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인입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과 틀리다고 합니다.
차이를 인정하면 차별없는 세상이 보입니다.”
예전에 국가인권위가 제작한 TV광고 문구다. 이 문구 가운데 네 번째 줄에 있는 “틀리다”를 두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몇몇 이견들이 제시되었다. 그 단어가 ‘틀렸다’는 것이며, 옳게 사용하려면 ‘다르다’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인지, 이런 이견의 타당성을 확인해 보자면 몇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1. ‘다르다’와 ‘틀리다’의 바로쓰기
첫 번째 단계는 기본적인 지식으로 우리말 바로쓰기를 배워야 한다. 즉, ‘다르다’와 ‘틀리다’의 쓰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말을 사용하는데 있어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를 지적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방송에서 아나운서나 기타 출연자들이 잘못 쓰는 말의 사례를 들 때도,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을 할 때도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다르다’와 ‘틀리다’는 어떻게 쓰는 것이 맞을까! 성기완 팝칼럼니스트(시인)는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다르다’와 ‘틀리다’의 쓰임에 대해 친절하고 꼼꼼하게 표현했다.
‘틀리다’는 영어로는 ‘fault’, 즉 논리적으로 혹은 이치상 그릇된 어떤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예를 들어 ‘2 곱하기 2는 5’라고 말하면 그건 틀린 말이다. 또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다.’ 이렇게 말해도 틀린 말이다. 반면에 ‘다르다’는 영어로는 ‘different’, 즉 문자 그대로 ‘다르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다르다’는 차이에 관해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이렇게 말하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가리키는 문장이 된다. 반대말을 봐도 ‘틀리다’와 ‘다르다’는 엄연히 다르다. 만일 초등학교 2학년생쯤에게 반대말 숙제를 내보면 ‘틀리다’와 ‘다르다’가 어떻게 구별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틀리다’의 반대말은 ‘맞다’이다. ‘그르다’의 반대말이 ‘옳다’인 것과 마찬가지의 쌍이다. 반면에 ‘다르다’의 반대말은 ‘같다’이다.
이 설명을 듣고 나면 ‘다르다’와 ‘틀리다’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두 단어를 혼용하여 쓴다. “네 점심 메뉴가 나랑 틀리다”라는 글에서 “틀리다”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다르다’로 고쳐야 한다. 그래야 ‘네 점심 메뉴를 나와 비교해 보니 이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의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인권위 TV광고 카피에서 “틀리다”를 잘못 썼다고 지적한 사람들은 실은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를 알고 있는, 즉 우리말 바로쓰기 단계를 넘어선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틀리다’를 틀렸다고 지적할 수 없다.
그런데 거기에 바로 함정이 있다. 이번 광고는 그런 두 단어의 쓰임이 다르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단어 쓰임새를 이해하고 있었어도 이번 광고의 깊이를 들여다보지 못한 게 함정이다. 다음 두 번째 단계에서 그 함정의 주변을 확인할 수 있다.
2. 사회적 차별을 표현하는 문구
두 번째 단계는 우리 사회의 차별 의식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깊다. 이는 국가인권위 TV광고 문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 광고는 우선 혼혈인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 의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를 문구로는 “단지 피부색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과 틀리다고 합니다”로 표현했다.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혼혈인은 피부색이 대체로 살구색이고이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혼혈인은 피부색이 좀더 검거나 희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 혼혈인들을 비하하거나 차별한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인종차별 하듯이 대하는 것이다.
혹자는 그런 차별은 없다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광고의 주인공들은 그런 차별을 느끼고 있다. 이번 광고 모델인 배기철씨를 비롯한 혼혈인들을 대상으로 사진작업을 진행한 사진작가 이재갑씨는 다음과 같이 혼혈인들의 현실을 기록했다.
“혼혈인이 한국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이유는 단순히 외모와 피부색의 차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순수 혈통을 중시하며 소위 단일민족을 지향하는 한국사회는 그들의 출생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에 봉건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혼혈인의 70%가 혹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교육이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 큰 어려움은 혼혈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겪게 되는 사회의 편견과 냉대다.
