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녁이었다. 창밖이 훤했다. 깨어서 본 빛이 아니라 그 빛에 잠에서 깼다. 제주의 달빛은 이리도 밝은가! 언제 또 올지 모를 제주의 밤에 이 달빛을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건넌방에는 또다른 올레꾼이 자고 있을 터. 괜히 수선피우고 싶지 않았다.
신발을 찾아신고 문을 밀치고 골목으로 나왔다. 아! 속았다. 잠을 깨운 빛은 달이 아니라 가로등이었다. 집들이 낮아서일까, 전력이 강해서일까. 그처럼 강한 가로등빛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골목을 밝히는 것은 가로등만은 아니었다. 하늘 위 구름사이로 드러난 달도 거의 만월이었다. 구름이 빠르게 흘러 달을 가리긴 했지만, 이내 곧 다시 빛을 드러냈다. 두 빛을 머금은 골목은 한가로이 침묵중이었다.
많은 이들은 올레의 매력을 민박에서 찾는다. 그러나 제주의 시골 마을에서 하룻밤 자 보는 것만으로 매력이라 말하긴 뭔가 심심하다. 그 하룻밤을 무엇으로 채웠는가가 매력의 진가여야 한다. 혹자는 할망들의 손인심에서 찾을 수도 있고, 혹자는 푸른밤의 바람향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이번 내 올레길 민박의 매력은 내 잠을 깨운 가로등과 그 가로등을 앞세운 달빛에서 찾아왔다. 서울이었다면 너무도 식상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을 그 새벽녘의 가로등과 달빛. 오직 제주의 푸른밤에 제주의 바람향과 제주의 고요속에서 만났기 때문에 인상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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