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역.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지하철의 4호선 북쪽 종착역은 상계역이었다. 상계역이 세워진 지는 15~6년 남짓 되었다. 서울로 이사 오고 나서 몇 년 지나지 않을 무렵이었다. 우리 가족의 첫 정착지는 상계3동 170번지 였다. 그 무렵 지하철 4호선이 운행됐다. 당시 시험운행을 할 때는 공짜로 태워준다는 얘기도 들렸다.
상계역은 단지 한 개의 역에 불과했지만, 그 후 상계동은 상계역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른바 상계3동 170번지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철거민들의 생존권 투쟁인 ‘상계동 올림픽’도 상계역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다.
겨울이면 골목길에 연탄재가 놓이고, 동네 개들이 서로 교미를 하던 풍경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던 곳, 오후만 되면 아이들의 축구장으로 변하던 골목길 공터, 한 사람 정도 지날만하던 좁은 골목길,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 담장을 넘는 부부싸움도 잦았던 그 동네, 상계3동 170번지.
그곳에 살던 많은 사람들은 ‘올림픽’에서 진 패자가 되어 또다른 삶터를 찾아 곳곳으로 흩어졌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올림픽’이 일어나기 몇 년 전에 다른 곳으로 전세방을 옮겨 ‘선수’로 뛰는 비극은 면할 수 있었다.
이윽고 상계3동 170번지에는 ‘지하철역 3분 거리’라는 좋은 조건을 가진 아파트가 들어섰다. 잇따라 ‘상계역에서 5분 거리’ 아파트가 세워졌고, ‘상계역에서 10분 거리’ 아파트가 건설됐다. ‘우후죽순’처럼 발전된 상계동에서 상계역은 ‘우(雨)’였고 아파트는 죽순이었던 셈이었다. 상계역이 종착지인 마을버스도 잇따라 운행하곤 했다. 마을버스는 중계동에서, 수락산 밑 동네에서, 불암산 밑 당고개 근처에서, 동서남북으로부터 상계역으로 향했다.
상계역은 지상역이다. 서울 시내를 지하로 통과한 4호선은 창동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온다. 이어 노원역, 상계역까지 지상으로 이어졌다. 상계역은 당현천 위에 세워졌는데, 그런 환경이 만든 또다른 변화는 당현천 지류의 복개였다. 불암산과 수락산의 계곡물이 모여 흐르던 당현천은 상계역부터 당고개 역까지 복개작업이 이뤄졌다. 그 위로 도로가 생겼고, 주차장도 생겼다. 복개가 이뤄지지 않은 공간은 약 100여 미터 정도뿐이었다.
상계역에서 당고개역 방향으로 걷다보면 주차장을 지나면 곧바로 복개되지 않은 하천이 나왔다. 복개되지 하천은 대개는 물이 메말라 있었다. 하천으로서의 구실은 못하는 곳이지만, 그 공간이 묘한 매력을 가졌다는 것을 훗날 깨닫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복개되지 않은 하천 옆길을 걷게 되었다. 복개가 안 된 당현천은 양쪽으로 길을 두고 있다. 한쪽은 4차선 아스팔트길이고 다른 쪽은 좁은 쪽길이었다. 오가는 사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지날 정도로 좁았다. 나는 그 쪽길을 이용했다.
간이음식점과 길거리 난전,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복작대는 상계역 부근을 지나 왼쪽으로 주차장을 끼고 걷는 쪽길. 쪽길은 돌로 옹벽을 친 개울 위쪽으로 났다. 비라도 내리면 질퍽거리긴 했지만, 한적한 맛이 그런 불편을 상쇄하곤 했다.
그 쪽길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은 바로 복개되지 않은 개천의 한켠에 들어선 텃밭 때문이었다. 텃밭은 쪽길쪽 당현천의 한 쪽에 나 있었다. 흐르는 물의 양이 적어지면서 자연스레 높은 부분은 노는 땅이 되었고, 부지런한 누군가가 그곳에 씨앗을 뿌린 것이다.
텃밭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볼 때마다 계절이 빼곡히 차 있었다. 지난 여름엔 희고 파란 도라지꽃이 한 무더기 피었다. 가지나무가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언젠가는 아이들 팔뚝만한 가지가 열리기도 했다. 고추나무 역시 자연의 시간을 따라 꽃이 피었다가 어른들 손가락만한 고추를 달고 있었다. 토마토 나무도 질세라 열매를 맺었다. 또 한쪽에서는 배추가 자라고, 파가 자랐다.
그처럼 한 계절이 내려앉고 한 계절이 고개를 내밀 때마다 텃밭은 저 나름대로 한 세상을 꾸리고 사는 듯 했다. 그래서 포근한 맛을 느끼기도 했고,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심을 품기도 했다.
때로 그 쪽길을 걸으며, 텃밭을 바라보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한때 농사를 지었던 사람, 삶의 중년에 이농민의 마지막 차를 타고 낯선 상계동에서 다시 생활을 꾸렸던 사람, 상계역에서 5분 거리, 10분 거리에 아파트가 들어설 때마다 상계역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던 사람. 예순이 넘어서야 15평짜리 임대아파트 한 채를 삶의 선물처럼 받은 사람, 이제는 다시 텃밭이라고 가꾸고 싶어 할 그 사람….
그런 생각을 펼치다 보면, 어느새 텃밭 끄트머리에 도달했다. 이윽고 나를 기다리는 이가 있는 15평짜리 임대아파트 입구로 난 아스팔트길로 올라섰다. 그때서야 나는 펼쳐놓은 생각을 서둘러 거두며 머지않아 저보다 풍요로운 텃밭을 가꿀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겨울이 녹아 흘렀고, 봄이 떨어지고, 여름이 젖어 사그라지고….
이제 나는 그 쪽길을 밟을 일이 별로 없다. 발길이 적을수록 그 텃밭에서 계절의 변화를 맛보긴 힘들다. 그만큼 텃밭은 낯설어졌고, 어떤 생각도 펼쳐내질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아파트에서 나를 기다리던 사람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됐다.
아버지.
이제 그는 내 마음속 텃밭에서만 살고 있다.(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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