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란.
어머니는 죽고
마지막 핏줄인 이모는 캐나다로 떠나버려,
불법체류자로 인천 부둣가에 정박했습니다.
삶을 꾸릴 수단으로 위장 결혼을 선택한 그는
낯설고 물설고 말설은
강원도의 어느 세탁소로 팔려갔습니다.
그 곳에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랠
한 남자를 향한 사랑이 깊어갔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강재씨
당신 덕분에 여기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보다 먼저 허물어진 것은 몸이었습니다.
사랑보다 더 깊고 더 빠른 것은 폐병이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젤로 친절하고 고맙댄다.
근데… 씨발… 나 보고 어떡하라고….“
단지 돈이 필요해
서류상 남편이었던 강재가
흐느낀 때는,
그에게 의지했던 한 여인이 이생을 떠난 후였습니다.
오락실에서 동전이나 뜯어쓰는
‘보잘것없는’ 강재는
그때서야 낯선 인연 안에 담겼던 자신을 보았습니다.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
무심했던… 자신이
한 사람에게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세상 한 곳에서는 쓸모가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파이란의 가슴속에 핀 꽃,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고단했던 삶에서 얻고자 했던 한 가닥 희망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강재로부터
결코 구할 수 없는 희망이었습니다.
파이란의 죽음도,
강재의 눈물도
모두 바깥세상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따뜻하다는 세상의,
따뜻하지 않은 그 바깥 삶일 뿐입니다.
세상 바깥이 넓어지면
세상 안쪽의 온기도 잃을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세상 안과 바깥의 관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