이들은 전쟁 후 30년간 한국 사회에서 법적인 권리를 가질 수 없었고 1980년부터는 어머니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지만 여전히 친척이나 이웃에게 느끼는 심리적 고립감과 정서적 소외감을 피할 수는 없었다. … 또한 혼혈인은 성장과정에 특별한 문제가 없고 우수한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단지 혼혈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눈밖에 나다」중에서)
이처럼 이번 광고는 일차적으로 “사회의 편견과 냉대”로 “심리적 고립감과 정서적 소외감”을 겪는 혼혈인들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다뤘다. 그렇다면 이 관심을 제대로 표현해 내는데, ‘틀리다’와 ‘다르다‘ 중 어떤 단어가 더욱 적절하게 쓰인 것일까. 이것이 세 번째 단계에서 밝혀진다.
3. 차별을 말할 수 있는 ‘틀리다’
세 번째 단계는 이번 국가인권위 광고의 네 번째 줄에 있는 “틀리다”가 과연 잘못된 표현인지에 대해 본격적인 검증을 해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는 당연히 첫 번째 단계에서 배운 ‘다르다’와 ‘틀리다’의 쓰임의 차이를 알고 있어야 하며, 아울러 두 번째 단계에서 살펴본 혼혈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의식에 대한 이해도 곁들여져야 한다.
이 검증을 위해 우선 이번 광고 문구에서 잘못 썼다고 말한 “자신들과 틀리다고 합
니다” 부분에서 “틀리다”를 “다르다”로 바꿔본다. 그 경우 전체적인 의미는 이렇게 된다. ‘나는 단지 피부색만 다른 사람일뿐인데, 사람들은 그런 나를 자신들과 다르다고 말한다’가 된다. 즉, “혼혈인인 너는 우리와 달라. 차이가 있단 말이야”정도다.
이 표현으로만 보면 차이만 인정할 뿐 아무런 차별적인 의미가 없다. 실제 혼혈인과 비혼혈인인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르니까. 다른 것을 다르다고 말한 것은 차별이 아니다. 그냥 존재를 존재 자체로 인정했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실은 혼혈인에 대해 차이만 인정하는 게 아니라 차별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구는 그런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해버린 꼴이 된다.
애초 광고 문구인 “자신들과 틀리다고 합니다”로 두면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그 경우 전체적인 의미는 이렇게 된다. ‘나는 단지 피부색만 다른 사람일뿐인데, 사람들은 그런 나를 자신들과 달리 틀리다고 말한다’가 된다. 즉, “혼혈인인 너는 옳지 않아. 넌 틀렸어. 비혼혈인인 우리가 맞고 옳아” 정도다.
이런 의식은 앞서 이재갑씨가 지적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순수 혈통을 중시하며 소위 단일민족을 지향하는 한국사회”의 “사람들”은 “(혼혈인들의) 출생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에 봉건적 잣대를 들이대”며 옳지 않다고, 그르다고, 틀렸다고 말한다. 그래서 혼혈인들에게 “사회의 편견과 냉대”가 미친다.
따라서 국가인권위가 광고 문구에서 “자신들과 틀리다고 합니다”라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차별의 현주소를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옳지 않다고 말하면 안 되는데, 옳지 않고 맞지 않다(틀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한 혼혈인의 독백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피부색이 다른 것뿐인데, 왜 잘못되었다 말하며 냉대하고 차별하냐”는 독백은 ‘다르다’라는 단어로는 담아낼 수 없다. 그러니 광고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는 ‘다르다’보다 ‘틀리다’가 더욱 적합한 표현이다. 그래야 “사회 다수의 집단 무의식이 작동”해서 단지 다를 뿐인 것을, 틀리다고까지 말하는 현실을 꼬집을 수 있다.
