일은 처음이다. 더욱이 내용이 시사적이니 좀더 민감하다. 그만큼 발언의 수위도 조절해야 한다.   


원고를 작성한 후에도 남는 문제가 있다. 전화인터뷰로 이뤄지는 말하기다. 간간이 방송 인터뷰를 해 보긴 했지만 7분여 동안 생방송으로 인터뷰 하긴 처음이라 부담스럽다. 말이 빠른 편인 데다가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부담은 커졌다.


처음 방송할 때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말이 '공중부양'하기도 했다. 땅 위에서 또박또박 걸어야 할 말이 비틀거리며 공중을 휘젓는 느낌, 난생 처음이었다. 어떤 날은 차분히 시작하다가도 중간쯤 가면 다시 말이 빨라지기도 했다.


인터뷰 하면서 글쓰기와 말하기는 방송을 위한 기본에 불과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인터뷰를 ‘잘’ 한다는 것은 원고와 말하기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인권 관련 뉴스는 일반인들에게 쉬운 영역이 아니다. 세계인권조약이니,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 등은 눈높이 표현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인터뷰를 잘 하려면 이런 표현들을 좀더 쉽고 재미있는 표현으로 바꿔내야 했다. 그러니 글쓰기와 말하기의 기본을 넘어 대중성까지 갖춰야 하는 삼중고에 빠져 있다.


고정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 자유롭지 않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시간은 오후 5시 35분경이다. 오후 5시면 근무가 끝나는 내겐 이 시간이면 퇴근할 때다. 평상시엔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셈치고 인터뷰를 진행하면 별 무리가 없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은 가장 약속이 많을 때다. 언젠가는 5시에 술집에 있게 된 적이 있었는데, 방송 때까지 술을 마시지 못하고 기다렸다. 조용한 장소를 찾기 위해 주인에게 2층을 통째로 쓸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온 지인들과 여행을 갔을 때도 지인들을 모두 차에서 내리게 한 후 차 안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인들은 요금소에서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20여분을 기다렸다.


간혹 서울에 가려면 그 시간엔 광주고속버스터미널에 있어야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부터는 그럴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 6시가 막차인 일반고속버스는 탈 수가 없다. 며칠간 여행이라도 떠난다면 여행지에서 원고를 쓰고 인터뷰를 할 날도 올 듯하다.


생활의 변화에 적응하고, 기본기만 갖춰진다면 나름 재미가 없지 않다. 원고를 작성하는 일은 새로운 글쓰기의 영역이다. 거기에 대중성을 가미하는 일은 인권의 대중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글 형식이 다르긴 하지만 어디에 있든 한번쯤 풀어야 할 숙제다. 그 숙제를 근무시간에 풀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말하기도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일이다. 방송사에서 그만큼의 인내를 가져줄 지 알 수 없지만, 비록 방송이 아니더라도 말하기는 좀더 공부를 해야 할 영역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은 내 업무의 10%를 넘을 수 없다. 그 안에서의 최선만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부다.(201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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