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늘깊은사람

세상의 바깥

 

파이란.

어머니는 죽고

마지막 핏줄인 이모는 캐나다로 떠나버려,

불법체류자로 인천 부둣가에 정박했습니다.  


삶을 꾸릴 수단으로 위장 결혼을 선택한 그는

낯설고 물설고 말설은

강원도의 어느 세탁소로 팔려갔습니다.


그 곳에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랠

한 남자를 향한 사랑이 깊어갔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강재씨

당신 덕분에 여기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보다 먼저 허물어진 것은 몸이었습니다.

사랑보다 더 깊고 더 빠른 것은 폐병이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젤로 친절하고 고맙댄다.

근데… 씨발… 나 보고 어떡하라고….“


단지 돈이 필요해

서류상 남편이었던 강재가

흐느낀 때는, 

그에게 의지했던 한 여인이 이생을 떠난 후였습니다.


오락실에서 동전이나 뜯어쓰는

‘보잘것없는’ 강재는

그때서야 낯선 인연 안에 담겼던 자신을 보았습니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 

무심했던… 자신이

한 사람에게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세상 한 곳에서는 쓸모가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파이란의 가슴속에 핀 꽃,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고단했던 삶에서 얻고자 했던 한 가닥 희망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강재로부터

결코 구할 수 없는 희망이었습니다. 


파이란의 죽음도,

강재의 눈물도

모두 바깥세상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따뜻하다는 세상의,

따뜻하지 않은 그 바깥 삶일 뿐입니다.


세상 바깥이 넓어지면

세상 안쪽의 온기도 잃을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세상 안과 바깥의 관계입니다.

'하늘깊은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증없는 삶  (0) 2009.06.07
삶의 마디  (0) 2009.06.07
절실한 약속  (0) 2009.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