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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생태계/서른의 생태계34+39

ESTJ 이게 맞나? 맞는게 있나?

 


외향(Extraversion), 감각(Sensing), 사고(Thinking), 판단(Judging).

2월 어느 날 신촌의 민들레영토에서 어떤 이에게 받은 성격검사 결과다. 이날 성격검사는 최근에 내 주변에서 많이 유행하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였다. 줌마네 마음반에서도 하던 성격 테스트였고, 두어 달 전에는 국가인권위에서도 지원자들에 한해 실시하기도 했다.


MBTI는 칼 융의 심리유형론을 근거로 하여 일상생활에서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자기보고식 성격유형지표이다. 융의 심리유형론은 각 개인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인식기능), 그 정보에 근거해서 행동을 결정하는데(판단기능) 있어서 각 개인이 선호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이 검사를 통해 나올 수 있는 유형은 모두 16가지인데, 나는 그 중에서 ESTJ형에 든 것이다.


ESTJ형은 에너지의 방향과 주의 초점면에 있어서는 내향보다는 외향적이며, 정보수집과 인식기능면에서는 직관보다는 감각에 의존하는 유형이다. 이에 따르면 ‘경험이나 추리와 같은 사고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 접하여 곧바로 느껴서 알게 되는 정신적 작용’(직관)보다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다섯 가지 신체적 능력’(감각)에 보다 의존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인식한다. 


또한 판단하고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감정보다는 사고를 중시하며, 이행방식에서는 인식보다는 판단을 중요시하는 성격으로 구분된다. 사전상의 용어에 의하면, 인식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일 또는 그 작용’이며, 판단은 ‘여러 사정을 따져서 사물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마음속으로 정하는 일’이다. 

이 네 가지 성격의 조합을 바탕으로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MBTI 검사자가 알려준 ESTJ형이 대체적으로 갖게 마련인 기능적/기질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ESTJ형의 기능적 특성은 ‘일을 조직하고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출범시키는 능력,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며 체계적, 논리적으로 사업이나 조직체를 이끌어나가는 타고난 재능, 혼돈스러운 상태나 불분명한 상태 또는 실용성이 없는 분야에는 큰 흥미가 없으나 필요시에는 언제나 응용하는 힘’을 가졌으며, 일을 행함에 있어 ‘분명한 규칙을 중요시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일을 추진하고 완성’하며 ‘어떤 계획이나 결정을 내릴 때 확고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이행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ESTJ형은 업무 결과가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며, 실제적인 일을 선호한다. 자신들이 목표를 세우고 결정 및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집행분야를 좋아하기 때문에 자기사업, 행정, 관리, 제조, 생산, 건설 등을 선호한다. 또한 과거의 경험을 활용하고, 확고한 사실을 바탕으로 계획, 결정을 내리고 믿는 경향이 있다.


ESTJ형의 주기능은 ‘사고’다. 사고적인 만큼 논리적․분석적․객관적․비판적인 성향을 갖는다. 따라서 사고 기능에 바탕을 두고 업무를 조직해서 일을 처리하길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타고난 지도자나 관리자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러나 논리적 추론을 제외한 그 무엇으로도 확신을 갖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 아울러 ESTJ형의 열등기능은 ‘감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고에 바탕을 둔 논리적인 면만을 강조하다보면, 타인이 가진 감정이나 감정에 관점을 둔 관심 등을 소홀히 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ESTJ형은 인간 중심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타인의 견해나 타인의 삶에 대해 인정하고 이해해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는 ESTJ형이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해 충분한 근거나 이해 없이 속단 속결해 버리기 쉬운 약점 때문이다.


2. 

ESTJ형의 기질적 특성은 ‘외부환경과 잘 조화, 사회를 잘 이해하고 통상 대들보 역할 담당, 규정에 따라 조직하고 그 규정과 법규를 다루는 데 탁월, 타인의 평가를 잘 하는데 그 기준은 얼마나 남들이 규정과 절차에 따라서 일을 하느냐로 판단, 현실적이고 사실에 입각하며 원리나 이론보다 절차에 대한 호기심이 높음’ 등으로 나타난다. 아울러 경험상으로 처방된 규정대로 사람들이 절차를 밟지 않으면 참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기질적 특성을 가진 ESTJ형은 우선 자신이 속한 집단, 일, 사회에 충실하며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상당한 자기희생이 따르더라도 그 일을 회피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터에서 책임자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경우가 많다. 사회성을 가진 단체에서도 꾸준한 참여와 대화의 태도로 참여하며, 시간을 잘 지키고 또 남들도 그러리라고 기대를 갖고 있다. 아울러 쉬는 것과 일하는 것을 막론하고 정결하고 질서를 지킨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ESTJ형은 전통과 예절로 사람들에게 접근하며  예절, 절차를 통한 인간관계로 조화와 만족도를 높여간다. 아울러 가정의 전통을 중시하고, 친구․옛 동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회식, 소풍, 제사, 결혼식 등에서의 역할을 즐겨 맡는다. ESTJ형은 남에게 보이는 그대로가 그들의 인격의 전부이며, 비교적 알기 쉬운 사람들의 유형이다.


