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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자전거의 짝사랑

높새, 섬진 봄길을 가다③

 

구례구역에서 구례읍으로 들어가는 길엔 바람이 거셌다. 마치 지리산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막겠다는 심사인 듯했다. 오르막에 바람까지 겹쳐 높새의 페달엔 힘이 빠졌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다. 다행히 고개를 넘고 나니 바람은 조금 잦아들었다. 구례구역에서 5킬로 남짓 달리니 구례읍이다. 식당에 들러 점심식사를 마쳤다. 배고플 때 맞춤했던 반가운 점심식사였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다음 목적지는 구례 산수유 마을이었다. 구례읍부터는 지도를 살펴야 했다. 구례읍을 벗어나자

861번 국도와 만났다. 861번 국도는 얼마쯤 가다가 지리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윽고 19번 도로를 만났다. 지도상으로만 보면 19번 길을 따라 가다 온천랜드로 빠지면 지름길이다. 그러나 19번 도로는 보성강을 따르던 18번 국도와는 다르다. 19번 국도는 17번 국도와 더불어 남북으로 종단해 남원에 닿는 길이다. 19번 국도는 남원, 구례, 하동, 남해를 잇는다. 이 도로는 화물차도 많고 차들의 속도도 빠르다. 속도를 우선에 둔 직선우선주의 도로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가며 볼 것도 별로 없다. 


발길은 19번 국도를 가로지른 861번 도로에 계속 남았다. 그러나 얼마쯤 가서 광의면에서 861번 도로를 벗어났다. 지도상으로 보면 이 이름 없는 길이 산수유마을로 인도할 것이다.

농촌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들은 번호를 달고 있지 않아도 자전거 길로서는 손색이 없다. 마을과 마을을 이으니 대개가 이차선 길이다. 요즘엔 포장도 잘 돼 있다. 오히려 둘러보는 재미까지 더해준다.

그 길 역시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십여 분 남짓 달리고 나면 마을이 나타났다. 그 마을을 지나고 나면 다시 마을이 나타났다. 왼쪽 벌판 멀리로는 19번 도로가 종종 눈에 띄었다. 19번 도로와 방향은 같지만 속도를 달리할 뿐이었다.


저속이 준 여유는 지리산 자락에서 내려온 매서운 바람에 빼앗겼다. 서서히 다리에서 힘이 빠질 무렵이기도 한 지라 페달 밟기가 쉽지 않았다. 야트막한 고개에도 힘이 배로 들었다. 그만 돌아갈

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길은 걸으라고 있고, 도로는 달라고 뚫렸다. 

어느 순간 길가에 산수유나무가 가로수로 서 있다. 나무가 크지 않으니 그늘도 깊지 않아 가로수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데, 오로지 산수유마을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커 보였다.


예정시간보다 40여분을 지체해 지리산 온천랜드에 닿았다. 인근이 산수유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공식 축제는 지난 주에 끝났지만, 산수유꽃은 여전해 관광버스가 심심치 않게 드나들었다.

산수유 군락지는 곳곳에 펼쳐졌다. 어느 마을은 한두 채의 집을 산수유꽃이 에워쌌다. 말하지 않

았다면 그저 새싹이겠거니 했을 초록 꽃들은 그 빛깔이 그대로 봄이었다.

멀리 지리산 봉우리에 남은 눈들이 꽃들에겐 어색한 배경이 되었다. 봄과 겨울의 공존이지만, 이 공존은 봄이 웃는 것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아직까지는 그것이 자연의 순리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고, 모든 봄은 겨울을 이겨야 그 이름을 얻는다. 아마도 산수유꽃 때문에 겨울은 차마 마을로 내려오지 못하고 저 멀리서 멈춘 것일 게다.


산수유 마을에서 구례구로 돌아오는 길은 수월했다. 길을 막았던 바람은 사라졌다. 덕분에 40여분을 줄였다. 구례읍을 통과해 핸들은 섬진으로 향했다. 861번 국도에 다시 발길을 올렸다.(20100329)-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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