만일, 광고 문구에서 “틀리다” 대신, “다르다”를 사용해 이와 같은 주제의식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말 바로쓰기에서 지적받아야 할 대상이다. 표현은 ‘다르다’로 써 놓은 상태에서 차별하는 현실을 담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야말로 ‘다르다’와 ‘틀리다’의 쓰임이 제각각인 우리말 바로쓰기의 기본적인 상식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광고 카피에서 “틀리다” 대신 “다르다”로 쓴다면, 광고의 주제의식을 적절히 표현해 내지 못했거나, 주제의식을 담았다고 주장하는 순간 우리말을 잘못 사용한 사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4. 역사적 의식이 반영된 단어
이제 네 번째 단계다. 이 단계는 일종의 보너스다. 애초 ‘다르다’와 ‘틀리다’의 쓰임의 차이가 분명한데도 왜 사람들은 이를 혼동해서 사용하는가에 대한 탐색이다. 이 탐색은 무척 흥미롭다. 탐색 끝에 얻은 결론이 이 광고의 주제와도 딱 맞아 떨어진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쓰임의 차이를 이번 광고와 연관해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미 이 두 단어의 혼용에는 이번 광고에서 지향한 주제의식이 배여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김재영(충남대) 교수가 한 일간지에 쓴 칼럼에서 증명할 수 있다.
"교수님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해 말하지 않는 것 아세요? 강의 때마다 그게 항상 아쉬웠어요." 내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이 던진 지적이다. 그래서 그 학생은 나름대로 '다름'과 '틀림'이 어떻게 다른지,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를 혼동해 사용하는지 분석해 보았단다. 식민지 시대부터 우리 사회는 중간을 용인할 수 없었다. '동'과 '반동'만이 존재했고 덩달아 우리 의식도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은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야만의 세월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다름과 틀림은 다르다. 다름은 같지 않음을 말하고, 틀림은 옳지 않음을 의미한다. 두 표현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부지불식간에 동의어인 양 사용하는 데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생각은 옳거나 그른 범주로 솎아진다. 나와 다른 견해가 틀린 의견으로 난도질되는 삭막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 칼럼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혼용해서 쓰는 의식의 밑바닥을 관찰한다. 즉,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생각”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옳거나 그른 범주로 솎아”내려는 우리 사회의 의식을 짚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은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야만의 세월을 겪”은 우리들의 의식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헷갈리게 쓰게 한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의 지적처럼, 다르다를 다름으로 보지 않고 틀린 것, 잘못된 것으로 보는 의식에는, 그리고 그런 언어 사용의 습관에는 이미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녹아 있다. 언어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명제는 토를 달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즉,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차별을 강조했던 과거 역사가 고스란히 언어 습관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 일간지 기자는 “우리말을 하는 이들 중 다수가 ‘틀리다’와 ‘다르다’를 혼동”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여기에는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이 사회 다수의 집단 무의식이 작동하는 건 아닐까?”
이처럼 두 단어의 쓰임에 대한 고찰은 우리 사회의 차별 의식이 어디로부터 비롯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흥미를 제공하고 있다.
5.단어 선택의 절묘함
이제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다. 우리 사회는 소수자들에 대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림을 강조하는 의식이 깊다. 장애인, 양심적병
역거부자, 성적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사회 다수의 집단 무의식’은 이들을 ‘틀리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시하기도 하고 비하하기도 하며 심지어 손가락질도 서슴치 않는다.
이번 광고 문구의 마지막은 “차이를 인정하면 차별없는 세상이 보입니다”이다. 사실 이번 광고에서 말하고 싶은 바는 이 마지막 문구다. 사람들이 가진 각각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즉, 혼혈인을 대할 때 피부색이 다르면,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으로 인정하면 되지 그들이 틀리다는 의식은 갖지 말자는 의미다.
그런 것처럼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에게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는 표현을, 의식을, 주장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소수자들은 옳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외모나 의식이나 성적지향 등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때 다수의 사람들과 같지 않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광고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차이를 인정하는 인권감수성을 갖자는 의미를 담았다. 그 감수성이 쌓이고 쌓여 차이를 인정하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데 있어 ‘다르다’와 ‘틀리다’의 두 단어를 절묘하게 배합했다.(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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