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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자전거의 짝사랑

높새, 섬진 봄길을 가다①


 

3월 26일 오전 9시 52분. 27번 도로가 북으로 달리다 전남 곡성군 석곡면 능파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놓은 길에 올랐다. 길은 채 3분도 가지 않아 하류로 향하는 보성강 물줄기를 만났다. 아직은 강이라 하기엔 조금 민망했다. 동네 개천 정도면 딱 어울리겠다. 2차선 도로인데 길이 양호하다. 이 길은 딱히 이름이 없다. 보성강 옆길쯤 될 듯 싶다. 때론 둑이 높아 강을 가리기도 하지만 어느새 길은 강가로 붙었다.


능파사거리를 떠나 약 5킬로 남짓 달리자 도로에 이름이 붙었다. 주암면과 목사동을 거쳐 온 18

번 국도다. 이제 이름없던 보성강 옆길은 18번 국도로 모아졌다. 18번 국도를 만나고 나니 보성강이 어느새 강다워졌다. 비록 물줄기는 거세지 않아도 제법 강폭이 넓어졌다. 강에는 맨 땅도 드러났다. 어느 곳에는 그 땅에 수양버들 서너 그루가 제법 자랐다. 홍수 때가 아니라면 좀처럼 물에 잠기지 않을 듯했다. 


섬처럼 쌓인 흙들은 물줄기의 흐름을 바꾸었다. 유유히 흐르던 물도 좁은 폭을 만나면 여지없이

여울을 이뤘다. 물이 많지 않은 강에서는 여물목에서 그 강물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투명하던 물줄기가 하얀 물거품을 내며 빠르게 스쳐갈 때 물줄기는 살아 있다. 강의 생명은 강가에서도 확인됐다. 봄날을 확인하듯 곳곳엔 매화가 꽃을 피웠다. 수양버들도 파릇한 싹을 내밀었다. 강가 한 곳엔 밭을 일구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사람이 땅을 일구는 일이야말로 확실한 봄의 증거다. 


보성은 압록에 이르러 이름을 다했다. 그곳에서 섬진과 합수했다. 보성은 발원지인 보성군 웅치면 대산리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바다로 가려면 남쪽이 빠른데 120여 킬로를 거꾸로 흘러

섬진을 만났다. 강은 단지 바다로 가려 흐르는 것이 아님을 돌고 돌아 증명했다. 그러니 급히 흘러갈 이유도 없었다. 장흥, 순천, 곡성을 흘러왔다.
도중엔 보성강저수지를 만들고, 보성강댐에 고여 수력발전을 이루고, 주암호도 형성했다. 이 물줄기가 해양성과 대륙성 기후와 만나 이 땅에서 차(茶)나무 재배의 최적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 물줄기가 이제 섬진에 힘을 보탰다.


18번 국도는 높새가 달리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능파사거리에서 압록까지 16킬로 남짓한 거리에 언덕은 단 한 곳이었다. 높새가 오르기에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는 이로움이 많았다. 흘러가는 보성을 보는 전망대로 손색이 없었다. 또한 고개 뒤에 오는 내리막길은 높새의 속도만큼 일어선 봄기운들이 온 몸을 파고들었다.  

 

길의 안전성도 높새가 달리기에 양호했다. 갓길은 비교적 널찍했다. 자전거 한 대가 달리기엔 부

족함이 없었다. 오가는 차량도 많지 않았다. 자전거길로 이 정도면 최상이었다. 길가에 벚나무가 있어, 4월 초입이라면 꽃에 취해 페달을 밟는 게 전혀 힘들지 않게 느낄 법 했다. 능파사거리를 떠나 약 한 시간 정도를 그런 길을 달려왔다.(20100329)-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