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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온날

이름을 약속하다



초승산이라 이름지었다. 본디 불리던  이름이 없었을까만 그 모습이 예뻐 초승산이라 지었다. 초승산을 볼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충북 충주에 있는 한 연수원 뜰에 서야 볼 수 있으니, 일년에 두어 번 남짓하다. 

최근 다시 초승산을 보았다.  이번엔 눈눞이를 달리했다. 매번 서 있던 뜰을 벗어났다. 뜰에서 운동장 쪽으로 계단을 밟고 내려섰다. 초승산과 어울리는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잡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초승산과 소나무는 희롱하듯 운치를 돋구었다. 

연수원에선 이주민을 사람으로 대하는 법을 배우는 워크숍이 열렸다. 한 동영상은 시위하는 이주노동자가 끌려가는 장면이다. 노동자는 외친다.
"나... 이야기 할 권리 있어! 나 권리 있어. 이야기 할 권리있어!"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말할 틈은 없다. 단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권리'만을 얘기하며 끌려갔다. 그러니 끌고가는 경찰도 '이야기'가 아니라 그 '권리'를 끌고 갔다.

눈높이를 달리하여 얻은 소나무는 초승산의 동무다. 이제 그 소나무에게도 이름이 필요할 듯 싶다.  초승산과 어울리는, 그 덕에 더욱 고고해질 만한 이름 하나 남겨야겠다. 

그 이주노동자에게 눈높이를 달리한다면 동무가 될 수 있다. 말할 권리가 아니라, 권리를 빌어 하고 싶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제 이주노동자에게 '불법'이 아닌 다른 이름이 필요할 듯싶다. 세상과 어울리는, 그 덕에 인간의 격를 높일 수 있는 그런 이름 하나 약속해야겠다. 저 초승산을 다시 만나거든. (2010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