그러나  ESTJ형은 타인의 관점과 정서에 대응치 못할 경우, 결론을 너무 쉽게 내며, 반대의견을 끝까지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ESTJ형은 주변에 있는 믿음과 신뢰를 가진 사람들의 조언을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볼 때 ESTJ형이  주의하고 개발할 점은 ‘타인의 관점에 주의를 돌리고 경청하는 노력, 자신의 감정의 가치를 인정하고 확인할 시간 여유, 너무 성급하게 속단속결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모든 측면을 배려, 변화와 새로운 시도 추상적 이론 등을 고려하는 노력’ 등이다. 아울러 일 중심으로 치닫는 경향이나 감정과 가치관이 무시되었을 때 불거지는 감정 폭발도 주의할 점에 속한다.


3. 

그동안 34년을 살아오면서 나 자신 혹은 내 삶을 예측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사주나 운세 등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이 없다. 혈액형에 따른 성향 구분 등에도 그리 큰 관심이 없다. 이번에 본 MBTI가 아마도 가장 최초의 일이 아닌가 싶다. 

MBTI 결과에 대해서는 그리 맞장구를 칠만한 내용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나는 내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에서 거론한 특성들에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내가 한 가지 유용하게 보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얘기가 통하지 않는 상황일 때, 나는 대개 두 가지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이 이 일에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가’와 ‘저 얘기가 진정에서 우러나는 말인가’ 정도이다. 전자는 대개 어떤 주장이 그 사람의 기득권 혹은 이익과 관련이 있을 때, 비록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더라도 정치적 계산에 따라 아니라고 말하는 태도에 대한 의심이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대화 자체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무엇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는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대화를 하는데 있어 무척 어려움이 느껴지는 상대다. 어떤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해석하는 시각과 차이를 받아들이는 태도 등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MBTI는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열쇠가 아닐까 싶다. 나는 상황을 논리적으로 풀어가려 하는데 상대방은 상황을 감정적으로 풀어가려 한다면 차이를 좁히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이 어떤 유형인지를 알 수 있다면, 서로가 가진 기질의 출발점을 인식할 수 있으니 좀더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까 싶은 구석도 있을 법하다.


아울러 위에서 언급한 몇몇 내용들은 내가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동안의 내 삶에서 그런 양상을 보였던 것 같다. 특히 분명한 규칙을 중요시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일을 추진하고 완성하는 일은 그 동안의 내 삶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성향인 듯하다. 아울러 ‘논리적․분석적․객관적․비판적인 성향’이 높다는 것도 그것이 뛰어나고 아니고를 떠나 맞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을 조직하고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출범시키는 능력’은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렇다고 볼 법한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스무살 이후 지금까지, 결과적으로 보면 뭔가 모임을 만드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로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데 사람이 없어서 내가 나섰다’는 주장을 펴고 싶지만, 이미 그것이 상습적으로 이뤄진 면을 감안하면 내 주장은 변명이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타인이 가진 감정이나 감정에 관점을 둔 관심’에 대해 비교적 깊은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ESTJ형과는 좀 다른 성향을 가진 듯하기도 하다. 기질적 특성에서도 ‘전통과 예절로 사람들에게 접근하며 예절, 절차를 통한 인간관계로 조화와 만족도를 높여간다’는 대목에는 그리 유쾌한 동의가 이뤄지지 않는 대목이다. 


4. 

평가를 하기 위해 테스트 결과를 짚어보다 뭔가 내 안의 한 유형을 떠올렸다. 어떤 테스트의 결과가 나왔을 때 객관적으로 좋다고 판단될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반면, 뭔가 나쁘게 평가될법한 부분에서는 쉽게 동의를 못하는 태도다. 물론 그 역시 나는 명확히 나와 맞지 않아서 ‘다르다’는 평가를 했지만 말이다.  


최근 2~3년 동안의 나를 보건대, 내 안에서 많은 변화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바

라보는 관점, 생각을 펼쳐가는 흐름, 일을 처리하는 방식 등에서 스스로 흥미를 느낄 만큼 그 변화를 즐기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런 성격테스트는 그리 흥미로운 일은 아니다.


사람은 산과 강을 함께 갖고 있는 자연이다. 산처럼 늘 언제나 거기 있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주지만, 또한 강처럼 끊임없이 흘러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간다. 따라서 모든 운세와 사주, 성향 분석 등은 이미 존재하는 산에 대한 더듬거림과, 강이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한 짐작일 뿐이다. 정작 우리의 삶은 산에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잔가지와 같으며, 물길에 휩쓸리는 모래와 같은 존재들로 놓일 때가 더 많다.

따라서 보다 확실한 운세와 사주 성향을 보려면, 매일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보다 유용할 듯하다. 내가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흘러갔는지를 바라보는 일 말이다.(
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