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온날

정기구독을 두고 생각할 소비들


2주 전 시사주간지 <사시인>의 직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시사인> 정기구독을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3~4분 이뤄진 통화는 '생각해 보겠다'는 내 답으로 끝났다.  '부정적인 거 아닌가 싶다'는 직원의 얘기는 맞다. 정기구독을 해 달라는데 '생각해 보겠다'고 답한 것은 완곡한 거절이다. 

오늘, 다시 <시사인>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흥미롭게도 핸드폰에 번호가 뜨는 순간, <시사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지난번 그 직원이었고, 내용도 정기구독 요청이었다. 이번에도 확답없이 전화를 끊었다. 다만, 이번엔 내가 직원의 전화번호를 메모하고는 4월이 가기 전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번에도 그 직원은 '부정적' 태도를 느꼈을 듯 싶다.

내게 <시사인>의 정기구독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내용에 대한 의심은 없다. 충분히 구독할 가치가 있는 잡지다. 그럼에도 이는 주간지 한 권을 구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돈의 문제도 아니다. 잡지의 정기구독은 시간의 소비, 자원의 낭비, 사회적 후원의 문제 등이 겹쳐 있다. 

내가 정기구독하는 주간지는 <한겨레21> 이다. 매주 월요일이면 사무실로 배달된다. 잡지를 읽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감'을 잃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총 100쪽 분량되는 이 잡지를 제대로 읽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대개 잡지는 출퇴근 시간 버스안에서 읽는다. 그러나 자전거 출퇴근을 하면 이 시간은 사라진다. 

집에 가면 읽는 일만 하는 것은 아이지만, 읽어야 할 것은 책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잡지 구독은 시간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와 관련이 깊다. 연관은 깊지만 답이 표면에 불거져 있다. 내 생활에서 두 종류의 주간지를 본다면 한 권은 그냥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 답은 현재 생활에서는 자명하다.  이 답이 거짓이 되려면 다른 무엇을 덜 읽어야 하거나 블로그질을 줄이거나 다른 일하는 시간을 땡겨와야 한다.  

잡지를 읽을 시간이 없는데도 구독하는 것은 또한 자원의 낭비다. 개인적으로는 공짜로 나눠주는 물건을 받을 때도 두 번 정도는 생각한다. 이게 내가 쓸 물건인가? 이 질문에 답이 바로 나오지 않으면 받지 않는다. 후원하는 단체에서 활동보고서를 보낸다면 받지 않는다. 읽지 않을 것이고, 않읽어도 후원은 계속할 것이다. 소용없으면 받지않아야 한 부라도 덜 찍고, 우편료라도 절약할 수 있다. 잡지 역시 마찬가지다.  <시사인>이 좋은 잡지인 건 맞지만, 정기구독해 읽지 않고 쌓아놓기만 한다면 그건 자원의 낭비다. 

시간의 소비와 자원의 낭비 못지 않게 사회적 후원이란 또다른 문제도 있다.  <시사인> 정기구독은 창간 배경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지인들을 생각하면 월 1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내는 셈하면 된다.  물론 여기에도 고민은 있다. 세상에 좋은, 의미있는, 올바른, 모든 일을 후원할 수는 없다. 후원에도 선택이 필요하다.(후원은 훗날 따로 정리해보려 한다)  

후원에 대한 나름의 기준은 정해져 있지만, 여전히 선별은 쉽지 않다. 당장 잡지만 해도 교육잡지 <민들레>나 월간지 <전라도닷컴>은 내용으로 보나 사회적 가치로 보나 정기구독을 할 만한 잡지들이다. 그러나 이들 잡지 역시 시간과 자원의 소비 문제에 걸려 여전히 '지켜보고만' 있다. 이럴 때 좋은, 올바른, 의미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오늘 전화통화를 하면서 문제를 회피하려는 나를 보았다. 그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그래서 <시사인> 직원에게 내가 먼저 전화하겠다고 했다. 약속대로 4월이 가기 전에 내가 먼저 전화할 것이다.
생각할 시간은 보름 정도다. 시간의 소비와 자원의 낭비, 사회적 후원의 문제들에 나름의 답을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아야 정기구독의 여부가 결정된다.  이 글을 쓰며 몇 가지 안들을 떠올렸다. 그나마 스스로에게 다행인 것은 돈의 문제는 조금 뒤에 있다는 점이다. (20100414)


* 이 고민이 해결되면 후속글을 올릴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