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이 없다. 자각한 순간, 택시도 떠났다. 불과 10여 초 전을 반추했다.
택시는 아파트 입구에 섰다. 택시비를 내려고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만원짜리 지페 한 장과 백원짜리 잔돈을 함께 준비했다. 지갑은 다시 가방에 넣었다. 5천원을 돌려받고 택시에서 내렸다.
딱 한 군데가 걸린다. 지갑을 가방에 넣는다고 할 때 흘렀나 보다. 혹시나 싶어 다시 가방을 뒤졌다. 역시 없다. 혹시나 싶어 택시 내린 길바닥을 살펴보았다. 역시 없다.
그때 일반 택시 한 대가 선다. 급한 김에 택시기사에서 묻는다.
"택시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요. 검은색 개인택시인데, 이럴 경우엔 어디로 알아봐야 해요? 기사님들끼리 연락되는 거 없나요?"
"차 번호도 모르고요? 글쎄요 그럼 교통방송에 전화해보세요."
혹시나 싶어 택시가 갔던 방향으로 달려가 보았다. 다른 아파트 단지앞에 혹시 서 있나 싶었다. 당연히 거기에 택시는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린다. 길거리에서는 할 수 있는게 없다. 집으로 간다. 지갑에 든 물건들이 떠오른다.
신분증, 명함. 체크카드 2장, 사진, 사무실 출입카드, 현금.
비교적 단촐하다. 현금은 주말에 쓰겠다고 찾은 돈이 있어 16만원 정도 될 듯싶다. 명함이 들어 있는 것은 연락처를 남긴 셈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지갑이 돌아올 확률은 적다. 뒷좌석이란 게 문제다. 손님들보다는 운전기사가 보는 게 더 나을 듯 싶은데, 뒷좌석을 운전기사가 볼 일은 거의 없다. 이제 밤 11시니 내일 아침까지 뒷좌석에는 많은 손님들이 타고 내릴 것이다. 그 손님들이 지갑을 발견하면 돌려줄까? 현금이 든 지갑인데. 자신할 수 없다. 토요일 저녁 손님이 많은 날이니 지갑은 두어 시간안에 발견될 것이다.
분실하고 나면 가장 골칫거리는 회사 신분증이다. 재발급하는 게 복잡하다. 현금은 방심한 대가로 지불할 비용인 셈쳐야 한다. 나머지는 회복될 듯 싶다.
집에 들어와 사태수습에 들어갔다. 인터넷을 켰다. 분실한 체크카드 연결계좌에서 현금을 모두 이체했다. 체크카드는 통장에 현금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굳이 분실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개인택시조합 누리집에 들어가 다른 방안이 없나 확인한다. 생각엔 택시 기사들끼리 실시간 네트워크가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건 안 보인다. 분실물 신고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이번엔 교통방송에 전화를 걸어 분실물을 신고했다. 개인택시 기사는 방송을 듣지 않고 있었으니 지푸라기잡는 심정이다.
이 정도 하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이제는 세상에 착한 이들이 많다는 믿음을 갖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밤 12시 45분. 핸드폰이 올렸다. 낯선 전화번호다. 직감이 왔다. 지갑이다.
"여기 두암파출소인데요. 택시기사가 지갑을 주워 왔네요."
내일 오후쯤 찾으러 가겠다고 하고 끊었다.
상황 종료다. 지갑 분실 2시간 만에 파출소에서 지갑이 오다니. 내심 놀랍다. 세상엔 착한 사람이 많나 보다.
다음날 오후에 파출소에 들렀다. 간단히 몇 가지 적고는 지갑을 건네받았다. 지갑에 든 물건들의 위치가 바뀌긴 했지만 모든 게 그대로였다. 파출소에서 받은 택시기사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광주개인택시 기사다.
"어디서 탔던 손님이더라... 뒷좌석에 있으니까 나는 몰랐지... 어떤 외국인 여성이 뒷좌석에서 주워 주더라고... 사례는 무슨, 나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 "
잃어버린 지갑 하나가 내게 오기 위해 전지구적으로 애 쓴 모양이다. (201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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